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운트’(감독 권혁재)로 대중 앞에 서는 진선규. / CJ ENM
영화 ‘카운트’(감독 권혁재)로 대중 앞에 서는 진선규.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중요한 것은 역할의 크기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다.”

무명에서 명품 조연으로, 충무로 ‘대세’에서 원톱 주연까지. 영화 ‘카운트’(감독 권혁재)로 데뷔 후 첫 단독 주연을 소화한 배우 진선규는 변함이 없었다. 비중이 작든 크든, 중요한 것은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꺾이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스크린 속 그가 항상 빛나는 이유가 아닐까. 

‘카운트’에서도 진선규의 눈부신 활약을 만날 수 있다. ‘카운트’는 금메달리스트 출신,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마이웨이 선생 시헌(진선규 분)이 오합지졸 제자들을 만나 세상을 향해 유쾌한 한 방을 날리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1988년 서울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의 일화를 모티프로 다양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더해 창작됐다. 

진선규는 포기를 모르는 마이웨이 선생 시헌으로 완전히 분해 극을 든든히 이끈다. 복고 스타일링부터 구수한 사투리 연기, 복싱 장면까지 완벽 소화한 것은 물론,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나아가는 인물의 성장기를 진정성 있게 그려내 몰입을 높인다. 너무나 잘 맞는 옷을 입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진선규는 첫 단독 주연을 소화한 소감부터 ‘카운트’를 택한 이유, 촬영 비하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시헌이 곧 진선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며 캐릭터에 깊이 공감했다고 이야기했다.  

진선규가 첫 단독 주연을 소화한 소감을 전했다. / CJ ENM
진선규가 첫 단독 주연을 소화한 소감을 전했다. / CJ ENM

-첫 단독 주연작이다. 시사회 후 호평도 많다. 기분이 어떤가. 

“기자간담회에서 부담감에 대한 질문을 받고 눈물을 흘렸는데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만 부담감 때문에 운 것은 아니었다. 근래에 동료 배우들과 (박)시헌 선생님에게 내 이름과 얼굴이 걸린 영화가 처음 개봉하는 거라 떨리고 부담감이 많다, 두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날(시사회날) 아침에 시헌 선생님이 ‘대한민국 최고 진선규가 링에 올라가는데 떨고 있으면 어떡하냐, 주변 선수들도 같이 떨리지 않겠냐, 씩씩하게 잘 하고 와라’는 문자를 보내주셔서 그 말에 감동을 받아서 울컥했던 거다.

리더를 할 감량의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고 부담감도 많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고 힘나게 해주시니 해봐야지 뭐 하는 마음이다. (호평에 대해서는) 기분이 정말 좋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개봉하고 관객을 만나봐야 더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시사회 후에 많은 분들이 참 따뜻하다, 건강하다, 좋다는 말을 해줬다. 그런 이야기들이 내겐 지탱할 수 있는 큰 힘이다.”

-실화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끌린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88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억은 굴렁쇠 말고는 없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진해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하고 놀랐다. 계속 읽어나가는데 나의 생각과 내가 추구하는 방향, 많은 것들이 비슷한 인물이었다. 시헌이 아니라 진선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것을 공감하고 공유하면서 읽었다. 시나리오가 참 좋았다. 그래서 정말 나한테 제안이 들어온 것이라면 꼭 내가 하고 싶었다.”

시헌 그 자체로 분한 진선규. / CJ ENM
시헌 그 자체로 분한 진선규. / CJ ENM

-캐릭터 구축 과정에서 실존 인물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사실 시헌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너무 아픈 일이니까. 예전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졌다는 것을 본인은 알았다고 하더라. 졌는지 이겼는지 선수들은 다 아는데 본인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의아했다고. 영화에 대사로 나오지만 ‘은메달이었다면 사랑하는 복싱과 함께 정말 행복하게 꿈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제일 크게 와닿았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올림픽에 가서 진짜 금메달을 손에 쥐는 거라고 하셨다. 꿈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인간 진선규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진선규도 주인공 할 수 있어’라고 하고 누군가는 ‘걔는 안 돼, 그냥 조연이야’라고 할 수 있잖나. 그런데 만약 후자가 되더라도 시헌 선생님처럼 그냥 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기회가 또 올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실패가 계속 실패는 아니니까. (박시헌을) 외형적으로 모사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때 어떤 마음가짐이었고 어떤 생각으로 이겨냈고 무너진 걸 일으켜 세웠는지에 대한 것들을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다.” 

