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CD금리 담합 혐의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리면서 조사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각종 조사가 시간만 길게 끈 채 헛발질로 끝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다, 기업들과의 소송에서도 연달아 패소하면서 위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제검찰’로 불리며 기업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기세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4년 시간 끌던 CD금리  담합 조사 '허무한 결말'

시중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가 허무한 결과를 맞았다. 무려 4년을 들여 조사했음에도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해 사실상 ‘무혐의’ 판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 6일 공정위 전원회의에선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SC제일 등 6개 시중은행들의 CD 담합 의혹에 대해 ‘심의절차종료’를 의결했다. 증거 부족으로 사실 관계 확인이 어려워 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심의절차 종료는 사건의 사실 관계 확인이 어려워 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내려지는 조치다. 사실상 ‘무혐의’ 처분이나 마찬가지다. 향후 추가 증거가 나오면 재조사에 들어갈 수 있지만 금융권에선 “4년 넘게 조사해도 잡아내지 못한 증거가 나오겠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공정위는 국공채 등 주요 지표 금리가 하락했음에도 시중은행의 CD금리만 떨어지지 않고 있는 점에 의문을 품고 담합 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르다보니 CD금리가 고정됐을 뿐, 담합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공정위는 자신만만했다.

▲ 공정위의 조사가 소리만 요란한 채 헛발질로 끝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4년이 넘게 조사한 끝에 제시한 증거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나름 증거라고 제시한 6개 은행 담당자들 간의 메신저 대화 내용은 ‘담합 혐의’를 입증하기엔 구체성이 떨어졌다. 공정위 심사보고서 곳곳에서 허점이 노출돼 일부 내용이 철회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금융권과 관가 안팎에선 “부실 조사로 시장 혼란만 초래한 꼴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공정위의 조사 방식에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의 부실 조사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각종 불공정행위 조사에서 ‘헛발질 사례’를 연출하면서 눈총을 받았다.

올해만 해도 전원회의에 상정시켰다가 ‘무혐의’나 ‘심의절차종료’ 처분이 내려진 사건이 4건이나 된다. ▲이다야의 가맹점 우유값 인상 갑질 의혹 건(무혐의) ▲대형마트의 설명절 선물세트 가격 담합 건(무혐의) ▲오라클의 끼워팔기 의혹 건(심의절차종료) ▲CD금리 담합 의혹 건(심의절차종료)이 그것이다. 

구체적인 증거 없이 무턱대고 과징금부터 부과했다가 기업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농심의 라면값 담합 사건’과 ‘남양유업 갑질 사건’이 있다.

◇ 부실 조사로 과징금 소송 패소 잇따라

공정위는 지난 2012년 농심이 라면값 담합을 주도했다며 108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후 농심은 과징금 취소소송를 제기했고, 3년간의 소송 분쟁 끝에 지난해 말 최종 승소했다. 담합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공정위는 환급 가산금까지 얹어서 과징금을 돌려줘야 했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갑질 과징금’도 부실 조사로 허무하게 취소됐다. 공정위는 지난 2013년 대리점에 제품을 강제로 공급하는 이른바 ‘밀어내기’ 혐의로 남양유업에 124억6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하지만 과징금은 최근 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남양유업이 제기한 과징금 취소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했기 때문이다. 패소 이유는 ‘증거불충분’이었다.

공정위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후에야 전국 대리점을 상대로 허겁지겁 주문수량 등 부당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로그기록 확보에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로그기록이 저장된 대리점의 컴퓨터는 대부분 교체되거나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작업 등으로 삭제된 뒤였기 때문이다. 결국 구체적인 증거도 확보하지 않은 채 안이한 대처를 했던 것이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셈이다. 

최근 5년간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 5건 중 1건은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일부만 승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과징금 불복 소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업체들이 제기한 총 589건의 불복소송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241건을 제외한 348건 중 23.3%에 해당하는 81건은 패소(42건)하거나 일부만 승소(39건)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징금 소송 패소로 국고에도 손실이 났다. 공정위는 과징금 뿐 아니라, 환급가산금,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공정위는 소송 패소에 따른 과징금 환급으로 7861억원을 지급했다. 이중 11.7%인 920억은 과징금에 이자 개념으로 지급한 환급 가산금이었다.

홍일표 의원은 “공정위 과징금 부과 소송 패소로 국고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과징금 산정 부과 제도를 개선하고 조사와 심사 과정의 부실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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