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석 이상의 의석일 때만 법안 '신속처리'가 가능하도록 한 현행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고 있다. 여당은 정부의 법안 발의에 보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기준 완화'를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여당의 일방 독주'를 제어하는 차원에서 선진화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전경. <뉴시스>

[시사위크=최영훈 기자] 국회선진화법 개정 논의를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와 보조를 맞춰 최대한 많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현행 선진화법에서 규정한 '신속처리' 기준(180석) 완화가 필요한 반면, 야당은 여당의 ‘일방적 법안 추진’ 견제 차원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법률안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180석 이상일 때 법안의 '신속처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부터 예견된 충돌이었다. 19대 대선 이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선진화법 개정에 반대했고, 여당이었던 당시 새누리당은 ‘식물국회의 주범’이라며 개정을 추진했었다. 이번에 불거진 국회선진화법 개정 논의를 둘러싼 여야 충돌은 공수가 뒤바뀐 셈이다.

선진화법 개정 논의에 불을 붙인 건 국민의당이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선진화법이 식물국회의 근거가 되고 있다”면서 선진화법 개정을 거론했다. 그는 현행 180석 이상일 때만 가능한 신속처리 안건 지정 기준을 ‘다당제 현실’에 맞게 과반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의 제안대로 ‘법안 신속처리 안건 지정 기준’을 현행 180석에서 과반(150석)으로 개정하게 되면, 민주당(120석)·국민의당(40석) 만으로도 법안 신속처리가 가능해진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적극 뛰어든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당이 선진화법 개정에 찬성하는 모습에 ‘두 손 들고’ 환영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23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4당 체제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난관이 있다. 김 원내대표의 제안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당은 항상 선진화법 개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야당일 때 반대하다가 여당이 돼서 개정하자고 하는 게 옳은가 싶어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 보수야당 “협치정신 파괴·여당 일방독주 막아야”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보수야당은 사실상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당·국민의당의 선진화법 개정 움직임에 즉각 반발했다. 김동철 원내대표 제안대로 ‘법안 신속처리’ 기준이 과반(150석)으로 줄어들게 되면, 민주당은 이른바 ‘보수야당 패싱(passing)’으로도 원하는 법안 처리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당·바른정당은 이를 두고 “정부·여당의 독주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고 협치 문화가 사라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선동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의 일방독주와 독선에 철로와 고속도로를 깔아주게 된다”며 “여야 4당 체제에서 협치의 정신부터 되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도 국민의당을 겨냥해 “선진화법이 내포한 협치의 정신은 오히려 양당제보다 다당제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지금 개정한다면 이는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협치 문화가 사라지고 여당과 이에 동조하는 특정 정당만이 의회 운영을 독점하는 상황이 발생해 의회정치의 혼란과 후퇴만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