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철이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김태훈)로 관객과 만났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우 김성철이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김태훈)로 관객과 만났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훈련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보유한 에이스 기하륜은 분대장 최성필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때때로 다른 학도병들과 다툼을 일으키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위험에 뛰어들어 적에 맞선다.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김태훈) 속 하륜은 곽경택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삐뚤이’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쳤지만, 어떤 무리에서도 대장을 맡아야 직성이 풀린다. 센 척은 기본이고,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무작정 달려들고 본다.

그런데 왜인지 밉지가 않다. 툴툴대면서도 친구의 잘못에 대신 나서려 하고, 힘들게 구한 식량을 밉기만 했던 동지에게 건넨다. 그리고 이윽고 터져 나온 그의 고백에 가슴이 아리고, 진심 어린 눈빛에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진다. 배우 김성철이 완성한 하륜의 모습이다.

2017년 인기리에 방영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법자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김성철은 최근 종영한 ‘아스달 연대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치열한 캐릭터인 잎생 역을 맡아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차세대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그는 지난 25일 개봉한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서 에이스 학도병 기하륜으로 분해 새로운 얼굴로 관객 앞에 섰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 역사에 숨겨진 772명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됐던 장사상륙작전을 그린 영화다. 한국전쟁 중 기울어진 전세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었던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양동작전으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서 김성철은 곽경택 감독과의 특훈으로 완성된 경상도 사투리 연기는 물론, 반항기 가득한 눈빛부터 섬세한 감정 연기까지 완벽 소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칫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문제아 하륜을 관객들로 하여금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완성시켜 호평을 받고 있다.

김성철이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 임한 소감을 밝혔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김성철이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 임한 소감을 밝혔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김성철은 “하륜을 연기하며 괜한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연기 외적으로 부담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책임감도 컸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나요. 
“실제 일어났던 역사를 그리는 얘기잖아요. 연기를 잘하는 것보다 역사를 우리가 잘 고스란히 담는 것이 감독님의 목표였고, 저의 목표이기도 했어요. 또 저는 학도병으로서의 모습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보는 관객들이 믿음을 갖고 더 빠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최대한 기하륜이라는 역할에 가깝게 사려고 노력을 했어요.

책임감은 사실 처음 촬영할 때는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보가 없었거든요. 만약 유명한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했다면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 컸을 텐데 기하륜은 기록되지 않은 학도병들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엄청 크진 않았어요. 그런데 학도병을 연기한 배우들끼리 장사리 해변도 가고, 자료도 보면서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더라고요.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큰 롤을 맡은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겠어요.
“아무래도 큰 영화에다가 주연이다 보니 부담이 많이 됐어요. 극 중 하륜에 대한 설명도 많고, 보이는 것도 많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했고, 극도로 날이 서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창피하기 싫었어요. 인지도가 많지 않은 배우인데 주연을 시켜주셨으니, 그 기대에 부흥해야겠다는 마음도 컸고, 거기에 있던 학도병들이 제 나이 또래들인데 민호는 알지만 저는 모르잖아요. 저희 둘이 신을 할 때 ‘잘 하나 보자’라는 시선들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렇게 안 보셨을 텐데, 저는 그렇게 느껴질 만큼 예민해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안 그랬으면 더 편하게 잘 해냈을 텐데’라는 생각에 아쉬워요.”

-영화 속 하륜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렇죠. 제가 원래 그렇지 않은데 하륜 캐릭터를 만나서 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괜한 열등감에 시달리더라고요. 그 당시에 그랬어요. 체화된다고 해야 하나. 그게 어렵거든요. 그런데 작품을 할 때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이런 경우가 꽤 있어요. 어떻게 보면 캐릭터로서 생각할 법한? 하륜을 연기할 때 그런 순간들이 되게 많았어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서 하륜을 연기한 김성철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서 하륜을 연기한 김성철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하륜은 얄밉기도 하고 문제아인데, 극이 진행될수록 짠하고 용서되는 캐릭터였어요. 비호감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서도 고민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감독님한테 여쭤봤어요. ‘이렇게 해도 돼요? 너무 얄미운데’라고.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얄미운 것보다 나빴다고 표현을 했어요. 너무 나쁘더라고요. 그런데 연기한 걸 보니까 얄밉더라고요. 그런데 보고 나니 오히려 더 나쁘게 했으면, 더 비호감적으로 다가갔으면 뒤에 풀리는 게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남더라고요. 더 얄밉게 할걸.”

