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이 ‘닥터 차정숙’에서 서인호로 분해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 JTBC ‘닥터 차정숙’ 캡처
김병철이 ‘닥터 차정숙’에서 서인호로 분해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 JTBC ‘닥터 차정숙’ 캡처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분명 ‘나쁜 X’인데 밉지가 않다. 그의 파렴치한 행동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불륜남’보다 분노를 유발하고, ‘과몰입’을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꼴도 보기 싫을 법한데, 자꾸 생각나고 보고 또 보고 싶다. 단순한 ‘빌런’에 그치지 않고, 다채롭고 입체적인, 매력적이기까지 한 ‘서인호’를 완성한 배우 김병철 때문이다. 

최근 방송가에서 가장 뜨거운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연출 김대진·김정욱, 극본 정여랑)일 테다. ‘닥터 차정숙’은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엄정화 분)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달 15일 4.9%의 시청률로 출발한 ‘닥터 차정숙’은 매회 자체 최고를 경신하며 상승세를 보이더니, 지난 14일 방송된 10회가 전국 18%, 수도권 18.9%(이상 닐슨 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까지 치솟으며 전 채널 1위에 올랐다. 올해 JTBC 방영 드라마 중 최고 기록에 해당하는 수치기도 하다. 

‘닥터 차정숙’은 흔히 말하는 ‘막장’ 요소가 모두 담겼지만, 이를 유쾌하면서도 뻔하지 않게 풀어낸 점이 시청자를 사로잡은 비결로 꼽힌다. 배우들의 열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호평 이유인데, 차정숙의 남편 서인호를 연기한 김병철을 향한 반응이 유독 뜨겁다. 그의 단단한 연기 내공이 제대로 빛을 발하며,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완성했다는 평이다. 

진중함과 유쾌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시청자를 매료하고 있는 김병철. / JTBC ‘닥터 차정숙’ 캡처
진중함과 유쾌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시청자를 매료하고 있는 김병철. / JTBC ‘닥터 차정숙’ 캡처

극 중 서인호는 철두철미한 성격의 대학병원 외과 의사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위와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완벽주의자에 레지던트 군단을 거느리고 회진을 다니는 위엄 있는 과장이다. 비상한 두뇌로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며, 매사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모습은 카리스마까지 느껴지게 한다.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깐깐하지만, 의사로서 품격과 권위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완벽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허당기가 가득하다. 일생을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아내에게 간이식조차 해주기 무서워하고, 모든 결정을 어머니에게 허락받고, 아내의 큰 소리에 찍소리도 못하는 헐렁함을 지녔다. 게다가 한 병원에서 첫사랑 최승희(명세빈 분)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간다. 이에 20년 만에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한 차정숙을 병원에서 내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차정숙과 로이킴(민우혁 분)과의 사이를 은근히 질투한다. 

김병철은 진중함과 유쾌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서인호의 이중적인 면모를 능청스럽게 빚어냈다. ‘못된 남편’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서인호가 밉지만은 않은 것은 김병철의 호연 덕이다. 그는 변화무쌍한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다이내믹하고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며 분노를 부름과 동시에, 디테일이 살아있는 코믹 연기로 쉴 새 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차정숙의 반란과 관계 역전이 더욱 통쾌하게 다가오는 것 역시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덕이다. 

2003년 영화 ‘황산벌’ 단역으로 데뷔한 김병철은 다수의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소화하며 내공을 쌓아왔다.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송중기 분)의 직속상관 박병수 중령으로 분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그는 드라마 ‘도깨비’(2016)에서 박중헌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어 ‘SKY 캐슬’(2019) 차민혁 역을 통해 주연배우로 거듭났고 ‘닥터 프리즈너’(2019), ‘쌉니다 천리마마트’(2019), ‘시지프스: the myth’(2021) 등에서 연이어 주인공을 활약했다. 그리고 ‘닥터 차정숙’으로 존재감 굳히기에 성공했다. 제대로 물 만난 김병철이 앞으로 남은 ‘닥터 차정숙’에서, 앞으로 계속될 그의 배우 인생에서 얼마나 더 확장해나갈지 기대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