▲ 권선주 기업은행장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견고한 금융권의 유리천장을 뚫은 은행권 최초의 여성 CEO.

권선주 기업은행장에게 따라붙는 화려한 수식어다.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동시에 받고 수장에 오른 권선주 행장은 작년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냈다. 크고 작은 금융사고 속에서 ‘조직 장악’과 ‘실적 끌어올리기’에 힘쓴 결과, 성과도 있었다.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인 ‘기술금융 활성화’에도 적극 나섰다. 이처럼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우려의 시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 취임 이후 꾸준한 실적 호조세

권선주 행장은 지난 2013년 12월 기업은행의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취임 당시 ‘청와대 코드인사’라는 뒷말이 일면서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는 경영을 펼칠지에 대한 의문이 컸던 것. 취임 당시 노조의 반대를 샀던 만큼, 조직 장악력에 대한 물음표도 찍혀있었다. 

이런 우려 속에 취임한 권 행장은 일단 ‘경영 실적’ 면에서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내실 있게 강한은행을 만들겠다”는 권 행장의 다부진 각오는 실적 면에서 빛을 발했다.

기업은행의 작년 순이익(개별기준)은 전년도 대비 15% 증가한 9,358억원을 기록했다. 순자산총이익률(ROA)은 0.45% 수준으로 전년대비 0.41%로 개선됐다. 같은 기간 NIM(순이자마진)은 1.95%로 전년대비 0.02%포인트 상승했다. ‘개인 고객 확대 영업’과 ‘비용절감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이익 증대를 견인했다.  올 1분기에도 실적 호조세는 이어졌다. 
 
조직화합 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취임 당시, 권 행장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던 기업은행 노조는 현재 우호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내부출신인데다, 여성 출신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으로 직원들과 잘 화합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은행권 최초의 여성 은행장인 만큼,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금융’과 ‘핀테크 활성화’에 적극 나선 것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기업은행은 은행 업계에서 가장 많은 2조원 규모의 기술금융을 시행하면서 정부 정책의 선봉장이 됐다.

◇구멍 뚫힌 내부감시시스템과 독자 경영의 한계 

하지만 마냥 좋은 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기업은행에는 크고 작은 금융사고들이 터졌다. 도쿄지점이 부당대출 혐의로 조사를 받은 데 이어, ‘모뉴엘 사기 대출’ 사건으로 피해도 입게 됐다. ‘모뉴엘’의 여신 규모는 기업은행이 1,50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아울러, 시재금 유용 등 금융사고가 이어지면서 기업은행의 내부통제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권 행장 또한 무거운 책임과 과제를 안았다.

▲ 권선주 기업은행장.
또 기업은행의 위상을 추락시킨 ‘몰카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기업은행 임직원의 재교육 등을 책임지고 있는 충주연수원장 A씨는 외주업체 여직원의 숙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징계면직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은 사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은 물론, 사후대책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개선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현재 A씨는 ‘성폭력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피해 여직원들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여성 직원들의 입지 향상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권 행장은 인사에서 여풍을 주도했으나, 올해는 신규 여성임원 승진자가 없고, 지점장 및 부장급도 단 3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권 행장이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유리천장을 뚫고 행장에 오른 만큼, 여성 직원들을 주요 업무에 포진할 것이란 기대가 높았으나 현재로선 아쉬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의 입김을 받는 국책은행 수장이라는 점에서 권 행장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영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권 행장은 그간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인 ‘기술금융’과 ‘핀테크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화답해왔다. 올 초 금융 정부 관료가 ‘일자리를 확대하라’고 말하자마자 채용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공개적인 자리에서 “권선주 행장을 본받으라”라고 칭찬까지 했다.

국책은행인 만큼, 정부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권 행장 경우, ‘코드인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색안경을 짙게 하는 역효과도 냈다.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는 탓에 권 행장의 독자 경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업계 안팎에선 권 행장이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하고 있다. 

한편 업계 안팎의 시선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몇 가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도쿄 부당대출 사태는 권선주 행장 취임 전에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책임을 돌리기 어렵다”며 “모뉴엘 사태 역시 피해 여부가 확정된 게 아니며,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성 직원들의 승진율에 대해선 “기업은행은 타 은행에 비해 여성 직원들의 승진율이 높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올 초 채용 발표에 대해선 “공교롭게도 시기가 겹쳤을 뿐, 본래 계획된 수순”이었다고 덧붙였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권 행장은 취임 한지 이제 1년을 지났을 뿐”이라며 “아직 공과 실을 따지기는 이른 시기다. 조금 더 지켜봐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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