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A가 남중국해 분쟁에 필리핀 손을 들어준 가운데, 남중국해에 중국 진급 핵잠수함이 모습을 드러내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남중국해 분쟁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대치가 격화되고 있다. 국제법적 판단이 나왔음에도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은 ‘법적 구속력’을 근거로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최근 사드배치로 중국의 거센 압력을 받고 있는 우리 외교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국제적 분쟁해결을 목적으로 설치된 상설중재재판소(PCA)는 12일(현지시각)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 “중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했다”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필리핀을 지원했던 미국의 사실상 승리다. 판결직후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판결수용 불가’ 원칙을 천명했고, 그러자 미국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중국은 국제법을 준수하라”며 압박에 나선 상황이다. 

◇ 미국 손 들어준 PCA, 우리 외교부 입장은 “판결에 ‘유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제법적 근거와 명분을 확보한 미국은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 군사적 대치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예상한 듯 시진핑 주석도 전투태세를 명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의 대립격화는 사드배치와 맞물려 우리의 대중외교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심이 깊었을까. 우리 외교부는 PCA가 판결을 내린 지 대략 16시간이 지난, 13일 오전에서야 입장을 발표했다. 외교부는 “남중국해 분쟁이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외교노력을 통해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PCA)판결에 유의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존중’ 보다는 판결의 의미를 다소 가볍게 받아들이는 뉘앙스다. 다만 미국 등 우방국의 입장도 감안해 ‘유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강대국들의 대척점 한 가운데 위치한 한국의 외교상황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우리 정부가 사드배치를 공식화한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강한 어조로 반대의사를 계속 타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도 있어, 우리로서는 곤혹스런 상황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의 한국 몫 부총재직이 격하되고, 새 부총재를 공모하자 경제보복의 일환이 아니냐 말이 무성했다. 전경련 등 재계가 사드배치에 대해 대외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뒤에서는 속앓이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미국이냐 중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 사드와 남중국해 분쟁이 겹치면서 한국의 외교상황이 더욱 어렵게 됐다. <2015년 APEC회담에 참석한 한중일미 4개국 정상, 뉴시스>
현재 제시된 해결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사드배치를 공식화한 만큼, 중국을 설득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선 나온다. 이는 중국이 사드배치 자체보다는 추후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을 더 우려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에 사드는 북한의 핵폐기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과 미국 MD체재에 편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 중국을 설득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권영세 전 주중대사는 “중국은 사드 보다 미국의 MD시스템에 한국이 편입되는 부분에 더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MD에 굉장히 민감해 하고 있다는 연장선상에서 사드 문제를 봐야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를 운용하고 북핵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사드를 들여온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사드배치를 철회하고 차라리 미국을 설득하자는 주장도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유리병과 같아서 자칫하면 쉽게 깨질 수 있으나, 오랜 신뢰를 쌓아온 미국은 상대적으로 굳건하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사드배치가 남북관계 긴장과 동아시아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국가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드 포기 후 미국설득을 주장하는 인물은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동영 의원은 중앙일보 칼럼을 인용, “한미 관계는 오랫동안 유지해왔고 여지가 있다. 그런데 한중 관계는 융통성 마진이 없다. 사드를 포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드를 강행하는 것은 재앙”이라며 “전 국가적으로 나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실제 사드 배치를 안 한다고 해서 미국이 무지막지한 압력을 넣는 그런 국면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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