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신화/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리차드 고완(Richard Gowan)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평론가 중 한 명이다. 한때 그는 반기문 총장을 ‘바보’(chump)라고 꾸짖었고, ‘아첨꾼’(poodle)라고 비판했다. 그랬던 리차드 고완이 반기문 총장에 관해  “유엔의 따뜻한 환송(Fond Farewell)을 받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관심을 모았다.

12일(현지시각) 미국의 정치전문지 WPR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그는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비준시키기 위한 반 총장의 노력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리차드 고완은 유엔평화유지군이 아이티 콜레라 발생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했던 반 총장을 인정했다. “비록 늦었고 온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예의를 보여줬다”는 판단에서다.

전체적인 글의 내용은 자신이 반 총장을 혹독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미안함’과 ‘아쉽다’는 뉘앙스도 다소 읽혔다. 그는 유엔의 관료화로 인한 경직성이나 ‘힘의 논리’로 인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 총장이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을 비판한 것에 대해 리차드 고완은 “유엔과 이 조직의 리더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는 국가를 구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세계적 위협에 대항해 국제사회의 단결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도 말했다. 그만큼 막중한 자리였기 때문에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아울러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던 일부 평론가들에 향해서는 “사려 깊지 않은 비판”이라고도 말했다.

특히 그는 반 총장이 “한국에서 새로운 정치적 모험에 나선다”며 “한국에서의 그의 명성은 난공불락일 정도로 높다”고 대선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떠나보내 아쉽다(a hole in my life)는 의미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음은 WRP에 실린 리차드 고완의 칼럼을 번역한 내용이다.

<임기를 마치는 반 총장이 UN 에서 따뜻한 환송을 받아야하는 이유>

Richard Gowan (WPR. 2016. 12. 12)

이 글이 아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관해 쓰는 나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반 사무총장은 이달 말 10년 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안토니오 구테헤스 신임 총장에게 사무총장직을 넘긴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업무에 대해 5만~6만 단어의 글을 썼다. 유엔 외교에 관해 더 많은 일반적인 글을 썼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나는 반 사무총장이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관례에 사로잡혀있고, 유엔의 조직운영 문제를 파악하는 데 느리다고 자주 비판했다.

한때 그를 ‘바보’ ‘아첨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 기후변화조약을 비준시키는 그의 확고하고 성공적인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 총장은 이번 달 유엔평화유지군이 아이티에서 발생한 콜레라의 발병과 확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는데, 이는 비록 늦었고 온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예의를 보여줬다.

시라아, 남수단 등에서 일어난 분쟁에 대한 반 총장의 성명을 읽으면 그가 이러한 고통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유엔의 기능 때문에 종종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 총장은 이러한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비록 유엔의 (내재적 문제를) 바꿀 수 있는 여지에 한계가 있다고 해도 나는 그가 좀 더 창의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리더였다면, 이 같은 비극을 완화시켰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있다. 

반 총장이 이제 한국에 돌아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내 인생에 큰 구멍이 생겼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떠나보내 아쉽다는 의미로 해석) 내가 글을 통해 반 총장을 비판한 것은 결코 그가 쉬운 목표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다른 비평가들은 나보다 더 고약했다.

그는 첫 임기 때 공격성 부족으로 유엔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불리는 아픔을 당했다. 한 미국 평론가는 그의 유약한 리더십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려 깊지 않은 비판일 뿐 아니라 반 사무총장에게 개인적으로 고통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조적으로 나는 반 총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유엔 사무총장직은 매우 막중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유엔과 이 조직의 리더는 위기의 국가들을 구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증가하는 세계적 위협에 대항해 ‘국제사회’의 단결을 유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종종 실패하곤 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있나?

유엔은 강한 힘이 유엔의 평화유지행동을 중단시키도록 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엔에 대한 비평가들도 유엔이 직무를 수행하기에 너무 관료화돼 있는지 쉽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유엔 사무총장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사무엘 베케트(아일랜드 출신 프랑스 소설가·극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의 말처럼 ‘실패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fail better)를 따르는 것일 지라도.

이 같은 취지에서 나는 반 총장이 조용한 외교를 시도하면서도 위기들에 대해 강력하고 도덕적인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제안했다. 아울러 그가 유엔의 조직들과 여러 기구의 작동을 위해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자주 요청했다. 그는 유엔 운용기구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조언의 대부분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올해 초 그가 이례적으로 시리아에서의 러시아 군사작전을 대담하게 비판했을 때, 반 총장이 조기사퇴를 통해 모스크바의 군사적 행동의 문제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6월에 평화유지를 위한 러시아 연방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시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내 주장은 다양한 독자들로부터 매우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유엔의 외부에서는 가끔 반 총장에 대한 나의 비판이 불공정하고 단순하고, 또 과격하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유엔의 일부 간부는 반 총장이 확실한 방향을 설정하고 분투해야하는데 너무 관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반응은 사실 외교정책 평론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특히 의사 결정자 개인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칼럼이 설득력을 가지게 하기 위해 (실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논리를 강요한다. 그런데 반 총장처럼 절제하고 가끔은 불투명한 인물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반 사무총장은 한국의 외교부 장관 재직 때 잘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름 장어’라고 불렸다.

그가 내 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한번은 반 총장이 2015년 초 오찬에 나를 초대했다. 그는 칭찬하는 말을 했고 제법 위트도 있었다. 나의 비판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나와의 악수를 거절해 조금 당황하게 했는데 반 총장은 에볼라 확산방지 점검을 위해 서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바로 돌아왔다고 했다. 몇 주 동안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권고가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나의 비판을 성가시게 생각했다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포옹을 하지 않았을까.

이제 반 사무총장은 한국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모험에 나선다. 한국에서의 그의 명성은 난공불락일 정도로 높다. 그리고 나는 뉴욕에서 유엔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계속 쓰게 될 것이다. 나는 떠나는 사무총장에 대해 저속한 말을 했고, 때로는 건설적인 언급을 했다. 반 사무총장이 떠남으로써 그 내용들은 기껏해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사람들은 물어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 교체기인 지금 이 순간 누가 바보처럼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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