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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계류법안
[범죄의사면허취소 논란①] '20년 논쟁' 21대 국회서 종지부 찍을까
2021. 04. 26 by 서예진 기자 syj.0210@sisaweek.com

의사는 평범한 사람이 알기 어려운 의료지식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환자는 의사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사 역시 직업적 윤리를 지키는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불법촬영을 저지른 예비의사들이 출교를 당해도, 다른 학교로 재입학해 의사가 될 수 있다. 만삭의 아내를 숨지게 한 의사 역시 출소 후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20년 전 국회가 의사들이 사람을 죽게 하더라도 의료 관련 범죄가 아니면 면허가 취소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하면서다. 결국 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소수지만, 의료소비자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의사면허 취소와 관련된 의료법 개정안이 수없이 발의됐다 폐기된 이유다. <편집자 주> 

/김상석 기자
21대 국회에 들어서도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사진은 2015~2019년 의사 5대 범죄 발생 현황. /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지난해 9월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같은 법안이 발의된 것은 지난 2000년 의료법 위반이 아니면 면허를 취소하지 않도록 기준이 바뀐 후 끊임없는 논란을 낳았기 때문이다. 

◇ ‘철밥통 면허’ 오명 쓴 의료인 면허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사가 허위진단서 작성이나 의사 면허 대여 등 의료 관련 법령 위반행위를 하는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이는 지난 2000년 당시 국회에서 개정된 내용 그대로다. 문제는 개정 이후 의료 사고로 사람을 죽게 하거나 진료실에서 성폭행을 해도 의사 면허는 취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1년 1월 만삭의 아내를 살해한 한 의사는 징역 20년형을 확정 받았지만, 의사 면허는 취소되지 않았다. ‘공장식 유령수술’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를 수술한 의사 역시 의료면허는 박탈되지 않았다. 2005년에는 병원 응급실에서 당직근무를 서던 의사가 교통사고 입원 환자들을 성추행 한 일도 적발됐다. 한마디로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사례가 속출한 셈이다.

실제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5~2019년 의사 5대 범죄 발생 현황’(5대 범죄 : 살인, 강도, 절도, 폭력, 성범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대 범죄로 입건된 의료인은 총 3,480명이다. 2015년에 690명이 입건됐으며 2019년에는 731명까지 늘었다. 

그러나 의료법상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는 취소할 수 없고, 자격정지는 가능하지만 실효성이 낮은 상황이다. 지난해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최근 5년간 비도덕적 진료행위 세부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 6월까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자격정지가 된 의사는 총 74명이었지만 ‘성범죄’가 명시된 사유는 단 4건이었고, 모두 자격정지 1개월의 처분에 그쳤다. 

이 때문에 의사 면허는 ‘철밥통 면허’라는 오명을 썼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들이 늘면서 지난 17대 국회 때부터 비슷한 법안이 10번 넘게 제출됐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의사면허 취소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계류시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의사면허 취소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계류시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 복지위 통과했지만 법사위에 계류 

2000년 의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변호사나 공무원 자격기준과 마찬가지로 면허를 잃었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의료 관련 법령 외의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는 취소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은 전체 의료인에 비해 소수지만, 결국 의료소비자는 이들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감에 떨며 진료를 받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에게 주는 당근’으로 해당 법안이 개정됐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기간이 끝난 의사는 이후 5년간, 금고 이상의 형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의사는 유예기간이 끝난 뒤로부터 2년간, 선고유예의 경우 유예기간 동안 면허를 취소하고 재교부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다만 영구박탈은 아니고 해당 기간이 끝난 후 재교부 신청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해당 법안을 발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발의자인 강 의원에 따르면, 의료인 처벌의 ‘전문직종별 형평성’ 때문이다. 강 의원은 “의료인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지위의 특성상 사회적 책임에 부합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직업적 윤리가 요구된다”면서 “그러나 최근 의료인이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 등 실효성 없는 징계가 이어지며 환자들의 불안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변호사·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종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면허의 결격사유로 인정돼 면허 취소처분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현행 의료법에 따라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았지만 의사면허를 유지하는 것은 전문직종 간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의료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해당 법안 역시 순탄치 못한 길을 걷고 있다. 해당 법안은 지난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의료계는 과잉처벌이라는 이유로 해당 법안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가야할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