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피해 양상과 피해 지원현황 등을 분석한 ‘2022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를 지난 20일 발간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피해 양상과 피해 지원현황 등을 분석한 ‘2022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를 지난 20일 발간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연미선 기자  지난해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제 2의 N번방으로 알려진 ‘엘’ 성착취방이 드러나 사회의 공분을 샀던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피해 사례에서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10·20대 비중 높아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를 통해 피해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총 7,97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6,952명 대비 약 14.8% 증가한 수준이다.

피해자의 성별은 여성이 6,007명(75.3%), 남성이 1,972명(24.7%)로 파악됐다. 연령대별로는 10대가 1,423명(18.0%), 20대가 1,450명(18.1%)으로 전체 36.1%인 2,873명으로 나타나 연령을 밝히지 않은 피해자 53.3%(4,254명)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도와 유사하게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화돼있는 저연령층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디성센터를 통해 △상담 △삭제지원 △수사‧법률‧의료지원 연계 등 총 23만4,000여건의 서비스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대비 24.7% 증가한 수치로 이번 서비스 지원 건수 증가는 일명 ‘엘 대화방’ 성착취 사건 등 수사기관에서 연계한 긴급사례 증가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지난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한 선제적 모니터링을 통해 총 4만8,719건이 삭제지원됐고, 지역사회 피해자의 접근성 강화를 위해 2021년부터 지원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특화프로그램 운영기관 등 피해지원과의 연계를 통한 서비스 지원(총 1만7,635건)이 건수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한편 ‘엘 대화방’은 과거 ‘N번방’과 비슷한 형태의 성착취 텔레그램방이다. 지난해 8월 말 이들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선 바 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당시 호주 시드니 교외에 거주하던 ‘엘’ 사건의 주범은 지난해 11월 말 호주 경찰과 현지 합동수사를 통해 검거됐다.

◇ 점점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해

디지털 성범죄는 인터넷 공간을 기반으로 발생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익명성이나 플랫폼의 보안성 등으로 증거수집이 매우 어렵고 은폐가 쉽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로 인해 가해자 특정이 어려운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구분하는 경우, 가해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경우(관계 미상)가 3,942명(49.4%)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관계 미상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로, 가해자가 특정됐으나 피해자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모르는 사람)과 차이를 가진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에게는 피해촬영물이 유포와 관련된 피해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성센터에 따르면 센터에 접수된 1만2,726건 중(중복 집계) 유포불안이 3,836건(30.1%)으로 가장 많았고 △유포가 2,481건(19.5%) △유포협박이 2,284건(18.0%) 등 유포와 관련된 피해가 전체 피해 유형의 67.5%를 차지했다. 인터넷 공간 특성상 가해자는 특정하기 어려워도 피해자는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법학전문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영상이 유포되면 삭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디지털 성범죄를 사회적‧인격적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기존에 발생됐던 범죄와 결합해 다양한 유형과 형태로 발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법률의 공백과 제도의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실효성 있는 정책적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현재의 강력한 처벌 위주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범죄의 유형과 특성을 고려한 범죄자의 교정‧교화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최근에는 메타버스(확장 가상현실)와 관련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사례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메타버스 이용자는 10대가 대부분이다. 이 가상공간에서 가해자가 아이템을 준다는 미끼로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물을 요구하거나 아바타를 이용해 특정 자세를 취함으로써 성행위를 묘사하게 하는 등의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6월에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대표로 메타버스 아바타에 대한 성적 괴롭힘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점점 더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시작된 성범죄가 협박 등을 매개로 현실의 성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은 앞으로 정부의 주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근거자료 및 출처
오삼광(2023), 디지털성범죄 예방을 위한 제도적 검토
2023. 한양법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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