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이민호는 ‘원조 한류스타’다.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흥행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상속자들’(2013), ‘푸른 바다의 전설’(2016), ‘더 킹: 영원의 군주’(2019) 등이 모두 큰 성공을 거두며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전역을 사로잡은 대표 한류스타로 꼽힌다.
그리고 이제 그를 향한 관심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로 확산되고 있다. 첫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진출작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Apple Original Series) ‘파친코-Pachinko’(감독 코고나다‧저스틴 전, 각본 수 휴)를 통해서다. ‘백마 탄 왕자’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파친코’는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도서를 원작으로, 한국 이민자 가족의 희망과 꿈을 4대에 걸쳐 풀어냈다. 지난달 25일 첫 공개된 뒤,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호는 젊은 시절 선자(김민하 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한수를 연기했다. 한수의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은 물론, 야망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내면을 유려하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기존 작품에서는 본 적 없었던 색다른 변신으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는 평이다.
이민호는 한수가 되기까지 긴 오디션 과정을 거쳐야 했다. ‘파친코’ 제작진은 각 캐릭터에 적합한 캐스팅을 위해 6~7개월 동안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이미 톱스타 반열에 오른 그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민호 역시 ‘파친코’ 그리고 한수를 위해 기꺼이 도전을 택했고, 그의 열정은 값진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 만난 이민호는 “정제된 이미지를 부수고,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연기 인생에도 많은 도움을 줄 작품”이라며 ‘파친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오디션을 보면서까지 작품에 참여했다. 이유가 있다면.
“오디션 제의를 받고 대본을 읽었는데, 이 작품과 한수 캐릭터를 꼭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방대했고, 힘이 있었다. 또 그 안에서 한수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살아나가는 모습이 공감이 됐고 가슴이 아프고 애정이 갔다. 그동안 어떤 이미지를 위해서나 특정한 무엇을 위해 작품을 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하다 보니 뭔가 정제돼 있고, 멋있고, 판타지적인 인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정제된 나를 부수고 야생으로 돌아가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고, ‘파친코’가 그런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수는 굉장히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이었다. 여러 변화 속에서도 놓지 않고 지키고자 한 한수의 핵심 감정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틀로 잡은 것은 절대 선이었던 사람이 생존의 과정에서 절대 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수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 한수는 처절했던 시대 속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아주 거칠고 앞만 본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누구를 죽일 수도 있는 인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
-한수를 표현하기 위해 준비한 게 있다면.
“한수는 에너지 자체가 한걸음 앞에 나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든 누구를 공격할 수 있고 상대 에너지를 맞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해서 얼굴도 샤프하고 예쁜 것보다 투박한 느낌이었으면 했다. 기존 한국드라마 준비할 때처럼 열심히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관리를 한다든지 그런 건 딱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수의 삶을 연기하며 우리 역사에 대해 다시 돌아보기도 했을 것 같은데.
“기록조차 될 수 없었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 시대를 접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 이미지들을 많이 찾아봤다. 당시 조선인들이 찍힌 사진들을 꽤나 많이 봤는데, 단 한 장도 웃는 사진이 없었다. 그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은 꿈과 희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 그저 오늘 하루 먹고 이겨내는 것,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걱정 밖에 할 수 없었구나 생각을 했다.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더욱더 들었다.”
-전 세계에 우리 민족의 아픔을 연기로 알리게 된 소감은.
“다른 나라의 문화나 역사를 전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어둡고 아팠던 이면에 대해 공유하는 작품에 그 아픔을 표현하는 배우로서 참여하게 돼 영광이었고 좋았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의 역사에 대해 꼭 알아주라는 것보다는 그냥 우리 윗세대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있다는 것과 우리는 또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 스스로를 돌아보고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 OTT 작품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나.
“연기하면서 오랫동안 시청률이나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해오던 시기에 ‘파친코’ 오디션 제의를 받았고, 이 작품이라면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롭게 진짜 본질의 감정을 갖고 표현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자유로웠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작품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오디션 과정에서부터 다시 태어난 느낌이 든 지점들이 있다. ‘꽃보다 남자’ 오디션 과정도 떠올랐다. 13년 전에 작품에 임했을 때 느꼈던 감정들과 교차되는 지점이 굉장히 많았다. ‘파친코’를 하면서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홀가분하지 않았다. 내가 맞게 표현한 건가 그 어느 때보다 의심을 많이 했다. 그만큼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고, 그렇기 때문에 치열하게 빠져들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임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점도 앞으로 연기 인생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대표 한류스타로서 최근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정말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이)정재 선배를 비롯해 많은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선배들이 있고 또 선배들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음이 있을 테니 지금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할 생각이다. 예전보다 다른 나라들과 가까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콘텐츠도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나라에서 쉽게 접하고 새롭게 느껴주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파친코’는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이라는 평가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이자 자식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살아가고 있다. 시대를 관통해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담겨있다. ‘파친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처음 대본을 보고 느낀 감정처럼, 보고 나서 단순히 좋다, 안 좋다가 아니라 호흡이 잠깐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