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귀농귀촌하면 꼭 텃세를 겪게 될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 청양=박우주
귀농귀촌하면 꼭 텃세를 겪게 될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 청양=박우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귀농귀촌을 준비하거나 실행하는 과정에서 ‘도시생활과 많이 다르겠지’라는 생각을 당연히 갖게 된다. 우리 역시 그랬다. 실제로 적응 및 정착하기 전까진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를지 선뜻 감도 오지 않았다.

한편으론 항간에 떠도는 말이나 유튜브 등에 귀농귀촌시 마주하게 되는 도시생활과의 차이점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이번엔 평범한 우리가 객관적으로 실제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5가지 세 이야기’로 해보려 한다.
 

첫 번째. ‘텃세’

가장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시골은 텃세 때문에 못 가겠다고, 무섭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TV를 보면 어이없는 일들을 많이 당한다며 우리를 걱정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나는 뉴스나 일부 사례, 몇몇 유튜브 영상만으로 귀농귀촌을 안 좋게 바라보는 게 불편하다. 도시에서도 전세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도시에 가면 전세사기 당하니까 못 가겠다, 무섭다고 생각할까? 

텃세가 있는 곳도 있겠지만, 없는 곳도 있다. 또 텃세를 부리게끔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있던 텃세도 없어지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우리를 예로 들겠다. 우리는 귀농하자마자 이장님댁과 많은 왕래를 했다. 집이 가까운 것도 있었고, 농업 지식이 전혀 없던 터라 의지할 곳이 이장님댁 뿐이었다. 가서 일도 도와드리고, 같이 밥도 먹고 그랬다. 그러면 이장님은 농사지을 땅을 트랙터로 갈아주시는 등 도와주셨다. 그렇게 품앗이를 하면서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그 동네에 녹아들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장님댁과 친해서 그런지 다른 분들도 딱히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

4년 뒤 우리는 이장님댁과 가까웠던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주변에 가까운 분들과 인사 정도만 하며 지내고 있다. 서로 도움을 받을 일도, 줄 일도 없는 상태다.

우리는 첫 3년 동안 이장님 곁에서 농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다. 농업 지식과 경험이 쌓인 거다. 큰 농기계가 필요할 때는 돈을 내고 빌리고, 큰 어려움이 있을 때는 면사무소에 가서 신청을 한다. 이제 주변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 있다고 해도 신경을 안 쓰는 상태가 됐다.

어떻게 보면 귀농귀촌을 해서 농촌 특유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닌 더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거지만, 이게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이다. 처음 우리를 도와주신 이장님에겐 자주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선물도 드리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 ‘수도세’

귀농하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게 아주 기본적인 생활소비 패턴이었다. 우리가 처음 생활했던 빈집은 상수도를 사용했는데 1톤에 150원~200원 정도 했다. 그래서 1년에 적게 사용하면 5만원 정도 나오고, 많이 사용해도 8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수도세가 매년 20만원 넘게 나왔다. 매년 수도가 터져서다. 마을 분들은 마을 최고기록이라고 하셨다.

집을 지어 이사를 온 뒤에는 관정을 사용해 지하수를 쓰고 있다. 지하수는 물세 개념이라기보다는 전기세 개념이기 때문에 따로 측정을 할 수 없다. 그래도 도시보다는 저렴할 거라고 생각한다. 지하수 비용이 포함된 전기세는 월 6만원 정도 납부한다.
 

세 번째. ‘난방세’

시골의 겨울은 춥다. 그리고 기름값이 오른 지금은 더 추운 거 같다. 

5년 전 빈집에 살 때는 등유 값이 리터당 800원이고, 2드럼을 넣으면 32만원이었다. 옛날 집이라 단열이 안 되서 그런지 한 달만 지나도 2드럼을 다 썼다. 그래서 앞서도 이야기 했듯, 빈집에 살 때는 겨울마다 각자 부모님 집으로 올라갔다. 

지금 새 집에선 어떨까. 현재 등유 값은 리터당 1,400원이다. 1,600원까지도 올라갔지만 그나마 떨어졌다. 리터당 1,500원이었던 지난해 12월에 기름을 넣었는데, 1드럼에 30만원이 들었다. 살짝 훈훈하게 지내니 40일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 예전 집에 비하면 많이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아끼는 게 좋아서 요즘은 살짝 춥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 귀농하기 전 겨울에 이장님댁에 들어갔는데 너무 따뜻했다. 그래서 난방 기름값이 얼마나 나오는지 여쭤봤는데, 50만원 넘게 쓴다고 하셨다. 일반적으로 그 정도 수준이 맞는 것 같다. 지금 시세로는 80만원이 넘게 나오실 거다. 

귀농 초기 이장님과 마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우리는 크게 텃세를 겪지 않았고, 이장세나 마을세도 수긍하며 납부했다. / 청양=박우주
귀농 초기 이장님과 마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우리는 크게 텃세를 겪지 않았고, 이장세나 마을세도 수긍하며 납부했다. / 청양=박우주

네 번째. ‘이장세’

귀농 1년차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이장세와 반장세를 납부하라고 했다. 

이장님에게 드리는 돈은 국가에서도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시골은 아직 전통을 따르는 것 같다. 당시 우리는 이장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고, 이장님께서 마을을 위해 하는 일도 엄청나게 많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다 하셨다. 모두가 본받을만한 이장님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 좋게 이장세를 납부했다. 2~3만원 하는 돈이었다. 

그리고 반장세라는 것도 있었다. 마을에서는 매년 반장이 생겼다. 반장은 면사무소에서 내려오는 사업이나 지원과 관련해 마을 사람들 집을 돌면서 사인도 받고 체크하는 등의 일을 했다. 반장세도 2~3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았다. 기름값이라 생각하고 기분 좋게 납부했다. 이걸 애초부터 안 좋게 생각하고 ‘내가 왜 내?’라는 마음을 가졌다면 우리는 마을에 녹아들지 못했을 거다. 처음부터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했고, 마을이 지켜온 규칙을 이해했기 때문에 인정한 것 같다.
​​​​​​​

다섯 번째. ‘마을세’

지역발전기금이라고 불리는 마을세는 청양 어딜 가나 있는 것 같다. 귀농을 하고 마을세를 납부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해가 안 갔다. 그 돈으로 뭘 하는지 물어 봤다. 우리가 처음 살던 마을은 매년 봄에 다 같이 여행도 가고, 마을회관에서 식사도 하는 등 마을의 화합을 위해 쓴다고 들었다. 마을에 잘 정착하고 마을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납부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얼마를 냈을까? 30만원이었다.

다른 곳은 200만원이 넘는 곳들도 있다고 한다. 30만원 정도는 우리가 마을사람들에게 식사 한 번 대접한다 생각하고 납부하기로 했다. 당시 그 마을이 좋고 계속 살고 싶었기 때문에 납부한 것도 있다. 다만, 우리는 3년 뒤 집을 지으면서 부득이하게 다른 마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새로 정착한 마을에서 우리는 특별히 마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마을사람을 잘 모르고, 마을사람들도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사온 뒤에는 마을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혹시나 마을세 이야기가 나온다면 토론을 펼쳐볼 생각이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blog.naver.com/foreveru2u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www.youtube.com/channel/UCx2DtLtS29H4t_FvhAa-vkw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