-가장 공감한 부분은 무엇인가.  

“외형적인 것은 100% 다른데 내적인 것은 90% 닮았다. 힘을 얻는 부분이나 원동력을 발산하는 끈기, 성실함. 또 지금은 후배들과 같이 꿈을 이뤄나가야지 하는 마음이 굉장히 닮았다. 복싱을 좋아하고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진해가 고향이고 가족들에게 힘을 얻고 가족들을 위해 살아가는 시헌이 좋아하는 복싱을 하면서 후배들과 같이 꿈을 이뤄나가는 모습, 실패해도 다시 딛고 일어나는 모습, 모든 것들이 나와 공유되고 있었다.” 

진선규가 캐릭터 시헌에 깊이 공감했다고 했다. / CJ ENM
진선규가 캐릭터 시헌에 깊이 공감했다고 했다. / CJ ENM

-그동안 실제 진선규와는 전혀 다른 결의 인물을 주로 연기해왔다. 자신과 닮은 캐릭터와 전혀 다른 인물, 어떤 게 연기하는 게 더 편한가. 

“둘 다 어렵다. 닮았고 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이 캐릭터가 되는 것이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다. 찍을 때 조금 더 스펙터클하고 쾌감이 느껴지는 것은 악역이 더 그런 것 같다. 평상시 안 했던 행동이나 상상을 해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찍을 때는 훨씬 더 짜릿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찍을 때 짜릿함은 없었지만 영화를 본,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진짜 나쁜 놈 같았어, 강렬했어’가 아니라 ‘따뜻하고 건강했어, 네 모습이 잘 보였어’라는 말을 해줘서 좋았다. 사실 이런 피드백은 처음 받아본다. 하하. 그래서 참 좋았고 느낌이 달랐다.”

-박시헌 감독과 그의 가족들도 영화를 봤나. 어떤 이야기를 해줬나.  

“시헌 선생님의 사모님은 못 오셨다. 왜 못 오셨냐고 했더니 못 보겠다고 하셨다더라.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아픈 기억이기 때문에 지금은 못 보겠다고. 너무 아파서. 우리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하면 좋지만, 그분들은 그 아픔이 단단하게 있고 다른 마음이니까. 그래서 사모님이 아직은 못 보겠다고. (박시헌 감독은) 이 말만 반복해서 하셨다. 나의 30년 모든 아픔을 잘 풀어내주고 씻겨줘서 고맙다고.”

-단역 시절 주연이 되면 현장에서 어떻게 할 거라고 상상도 해봤을 것 같은데. 

“주인공이 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단역 꼭 한 분 한 분을 다 만나서 리딩을 하고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식사를 하려고 했다. 현장에 가면 들어가기 전에 대사를 꼭 맞추고 들어갔다. 작은 역할이라도 오디션에서 뽑았으니 얼마나 잘 하는 분들이겠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잘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거였다. 주인공인 내가 아무리 열연해도 그것만 쳐다보지 않는다. 영화는 전체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 내가 부족하더라도 그분들이 채워준 덕에 영화가 참 따뜻하고 건강하고 좋았다.”

‘카운트’를 향한 애정을 드러낸 진선규. / CJ ENM
‘카운트’를 향한 애정을 드러낸 진선규. / CJ ENM

-‘카운트’는 배우 진선규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나.   

“내가 태어난 곳이 배경인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금의환향한 기분이다. 하하. 그리고 나의 인생에 있어서 또 배우 인생에 있어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큰 임무를 맡고 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나오는 것도 처음 겪는 과정이니 뜻깊고 고맙다. 부담도 되고 어깨도 무겁지만 다음에 또 서사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중요한 작품이다. ‘범죄도시’가 또 다른 인생의 스타트였다면, ‘카운트’는 새로운 성장의 중요한 스타트를 하게 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다만 지금 주인공을 했다고 해서 계속 주인공만 할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역할의 크기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다. 작품을 하는 것이지, 주연인지 조연인지로 나누지 않는다.”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긴 시간 견뎌온 진선규에게 진선규가 격려의 말을 전하자면.  

“사실 변한 건 하나도 없다. 나의 생각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요즘 ‘중꺾맘(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네가 하고 있는 거 지금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해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잘 해나가고 있다고. 잘 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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