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로 글로벌 시청자를 만난 김현주.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로 글로벌 시청자를 만난 김현주. /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김현주가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로 연기 스펙트럼을 또 한 번 확장했다. 데뷔 후 첫 SF 장르에 도전한 그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캐릭터를 섬세하게 빚어낸 것은 물론, 고강도 액션까지 흠잡을 데 없이 소화하며 진가를 발휘한다.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김현주 분)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로, 영화 ‘부산행’ ‘반도’,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정이’는 3일 만에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독일‧스페인‧대만‧싱가포르 등 총 80개 국가/지역의 TOP10 리스트에 올랐다.

극 중 김현주는 연합군 측 최정예 리더 출신이자 뇌복제 실험의 대상이 되는 정이를 연기했다. 정이는 수많은 작전에서 승리를 이끈 시대의 아이콘이자 작전을 나가기 전 가족을 안심시키려 웃어 보이는 평범한 인간, 불의의 사고로 캡슐 안에서 식물인간으로 늙어가는 인물이자 무수히 복제돼 있는 자아를 지닌 다층적인 캐릭터다. 

김현주는 인간과 A.I.의 미묘한 차이를 세밀하게 표현해 호평을 얻고 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현주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 ‘정이’를 두고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반응이 뜨겁다. 글로벌 1위를 찍기도 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혹평도 많다. 엇갈리는 평가에 대한 생각은.  

“오랜만의 인터뷰인데 좋은 소식을 들어서 기분 좋게 왔다. 국내에서도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시도 자체에 있어서.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CG 부분에서는 호평을 받고 있는 상황이니 그것만으로도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이 교과서가 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나올 작품들에게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연상호 감독 말에 의하면 이미 우리나라에서 기술적으로 많은 것들이 발전된 상태라 준비하는데 수월했다고 하더라. ‘정이’도 거기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비관적으로만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평도 받아들이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신파적 설정이라는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억울한 마음은 없다. 각자 다른 마음, 기대감으로 보는 거니까. 물론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줄여서 대중을 만족하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대중문화를 하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어떻게 다 만족할 수 있겠나. 이런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이’에서 정이로 분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김현주. / 넷플릭스
‘정이’에서 정이로 분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김현주. / 넷플릭스

-장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흥미진진하고 흥분됐다. 신기하고 재밌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뒷전이었고 이런 작품이 한국에서 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도전이고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연상호 감독을 믿고 의지했다. 이렇게 하기 힘든 발상과 구상을 해냈잖나. 연상호 감독이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신뢰가 있었다.” 

-정이의 표정이 말투, 외형 등 외적인 부분은 어떻게 만들어 나갔나.  

“몸을 많이 키웠다. 팔뚝도 굵어지고 어깨도 넓어졌다. 체형이 큰 편은 아닌데, 슈트를 입는다고 해서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전면을 가리는 슈트를 입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겠더라. 근력이 있어야 했다. 지금은 넓어진 어깨와 굵어진 팔뚝을 줄이는 과정에 있다.(웃음) 말투 같은 경우는 용병이기 때문에 군인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권위적이진 않지만 힘이 있는 듯한 말투를 구현하고 싶었다. 비주얼적으로는 클래식한 느낌을 원했다.”

-인간과 AI, 두 가지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낯설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다. 

“어떤 감정을 갖고 개연성을 찾으려고 하니 덜 어색하게 할 수 있었다. 어려움이 없진 않았다. (멈춰있다) 깨어날 때도 느낌이 다 달랐다. 오랫동안 숨을 못 쉬고 있다가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호흡을 뱉으면서 깨어나는 느낌도 있었고 고통 속에서 깨어나서 다시 멈추는 장면도 있었다. 그 장면에서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이상한 표정에서, 고통스럽게 멈추자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미세한 움직임이나 눈 깜빡임은 편집 과정에서 CG로 잡았는데, 다 직접 연기했다.” 

-액션도 많았다. 

“많은 액션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걱정을 했다. 게다가 로봇 연기였잖나. ‘지옥’ 때도 액션을 했는데 그때는 사람 대 사람의 액션이었기 때문에 ‘정이’보다는 수월했던 것 같다. 당시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 기초를 다져놓은 게 있어서 ‘정이’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 같은 액션 팀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에 맞춰 연습, 훈련을 했다. ‘정이’에서는 총을 들어야 해서 모습 자체가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장난감 총을 사서 계속 연습했다.”

김현주가 고 강수연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 넷플릭스
김현주가 고 강수연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 넷플릭스

-고(故) 강수연과의 호흡은 어땠나.   

“사석에서도 뵌 적이 없었다. 지나가면서도 뵌 적이 없다. 전설 속의 인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강수연 선배와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그분의 눈을 보면서 연기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고 겁도 났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니 너무 좋은 거다. 정말 반갑게 반겨주시고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나도 이제 연차가 쌓이다 보니 후배들이 생기고 어른스러운 척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사실 부담이긴 했다. 그랬는데 기댈 수 있는 선배가 딱 나타나줘서 칭얼댈 수 있었고 상담할 수 있었다. 선배가 계셔서 정말 좋다는 생각을 매 순간했다. 현장에서는 같이 연기하는 동료 배우로 대해 주셨다. 공개 전에 극장 시사를 했는데 스크린으로 선배를 보니까 너무 멋있더라. 왜 그동안 작품을 많이 안했지 아쉬웠다. 너무 좋은 배우를 잃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오랜만의 복귀작이었는데 평범하지 않은 장르인 이 작품을 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까 생각도 들더라. 당시에는 그런 걸 함께 나누진 못했다. 많이 그립다.”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정이를 보며 느끼는 공감, 연민도 있었을 것 같다. 

“정이만큼 소비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불편함이나 회의감 같은 것들은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지점이 이유 모를 불만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모나고 까칠함 같은 걸로 표현되기도 했다. 정이는 기억은 없지만 무한한 훈련, 반복적인 실험의 대상이 되잖나. 본인은 몰라도 켜켜이 쌓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억에서는 지워졌지만 그 고단함이 쌓였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짠했다. 서현도 정이를 그렇게 바라봤던 것 같고, 그래서 강수연 선배가 나를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꼭 내게 투영시킨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짠한 마음이 있었다.” 

-새로운 배역, 장르에 대한 갈증도 있었나. 

“배우라면 누구나 다 그런 갈증을 갖고 있을 거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은. 특히 드라마를 많이 하다 보니 변화를 준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더라. 아무래도 드라마에서 용인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 보니 변화를 시도한다고 하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매체의 변화가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혼자 끌고 가야 하는 것들이 힘에 부치는 지점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 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만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자신감을 잃은 시점도 있었고, 더는 나 혼자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 같이 만드는 작품이라면, 작품이 좋다면 작은 역할이라도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고 ‘WATCHER(왓쳐)’와 ‘지옥’을 만나게 됐다. 생각의 변화가 시대적으로 잘 맞아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상호 감독의 공도 크다. 

“‘정이’도 그렇고 ‘지옥’도 그렇고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의아했다. 어떻게 남들은 생각하지도 않은 역할을 내게 주려고 할까, (연상호 감독의)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웃음) 연상호 감독은 내게 없는 얼굴을 억지로 끄집어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배우가 갖고 이는 것 안에서 최대한을 뽑아내려고 한다. 그 점이 나를 편하게 했다. 지금까지 알지 못한 얼굴을 새롭게 만들 거라고 했다면 아마 못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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