-하륜이 성필에게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슬프다고 갔고 두 번째는 희망으로 갔었고 세 번째는 미안함으로 갔었는데, 테이크를 가면 갈수록 이 감정도 있고 저 감정도 있는데 왜 이렇게 단편적으로 표현했을까 싶더라고요. 감독님도 계속 감정이 다 담겨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고요. 중간에 제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1,2분의 장면이 저한테는 엄청 큰 과제였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충분한 시간을 주셨고 저를 기다려주셨기 때문에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그 장면 촬영할 때 펑펑 울기도 했고, 담담하게 하기도 했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굉장히 담백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게 하륜이 같았고.”

-사투리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곽경택 감독님이 ‘암수살인’ 때 주지훈 선배 사투리를 도와주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감독님이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친구가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지 아느냐. 굉장히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를 다 녹음해서 주셨어요. 감독님이 그렇게 해주시는데 어떻게든 해내야 하니까 달고 살았어요. 지겨울 때까지 듣고, 나중에는 노래 같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한 10번 들으면 지겹거든요. 그런데 (사투리 녹음된 것을) 하루에 50번은 계속 돌려 들으니까… 지겨웠지만, 계속 듣다보니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고, 전달력도 좋던데요.
“다행이에요. 정말. 대사 전달이라는 것은 배우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나 영화, 공연에서 대사가 안 들리면 관객 입장으로 봤을 때 되게 답답해요. 배우로서 어떻게든 다 들리게 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그런데 제가 사투리를 못해버리면 연기도 못 할 거고, 전달도 안 되거든요. 대사 전달이라는 건 감정·표정·행동 모든 것들이 (준비가) 돼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딕션이 좋고 성량이 좋다고 다 들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중점을 두거든요. 제가 연기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사투리에 더 신경을 많이 썼어요. 나중에는 사투리로 애드리브가 나오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김성철이 사투리 연기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김성철이 사투리 연기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고 나서 그 시대를 바라보는 감정의 변화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군대에 있으면 사회에서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돼요. 꾸준히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이 잘 나는데, 그때 애국심이 엄청 올랐었어요.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정신없이 연기하고 작품을 하다 보니 잊고 살다가,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장사상륙작전에 대해 알게 되고, 희생하셨던 학도병들에 대해 알게 됐죠. 그런데 이분들뿐만 아니라 그 전쟁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희생 당하셨을 거잖아요. 제가 알고 있는 사실 외에도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 또 알려지지 않은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면, 그 역사도 각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 개인으로서 듣고 싶은 평가도 있을까요.
“가장 큰 건 사투리에 대해서 어색하지 않다 정도? 욕만 안 먹었으면 좋겠어요. 다행인 건 시사회 후에 네이티브 같다고 괜찮았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하하. 진짜 이룰 거 다 이뤘어요. 진짜 걱정 많이 했거든요. 이상해서 이슈화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하륜이는 부산애구나’라는 인식이 박혔으면 했어요. 관객들이 어색하지 않아 하셨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시작으로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까지 쉼 없이 달려오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작품을 보면 자꾸 의심을 하게 되거든요. 작년까지만 해도 저도 그랬어요. 외국 영화 보면서 ‘저 사람은 연기를 왜 저렇게 하지?’ ‘왜 저렇게 어색해?’ 이런 게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보거든요. 어색하면, 어색해서 캐스팅했나 보다.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이 들어요. 겸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평가하고, 제 주관이 맞고 내 가치관이 맞다 생각해서 남들 얘기를 잘 안 들었던 것 같아요. 다 수긍하면서 인정했지만,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내가 맞아’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깨졌죠. 작품을 통해서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그냥 어떤 작품을 보거나 임하게 될 때 까불지 말자라는 마음이 커요. 건방 떨지 말자.”

김성철이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김성철이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작년에 촬영을 했고, 올해 초까지 끊임없이 연기를 했는데 제가 너무 못하는 거예요. 항상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못한다고 느끼거나 좌절하진 않았거든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였는데, 너무 못해서 이래도 되나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열심히 했거든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제가 열심히 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해가 되더라고요. 너무 애를 써서 하니까 ‘왜 이렇게 애를 쓰지’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왜 그걸 그렇게 하지?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라는 말을 듣고 보니 ‘그래 맞아,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지’라고 깨달은 것 같아요. 배우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이런 것도 있구나. 저는 실력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발전이 안 된다 하더라도 더 못난 모습을 보일지라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느꼈어요. 그러면서 평가도 저절로 안 하게 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을 통해서 얻은 점이 있다면요.
“우선 이 역사가 알려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고요. 제가 일원이 된 것도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사투리 연기를 해냈다. 전쟁 영화를 해냈다. 또 든든한 학도병 친구들을 얻었고, 감독님도 얻었고요. 많은 스태프들도 다음 현장에서 만나면 굉장히 반가울 것 같아요. 그만큼 같이 고생했고, 눈물을 흘렸으니까. 항상 바라는 게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을 또 만나는 거거든요.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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