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마련된 ‘n번방 방지법’이 지난 10일부터 시행되면서 사전 검열 우려와 실효성 문제 등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원본=Gettyimagesbank)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디지털 성범죄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마련된 ‘n번방 방지법’이 지난 10일부터 시행되면서 여기저기서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작 n번방 사건이 발생했던 해외 플랫폼에는 제대로 된 제재나 압박을 가하지도 못하면서 국내 기업들과 이용자들의 불편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 ‘사적 검열’ 우려에 누리꾼들 “중국 황금방패냐” 비난 쏟아져

전 국민의 공분을 산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는 일명 ‘n번방 방지법’은 한 가지 법안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등의 7가지 법안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법안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해당 법안들은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인터넷 사업자들이 모두 불법 촬영물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시행령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사전에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안에 적용되는 대상은 전년도 매출액 10억원 이상이거나,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명 이상이 되는 규모이면서 사회 관계망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자다. 

즉, n번방 방지법에 따라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형 인터넷 사업자들은 디지털 성범죄물의 유통에 대한 적극적인 차단과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필터링 기술’ 등 기술적 의무를 다해야 하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8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부터 카카오는 자사의 메신저 플랫폼 카카오톡의 이미지·영상 및 첨부파일의 검열을 시작했다. 당초 예정일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10일부터였으나 이틀 먼저 시작했으며 카카오톡 오픈채팅 그룹채팅방에 ‘불법촬영물 식별 및 전송 제한 조치’가 적용 중이다.

검열 기술의 경우, 과학기술정통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필터링 기술이 이용되고 있다. 영상 및 사진의 제목, 화질 등의 특징을 고유값(DNA)으로 변환하고, 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불법촬영물 고유값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국민들의 사생활을 ‘사전 검열’할 수 있다는 비판적 여론이 거센 상황이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황금방패’를 시작한 것도 불법 음란물 차단을 명분으로 시작했다”며 “우리나라 정부도 국민들을 검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대규모 인터넷 감시시스템인 황금방패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2009년 당시 불법음란물 등 유해한 웹상의 콘텐츠로부터 젊은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 정부에 불리한 내용이 담긴 사이트 등을 차단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받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n번방 방지법이 중국 정부의 대규모 인터넷 감시시스템인 '황금방패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한다고 우려한다./ 픽사베이

◇ 방통위, “검열·기술 논란 사실 아냐” 해명했지만… 국민·업계 여론은 ‘싸늘’

이 같은 사전 검열 문제 비판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방통위는 13일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n번방 방지법은 공개된 게시판 등에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불법촬영물 재유통을 통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공개게시판, 그룹오픈채팅방 등 공개서비스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며 “해당 조치는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적 대화방인 1대1톡이나 단체톡, 1대1 오픈채팅방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한 방통위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올라오고 있는 ‘형편없는 검열 기술의 성능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고양이 사진’이나 ‘게임 캐릭터’도 검열돼 불법 음란물을 제대로 검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게시글들이 다수 게재돼 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방통위는 “일부 제기하고 있는 고양이 등 일반 영상도 검열‧차단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사진상의 문구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동영상을 업로드 시 방심위에서 심의·의결된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기계적으로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안내되는 문구로 확인 결과 해당 고양이영상은 차단된 바 없다”고 해명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카카오톡 오픈단톡방의 사진 검열 모습. 고양이나 게임캐릭터에 대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방통위는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기계적으로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안내되는 문구일뿐 차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다만 이 같은 방통위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인터넷 업계와 전문가들도 n번방 방지법이 디지털 성범죄 통제에는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 n번방, 박사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터진 곳은 탤레그램과 디스코드 등 해외 플랫폼에 대한 실질적 규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국내 인터넷 업계의 숨통만을 옥죌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도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인 지난 2020년 1월 성명문을 통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사적 검열을 조장하고 국가의 형벌권을 남용할 우려가 있는 정보통신망법의 개정논의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외 대표 인터넷 콘텐츠 사업자들이 회원사로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사업자 협회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강제로 시행하기 위해 디지털 성범죄 대책도 되지 않는 대책을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업계에서는 이전부터 이번 사적 검열 이슈가 터질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열 기술력에 대한 부분도 아직 불완전한 기술이고 이걸 도입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텔레그램 등에는 적용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애먼 국내서 사업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데 방통위가 산업의 이해도도 없이 섣부르게 잘못된 기술을 가지고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큰 패착”이라며 “이것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이 사태의 문제는 방통위의 무지에서 비롯된 참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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