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 방안으로 ‘제로레이팅’을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최수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기본료 폐지, 선택약정 할인 등 다양한 통신비 인하 방안이 수차례 언급돼 왔다. 이번엔 ‘제로레이팅’이 뜨고 있다. 환영과 우려가 섞인 업계의 다양한 시각이 제로레이팅으로 집중되고 있다.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지난 7일 열린 ‘망 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정책 토론회’에서 “제로레이팅(Zero-rating)을 허용하되, 시장 불공정 행위 발생 가능성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 하고 사후 규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로레이팅이란, 이용자가 특정 콘텐츠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콘텐츠 사업자가 대신 지불하는 것이다.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콘텐츠 사업자가 망 사업자인 통신사에게 소비자 대신 사용 데이터의 이용료를 지급하는 식이다.

◇ 통신사·콘텐츠 사업자·소비자 ‘환영’ 분위기 

제로레이팅에 대한 업계의 입장은 다양하다. 먼저, 이를 이용해 B2B(기업 간 거래) 매출을 늘릴 수 있는 통신사와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대형 콘텐츠 사업자는 우호적인 입장이다.

제로레이팅을 활용한 서비스는 현재도 시장에 나와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SK텔레콤 11번가·T롯데닷컴, KT 지니뮤직 등이다. SK텔레콤은 현재 11번가 등 ‘데이터 프리’ 마크가 표시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물지 않고 있다. KT 역시 관련 부가 서비스에 가입한 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데이터 통화료가 무료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제로레이팅은 우호적이다.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등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앱에서 적게는 ‘MB(메가바이트)’ 단위에서 많게는 ‘GB(기가바이트)’ 단위까지 데이터가 소비된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데이터의 양이 정해진 요금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제로레이팅이 활성화된다면 데이터 절감, 통신비 인하 등 경제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제로레이팅을 적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다양하게 검토 중이다”며 “다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로레이팅을 본다면 좋은 측면”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구글, 네이버 등의 동영상을 볼 때 무조건 시청해야 하는 15초 광고에 대한 데이터는 소비자가 부담한다”며 “그러나 이를 통한 광고 수익은 기업이 챙기는 불합리한 구조이기 때문에 제로레이팅을 통해 이런 부분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정책국장은 “제로레이팅은 소비자 이슈보다는 사업자 간 이슈라고 봐야 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로레이팅이 나쁠 건 없다. 제로레이팅 관련 혜택을 주면 좋은 것이고, 사업자는 이용자 혜택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마케팅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로레이팅 경쟁으로 기업 간 데이터 양극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 빅데이터 시대, 기업 간 데이터 양극화 우려 목소리도

다만 일부 중소형 콘텐츠 사업자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데이터 이용료를 지급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사이의 차별로 중소 콘텐츠 사업자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제로레이팅 경쟁이 과해진다면 기업이 가진 데이터도 양극화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불리는 ‘빅데이터’는 방대한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정확한 고객 타깃팅이 가능하기에 이용자 수를 확보하는 면에서 제로레이팅을 활용하는 기업이 유리해진다.

결국, 제로레이팅을 다양한 앱에 활용할 수 있는 자본력이 있는 기업은 더 많은 데이터를 가져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타격을 받게 된다.

‘KT 지니’, ‘SK텔레콤 벅스뮤직’ 역시 빅데이터 기술 기반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어 제로레이팅을 통해 얻는 데이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윤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 역시 “돈이 많은 기업의 경우 제로레이팅을 통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를 활용할 수 없는 기업에는 차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제로레이팅이 망 중립성과 연관된 점도 문제다. 망 중립성은 네트워크 사업자가 인터넷의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특정 서비스에 한해서만 무료로 제공되는 제로레이팅이 ‘망을 이용하는 모든 데이터가 동일하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망 중립성에 위반될 수 있다. 제로레이팅 애플레케이션을 이용하는 소비자와 해당 앱을 사용하지 않는 소비자가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지적인 셈이다.

다만 꾸준히 늘어나는 무선 트래픽을 이동통신사 혼자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10년 전에 비해 매출이 늘어난 네이버 등 대형 콘텐츠 사업자가 통신사에 지불하는 망 접속료는 10년 전과 동일하다”며 “트래픽 증가의 주된 이유는 포털에서 제공하는 동영상, 게임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 콘텐츠 기업이 트래픽 관리에 드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부담해줬으면 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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