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현대중공업이 또 다시 ‘살인기업’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5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뒤숭숭한 상황 속에, 한해에만 무려 11명이 사망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던 4년 전 악몽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중공업에서 또 한 번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은 지난 21일 오전이다. LNG운반선에서 파이프 용접작업 중이던 30대 근로자가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아르곤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 용접작업 중 충분히 환기시키지 않은 채 파이프 안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벌써 5명에 달한다. 지난 2월 추락 사망사고가 있었고, 4월에는 일주일 새 2건의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잇따른 사고로 고용노동부가 특별점검을 실시했지만, 점검이 끝나자마자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 나머지 1명은 지난 3월 당직 중 익사한 채 발견된 근로자다.

4년 전인 2016년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도 현대중공업에선 사망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일주일 새 3명이 사망하는 등 그해에만 무려 11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 노동계로부터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된 이유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당시 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특별감독을 받았고, 대대적인 안전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는 한편, 대표이사 직속 안전경영실도 신설했다.

하지만 ‘살인기업’이란 오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에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망 재해·산재 은폐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기업’ 명단에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를 발생시킨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아예 2016년의 악몽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 같은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나름의 조치와 대책을 내놓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경영진의 안전에 대한 강조 또한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사망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앞선 사고가 발생한지 닷새 만에, 또 특별점검을 마친 직후에도 재차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이 내놓는 조치와 대책, 그리고 경영진의 안전에 대한 강조가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각종 처방이 약효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애초에 진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처방의 접근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그래왔듯 안전은 헛구호에 그칠 것이고 또 다른 희생양이 등장할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답습에 머물지 않는 새로운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기업살인법’이라 불리기도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살인을 가장 무겁게 처벌한다. 그것이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저질렀든 간에 살인에 대한 처벌은 상해 등 다른 것에 비해 훨씬 강력하다. 그만큼 생명의 소중함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때문이다. 반면,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망사고엔 무거운 처벌을 받는 살인자가 없다. 물론 지금도 기업과 책임자가 각종 처벌을 받긴 하지만, 처벌의 무게감은 확연히 다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한 비용절감이나 공기단축보다 사람의 생명이 중요할까?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다.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사고들 역시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익이 앞선 데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대책을 적용해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도록 하면 된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태생적 생리를 반영해 안전과 관련된 손익계산의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1인 작업에 따른 비용절감보다 사망사고 및 그에 따른 처벌 부담이 훨씬 더 크다고 가정해보자. 기업들은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것이고, 사고 위험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고, 그로 인해 사람이 죽고 있다.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비극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멈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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