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송민순 전 장관은 <중앙일보>를 통해 2007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반응이 담긴 문건과 자필 메모 등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 측으로부터 연락받은 내용을 정리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라고 송 전 장관은 밝히고 있다.
◇ 북한인권결의안 ‘문재인이 거짓말 vs 제2의 NLL 조작사건’
문건에는 ‘남측이 반공화국 세력들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북남 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위반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이 우리의 결의안 찬성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이 공개된 송 전 장관의 당시 메모에는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라고 해서’라는 대목도 있었다.
이에 대해 송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그냥 갑시다 기권으로. 북한에 물어보지 말고 찬성으로 가고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 시간을 놓친 것 같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송 전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엔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전에 북한 측에 의사를 타진해 반응이 좋지 않자 ‘기권’을 던진 셈이 된다.
문건이 공개되자 경쟁후보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송 전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문 후보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며 “거짓말을 하고 북한을 주적이라고 하지 않는 분한테 국군통수권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했다. 유승민 후보 측도 “정직하지 않은 대통령은 북핵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안보이슈 점화, ‘중도’ 안철수에게 불똥?
이 같은 공방은 대선기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 핵개발로 ‘대화’ 보다는 ‘대치’가 우선되는 시점에서, 진보진영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보수진영 후보들이 유독 맥을 못 추는 이번 대선에서 안보이슈는 진보진영을 밀어붙일 유일한 수단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캠프 측에서도 남은 TV 토론회 일정 가운데, 정치·안보 관련 토론회를 최대 난관으로 보고 있다.
한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도 논란을 강 건너 불구경하기 어렵게 됐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 양측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 전선이 명확하게 그어지는 ‘안보’ 이슈가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홍준표 후보는 박지원 대표와 햇볕정책 계승 문제를 토론회에서 제기하며 압박한 바 있다.
문재인 캠프 측도 압박 수위를 높였다. 윤관석 대변인은 “안 후보가 홍준표, 유승민 후보와 ‘안보팔이’ 공조에 나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 손잡고 ‘문재인 죽이기’를 위한 ‘색깔론 연대’에 나선 것 같다”며 “햇볕정책 계승과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