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CJ ENM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 분)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온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 분).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피로 맹세한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안중근은 오랜 동지 우덕순(조재윤 분), 명사수 조도선(배정남 분),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 분),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박진주 분)와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

한편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적진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하던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김고은 분)는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일급 기밀을 다급히 전한다.

드디어 1909년 10월 26일, 이날만을 기다리던 안중근은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전쟁 포로가 아닌 살인의 죄목으로 조선이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된다.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으로 한국 최초 ‘쌍천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에 메가폰을 잡아, 2009년 초연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겨냈다. 

오프닝부터 강렬한 ‘영웅’. / CJ ENM
오프닝부터 강렬한 ‘영웅’. / CJ ENM

‘영웅’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 깊은 감동을 안긴다. 모두가 존경하는 위인의 모습 외에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인간’ 안중근의 삶의 궤적을 묵직하면서도 담담하게 따라가 보다 폭넓은 공감과 감동을 자아낸다. 

그동안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던 한국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14년 동안 무대 위에서 안중근으로 살아온 정성화를 캐스팅하면서 시작부터 이질감 없이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고, 스크린이기에 가능한 스케일과 미장센 등 풍성한 볼거리로 영화적 재미까지 살렸다.  

이는 오프닝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광활한 설원 위를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자작나무 숲에서 약지를 조국에 바치는 독립운동가 12인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태극기에 붉게 새겨진 ‘대한독립’ 네 글자를 바라보며 오리지널 넘버 ‘단지동맹’을 함께 부르는데,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단 하나의 넘버만으로도 눈과 귀를 완전히 사로잡으며 극장이라는 것을 잊고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한다. 

이 밖에도 대표 넘버 ‘영웅’과 설희의 가슴 저린 사연이 담긴 ‘당신을 기억합니다, 황후마마여’, 조마리아의 강인한 모정이 담긴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모두 한마음으로 완성한 ‘그날을 기약하며’ ‘누가 죄인인가’ 등이 원작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한다. 

진정성 있는 열연을 보여준 (아래 왼쪽부터)정성화와 나문희. / CJ ENM
진정성 있는 열연을 보여준 (아래 왼쪽부터)정성화와 나문희. / CJ ENM

배우들은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뜨거운 이야기에 진한 울림을 더한다. 그중에서도 뮤지컬 ‘영웅’ 초연부터 14년 동안 안중근을 연기해온 정성화는 대체불가 존재감을 입증한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 안정적인 가창 실력으로 안중근의 응집된 감정을 흔들림 없이 담아낸 것은 물론,  외형부터 내면까지 안중근 그 자체로 살아 숨 쉰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를 연기한 나문희는 존재만으로도 감동 그 이상의 감정을 전달한다. 목소리와 눈빛, 표정,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은 디테일한 열연으로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특히 그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그 어떤 넘버 보다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안기며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김고은‧조재윤‧이현우‧박진주‧조우진 등도 제 몫을 해낸다. 

윤제균 감독이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작은 소음 하나까지 통제하며 라이브 녹음 방식을 선택, 더욱 실감 나는 시퀀스들을 완성해냈고 노래와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해 자칫하면 어색하고 오그라들 수 있는 뮤지컬 영화의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했다. 

또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를 비롯해 1900년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실제와 같은 규모감과 시대상이 담긴 섬세한 디테일로 재현하는 등 완성도를 높였다. 장면 전환조차 허투루 하지 않았다. 감독의 센스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연출로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이젠 관객의 선택만 남았다. 러닝타임 120분, 오는 21일 개봉.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