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국형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행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는 만큼, 국회를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조선과 철강 등 기업 구조조정을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양적완화’이고, 특정업체의 구조조정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아야 한다”며 “무차별적인 돈풀기식 양적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의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정부, 선별적 양적완화로 업계 구조조정 ‘실탄’ 확보

일반적으로 양적완화란 경제전반에 통화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는 조치를 말한다. 경기가 침체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 자본은 안전자산으로 쏠리게 된다. 심할 경우 시장에 유통되는 통화가 급격히 줄어들어 신용경색 위기가 발생한다. 과거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통한 통화량 조절로 위기를 넘겨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통한 처방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적극적으로 채권 등을 매입해 시장에 강제적으로 통화량을 늘리는 이른바 ‘양적완화’라는 극약처방을 썼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도 이 같은 대열에 합류했다.

다만 박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형 양적완화는 무차별적 통화량 증가가 아닌,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력 증가로 한정했다.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등의 산업금융채권을 한국은행이 매입하는 방법으로 국책은행의 자본력을 확충시켜 구조조정을 지원케 하는 방안이다. 이는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조선·해운 등에 해오고 있던 공적자금 지원을 구조조정과 함께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의미다.

관건은 야당을 설득하는 일이다.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채권매입은 국채나 정부가 보증한 채권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를 한국은행이 인수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자율구제 신청으로 조선과 철강 등 5개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단 더민주는 ‘구조조정’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형 양적완화'에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 더민주, 국민혈세 투입은 기업 자구노력 이후 최종적으로 해야

하나는 중앙은행의 개입 순서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은 기업의 자구노력이 선행된 뒤 가장 마지막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의 경영실패인 만큼 경영책임자와 주주, 채권자와 근로자들이 손해를 분담하는 자구노력이 이뤄진 뒤에나 한국은행의 개입을 검토해야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은행의 개입을 공식화하면, 자체적인 구조조정 동력이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주진형 더민주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은 “경영진과 주주, 채권자와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손실을 감수하고 분담을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구조조정 문제를 파토 낼 인센티브가 생긴다”며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처음부터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법정관리 이후에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로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혈세만 많이 들어가는 방법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또한 ‘한국형 양적완화’라는 명칭 자체에 대한 반대도 존재한다. 사실상 정부의 ‘정책금융’ 성격에 더 가까운데, 명칭에 양적완화를 붙이면서 자칫 금융계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형 양적완화는 원론적 의미의 양적완화와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 부실장은 “양적완화의 원조격인 일본도 해결이 잘 안 되고 있다. 거기다가 ‘한국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뭔가 변칙적으로 하자는 말처럼 들린다”며 “지금 당장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업계나 금융권이 기준으로 삼기에는 추상적이고 모호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의 경제인식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적완화라는 극약처방을 언급할 정도의 위기라면, 먼저 경제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진정성을 담아 국회에 요청하라는 것이다. 경제는 좋아지고 있다면서 양적완화를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국민의당 원내대표에 추대된 박지원 의원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간 경제가 좋다고 하다가 지금 한계에 왔다. 조선업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은 물론 다른 분야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이 실패를 인정하고 야당과 국회에 협력을 구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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