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시사위크] 북한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은 집권 17년 동안 노동당 대회를 한 차례도 열지 못했다. 노동당 일당 독재의 ‘당 국가’ 체제인 북한으로선 감추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당 총비서 직함을 갖고 있던 김정은에겐 더욱 그랬을 듯 싶다. 생전에 당 총비서 보다 ‘국방위원장’이란 직함으로 불리길 좋아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당 대회는 북한체제의 통치 전반을 평가하고, 정치·경제 등의 부문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행사다. 노동당 규약은 5년마다 당 대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1980년10월 6차 대회 이후 북한은 당 대회 개최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북한 문헌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경제 문제가 나아지면 열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그의 아들 김정은은 집권 5년차에 당 7차 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당 대회는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위한 이벤트로 불렸다. 당 제1비서라는 직함으로 호칭돼온 김정은은 ‘당 위원장’이란 새 직함을 얻음으로써 노동당의 살아있는 수령임을 확인케 했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정은 자신과 함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박봉주 내각 총리, 최용해 당 중앙위 정무국 부위원장 등을 포진시킴으로써 향후 평양 권력을 이끌어갈 5인방 체제를 갖췄다.

의문은 있다. 노동당 7차 대회 개최는 김일성·김정일의 설명대로 북한 경제가 나아진 상황에서 열린 것일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축전장이었을까.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에게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김일성의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자리였을까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답은 ‘노(No)’일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노동당 대회 연설 등을 통해 “휘황찬 설계도를 펼쳐보였다”고 7차 당 대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 분야만 살펴봐도 김정은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경제정책 등에 대한 구체적 방향제시 없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란 걸 내놓았다. 올해부터 2020년까지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개발구 활성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전면 확립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데다 개혁·개방 같은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없는 백화점식 나열이 전부였다는 평가다. 6차 당 대회 때 1000억kWh 전력생산과 석탄 1억2000만톤, 곡물 1500만톤을 비롯해 경제 10대 부문의 생산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던 것과는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 북한 경제를 고립에 빠트릴 수밖에 없는 핵·경제 병진노선에 집착하고 있어 실현이 어려울 게 뻔하다. 북핵 개발을 계속하면서 경제를 챙긴다는 건 현재와 같은 대북 제재 국면에서는 꿈같은 얘기란 점에서다.

여기에다 스스로를 ‘핵 보유국’으로 주장하며 핵 확산 방지를 위한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도 펼쳤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 않고 탈퇴한 뒤 핵 개발에 주력해오더니 이제 감독 역할을 하겠다는 얘기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경색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면서 연방제 통일 같은 비현실적 주장만 늘어놓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 대회장 바깥에서는 북한 체제의 폐쇄적 특성과 모순을 드러내는 사태가 이어졌다. 북한은 100여명의 외신기자를 초청해 놓고도 당 대회 개막행사를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행사장인 4.25 문화회관 200미터 외곽에 쳐진 펜스 너머로 지켜보는데 만족해야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중요한 정치 행사에 자칫 실수를 할 경우 부담을 우려해 조선중앙TV 등도 생중계를 하지 않은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회의 나흘째이자 폐막날인 9일 오전까지도 북한은 회의장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행사 진행 상황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던 상황에서 '평양을 방문해 취재 활동을 벌이던 BBC 기자가 북한에 구금됐다가 추방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당 대회 취재차 방북 체류하던 윌 리플리 CNN 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대관식 현장을 보여주려 전례 없이 많은 해외 언론 취재진을 불러들였지만 폐쇄적인 체제의 한계 때문에 일이 터져버린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문제가 된 BBC 헤이스 기자는 잇단 보도를 통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허구성을 폭로했다. 평양의 대표적 놀이공원을 방문해서는 유창한 영어로 김정은 체제를 찬양하던 북한 청년에게 추가 질문공세를 퍼부어 결국 줄행랑치게 했다. 또 북한이 안내한 병원에서는 의사나 환자가 연출을 위해 동원된 가짜라는 걸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애나 파이필드 특파원은 트위터에서 “북한 당국의 선전선동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현장을 억지로 봐야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국제 언론단체와 인권단체들이 북한 당국의 취재 통제와 방해에 항의하는 입장을 내는 등 반발했다.

노동당 7차 대회는 핵심 당원으로 짜여진 당 대표 3667명 등 모두 500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328개의 직위를 부여하는 결정을 했다. 말 그대로 김정은 체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행사였다. 하지만 내막을 따져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당 대회 직후 열린 평양시 군중시위는 10만 명이 참여해, 6차 당 대회 때의 100만 명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 또 118개국에서 177개 대표단이 찾았던 6차 때와 달리 우방국 집권당이 보낸 축전 15개에 그쳤다.

주민들에겐 칫솔 등 생활용품이 특별선물로 보급됐지만 북한산으로 품질이 조악한데다 그나마 일정 부분 돈을 받고 주는 유상공급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당 대회를 마치자마자 120일 전투 등의 구호를 내세워 주민들을 다시 강도 높은 노동현장으로 내몰고 있다고 한다. 당 대회 직전 70일 전투로 진을 뺐는데 곧바로 다른 노력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천리마 운동에 더욱 속도를 붙이자는 만리마 운동까지 등장했다. 당 대회를 계기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까 기대했던 주민들이 실망감과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게 우리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결국 36년만의 노동당 대회는 민생을 외면한 32살 최고지도자의 대관식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휘황찬 통치 설계도는 없었고, 화려한 행사장식과 붉은 카페트만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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