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법무장관 내정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조국사태는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처음엔 야당의 정치공세려니 했던 민주당 지지자들도 갈수록 드러나는 의혹의 실체에 주목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게 나라냐’는 3년 전의 구호가 다시 살아나며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 개혁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그였기에 충격은 실로 컸다.  

‘NO 아베’를 외치던 시민들은 이제 ‘NO 조국’이라 쓴 현수막을 걸고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현수막은 조국을 이렇게 조롱하고 있다. “시험 치지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습니다. 학비 내지 않습니다. 우리 아빠는 조국입니다.”
 
조국 후보가 법무장관으로 적절한지를 묻는 여론조사는 ‘부적절’ 응답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8월 30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성인남녀 1,004명을 조사한 결과 27% 대 57%로 ‘부적절’ 여론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호남권에서만 유일하게 ‘적절’ 의견이 42%로 ‘부적절(34%)’ 의견을 앞질렀다. 

이 때문에 호남출신들은 조국 반대론자들로부터 항의성 질문을 받아야 했다. 왜 유독 호남만 조국 후보를 지지하느냐는 것이다. 갤럽에 앞서 8월 26일 중앙일보가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적절 44.3%’ 대 ‘부적절 40%’로 조국 지지세가 약간 꺾인 추세를 보이고 있다.

8월 23일 호남지역 목회자 350여명은 유력 종합일간지에 조국 법무장관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목회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만약 지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적어도 전 정부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믿어 적극 지지했다”며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다 어디로 갔으며, 이것도 나라인가”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목회자들은 또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씨가 법무장관이 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불법·탈법·위법 등 법을 우습게 여겨온 사람이 국가의 법을 집행·감시·적용하는 장관이 된다면 그 해괴망측한 일들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따졌다. 이들이 전례 없이 일간지 광고란에 고가(高價)의 성명을 내게 된 것은 호남이 문재인 정부를 무조건 지지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최근 부산에서 ‘문 정권 규탄대회’를 열고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라며 지역감정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부·울·경을 차별하면서 더 힘들게 하는 이 정권에 대해 부산·울산·경남지역 주민들이 뭉쳐서 반드시 심판하자”며 반 호남정서를 한껏 자극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났다. 과거 보수정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우려먹었던  경험에서 배운 학습효과 덕택이다. 이 와중에도 자유한국당이 노리는 것은 그들의 오랜 특허품인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켜 영·호남 대립구도로 만들고, 이를 내년 총선정국까지 끌고 가려는 속셈일 것이다.

조국 후보는 분노하는 여론에는 아랑곳없이 검찰개혁을 위한 정책을 하나씩 발표하고 나섰다. 검찰에서는 즉각 ‘누가 누구를 개혁 하겠다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왔다. 피의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개혁안을 말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검찰은 조국 후보 주변 인물에 대한 압수수색과 출금금지 조치에 들어갔다. 이제 칼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으로 넘어 간 형국이다. 

‘피의사실 공표’ 등을 들어 검찰의 수사행위를 비난하고 나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은 것 같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법과 원칙대로’ 할 것을 주문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총장은 대통령의 그런 당부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윤석열은 2003년 평검사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강금원(작고) 전 창신섬유 회장, 이상수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 등에 이어 2007년에는 변양균·신정아 스캔들 수사팀에 합류해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도 구속 기소했다. 하나같이 살아있는 권력들이었다. 

이번 조국 수사를 시작하면서도 그는 청와대·여당은 물론 법무장관과 조국 후보 청문회 준비단 어디에도 수사착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만의 독특한 수사 스타일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80%를 넘나들고 있던 황금기였다.

검찰은 조국 관련 수사를 형사부에 배당했다가 특수 2부로 옮겼다. 특수부는 서울중앙지검 엘리트 검사들이 명예를 걸고 수사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배당을 이렇게 바꾼 것은 검찰이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칠 것임을 의미한다고 검찰 주변에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지금의 검찰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검찰은 2017년 당시 현직 대통령과 직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한,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험을 가진 검찰이다. 그러니만큼 비록 법무장관 후보라고 해도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도 있는 조국 수사 정도에 위축될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조국 후보가 검찰의 사령탑인 법무장관에 임명되더라도 많은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지면 언제든지 그를 소환, 조사하려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쯤 되면 바로 조국 후보가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도 살고 문재인 대통령도 살리는 길이다. 이런저런 비리가 드러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아마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을 실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당사자가 스스로 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기를 임명해 준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일 것이다.

조국 후보를 지지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끝까지 ‘조국 일병 구하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조 후보가 보여주고 있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외쳐 온 정의·평등·공정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제목의 인터뷰집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줄 잘 서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누렸던 게 관행화·일상화되면서 정의가 실종된 것이지요. 그게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박근혜 게이트이고, 반칙이나 특권을 통해 이익을 보고 혜택을 누리면 결국 심판받는다는 걸 이제 분명히 보여 줘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개혁의 상징’임을 자처해 왔던 조국 후보는 이제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오만(傲慢)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검찰개혁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가 아니면 안 된다는 논리는 전혀 맞지 않다. 

2~3일로 예정된 청문회가 무산되자 여당은 조국 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본인의 의혹을 해명토록 주선했다. 이른바 ‘국민 청문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 없는 기자들만의 회견이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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