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전국유치원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가 28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유치원3법 통과 촉구 범시민사회’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이미정 기자 
전국유치원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가 28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유치원3법 통과 촉구 범시민사회’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20대 국회가 저물고 있다. 마지막 정기국회는 다음달 10일 마무리된다. 20대 국회는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정도로 법안 처리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잦은 정쟁으로 국회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으면서 빚어진 결과다. 심지어 시급한 민생경제 법안마저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해 왔다. 이제 국회 종료까지 채 2주도 남지 않는 상황. 국회 앞에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시사위크>는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그 목소리를 따라가 봤다.   

◇ 20대 국회 막바지…  “유치원3법, 국회 본회의서 통과돼야" 

“국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제발 일 좀 하세요.”

28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유치원3법 통과 촉구 범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울려 퍼진 말이다. 이날 전국유치원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유치원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법안 통과를 강하게 촉구했다. 법안 도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한편, 지금까지 법안 처리가 지연된 데 따른 국회 책임론을 제기했다. 

‘유치원3법’은 사립유치원에 회계 투명성 강화를 골자로 한 법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를 폭로한 것을 계기로 법안이 발의됐다. 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 사용 의무화 및 지원금 유용 행위 처벌 규정 등이 담겼다. 

당시 사립 유치원 비리 사태가 큰 사회적 공분을 불렀던 만큼 조속한 통과가 기대됐지만 법안 처리는 표류해 왔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이 사유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발한데다 여야 간 합의도 난항을 겪어 왔다. 이후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중재안을 마련해 발의했지만 이마저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는 유치원3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은 여야 간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쟁점 법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하는 일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일정 기간(최대 330일)이 지나면 상임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치지 않더라도 국회 본회의에 자동상정된다. 유치원3법은 최근 본회의 자동 상정 요건을 충족했다. 이에 유치원3법은 29일 국회 본 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시민단체들은 국회가 해당 법안 처리에 지금까지 손놓고 있었던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유치원3법’이 발의되고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지 1년이 흘렀다”며 “아이들과 양육자들의 고충을 생각했다면 ‘유치원3법’은 계류기간을 꽉 채울 게 아니라, 진작 논의가 이뤄졌어야 마땅하다. 정기국회 끝날 때가 돼서야 생색내듯이 법안을 만지고 있는 행태는 직무유기이자 책임방기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치원3법은 여야의 협상용이나 희생양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유치원3법은 유아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라고 강조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유치원3법 통과 촉구 범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우리 국민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비리, 사학비리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법 통과를 촉구했다. / 이미정 기자 

김한메 전국유치원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법안 통과 반대 국회의원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김 위원장은 “1년 가까이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방치해놓고 아무런 협의도 안 한 것도 모자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될 예정인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유아교육을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고, 퇴행시키는 것”이라며 “이번 국회에 통과되지 않는다면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학부모들이) 유권자로서 심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법안 통과 촉구 메시지에 힘을 보냈다. 안 소장은 “우리 국민들의 요구는 간단하다”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비리, 사학비리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치원 회계를 공공적으로 투명하자는 것뿐인데, 법안 처리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이들 단체는 “‘유치원3법'은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관련 규정이 없었다는 것이 더 놀라울 정도로 아주 상식적인, 최소한의 요구”라며 “유치원 회계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유치원에 속한 수입이나 재산을 교비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하며, 아이들이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최소한의 통제장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유치원3법통과를 시작으로 유아교육 공공성을 지속적으로 유지·보장할 상시적인 공공관리체계를 구축해가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적 노력에 국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회 주변에선 각종 민생입법 통과를 간절하게 호소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촉구하며 15일째 천막 농성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전국 중소상인 유통법개정 총연대(이하 중소상인 총연대)도 그 중 하나였다. 

중소상인 총연대는 전국상인연합회·전국중소상인협회·한국마트협회·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 전국 110여개 중소상공인 단체가 뭉친 조직이다. 복합쇼핑몰 등 대형 점포 개점과 영업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결성됐다.

20대 국회에 들어 유통산어발전법 개정안은 41건이 발의됐다. 지난해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형마트 등과 마찬가지로 복합쇼핑몰을 ‘월 2회’ 강제로 쉬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영업일수와 영업시간 축소, 입점절차 제한 혹은 강화 등에 대한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법안 통과는 표류해왔다. 주요 쟁점 법안에 밀리면서 법안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걸어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조배숙 원내대표 등 여야 3당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앞장서겠다는 서약서를 썼지만 자유한국당 측에서 미온적인 모습이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촉구하며 15일째 천막 농성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전국 중소상인 유통법개정 총연대. / 이미정 기자 

20대 국회 마감이 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소상공인단체들은 절박한 마음에 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농성장에선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회연합회 김진철 공동회장과 이기정 국장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는 대형 복합쇼핑몰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무분별한 복합쇼핑몰 입점에 시름하는 소상공인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회연합회 김진철 공동회장은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 규제가 도입된지 몇 년이 흘렀지만 소상공인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의무휴업 규제를 받지 않는 복합쇼핑몰들이 대거 늘어난 탓에, 오히려 영업 환경은 더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 복합쇼핑몰의 위력은 핵폭탄급에 비견된다”며 “그 주변 상권은 씨가 마른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28일 전국 중소상인 유통법개정 총연대 천막 시위 현장을 찾아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회연합회 김진철 공동회장과 이기정 국장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미정 기자  

그는 “한번 골목상권이 망가지면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며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의 터전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진걸 소장은 “중소상인 생존 문제는 그들만의 이슈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중소상공인들이 무너지면, 그 지역의 지역 및 문화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과 같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상인보호법 뿐만 아니라, 세입자를 위한 보호법, 어린이생명안전법안 등 민생법안들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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