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수능 '킬러 문항'이 사교육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고, 9월 모의평가부터 '킬러 문항'은 배제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학원가 홍보문구를 보는 시민.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수능 '킬러 문항'이 사교육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고, 9월 모의평가부터 '킬러 문항'은 배제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학원가 홍보문구를 보는 시민. /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로 전국이 ‘킬러 문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변별력을 위해 과목 당 1~2문항 가량 출제하는 ‘킬러 문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또 이것이 공교육 교과 과정 밖에서 출제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의견을 내고 있다. ‘킬러 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면 많은 학생들이 학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통령실이 ‘킬러 문항’을 사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9월 모의평가부터 배제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킬러 문항을 풀 수 있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이를 위해 학원을 다니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인식에서다. 국민의힘과 정부 역시 “킬러 문항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면서 출제를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수능의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단순하게 사안을 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성주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대통령이 입시 출제까지 간섭하면 북한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수능은 학력고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일부는 킬러문항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면서도 불가피한 측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영어영역이 절대평가가 되면서 모든 영역에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최근 수능에서 ‘EBS 연계율’이 떨어진 게 사실이라고 한다. 고3 교사인 A씨는 “너무 문제를 꼬아서 내다보니 ‘이게 평가 목적에 맞느냐, 이쯤 되면 찍어서 맞추는 게 낫겠다’ 싶은 문항도 나오기는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킬러 문항 배제’를 당장 6월에 발표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지시한대로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 변별력을 높이려면, 정답률이 낮은 문제들을 교과과정 곳곳에서 내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 문제가 생긴다. 어떤 파트에서 어려운 문제가 나오는지 예측이 안 된다는 것이다. 

A씨는 “원래 수능이라는 건 ‘어디서 틀릴 위험이 있다’가 예상이 되도록 출제를 해왔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는 파트가 있기 때문에 그 파트를 중점적으로 공부해가는 것”이라며 “만일 9월 모의평가부터 방식을 바꾼다면 어디서 어려운 문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어디를 공부해야 할지 혼란을 겪을 것이고,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윤 대통령은 ‘전문용어가 나오는 비문학 지문’을 예시로 들며 ‘킬러 문항’이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문학(독서) 문항은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독해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나온다. 이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 보지 못했던 글이 지문으로 제시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고교 교사인 B씨는 “문학에서 과학기술, 경제학, 법학 등 전문적인 글을 남발해 수험생들이 문제를 푸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평가 목적에 맞는지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지문들이 교과과정 밖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과과정 내에서만 비문학 문제를 낸다면, 3년간 공부하면서 본 지문이 나오면 되는 것인가”라며 “그럼 국어 영역은 ‘암기 과목’이 된다. 수능이 ‘학력고사’인 줄 아느냐”고 꼬집었다. 

A, B씨 모두 ‘수능은 상대평가’라는 점을 지적했다. 1등급을 받는 수험생이 전체의 4%가 되려면 필연적으로 ‘킬러 문항’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A씨는 “‘일타강사’들이 사교육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킬러 문항’ 자체의 문제도 존재하는 건 맞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이 커지게 된 이유가 ‘킬러 문항’을 내는 평가원의 책임이냐”고 지적했다. 

학원가에서 일하는 C씨는 “‘킬러 문항’ 같은걸 없앤다 해서 학원이 없어지겠나. 어차피 수시 준비를 위해서도 학원이 필요하고,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는 그대로 있으니 이런 곳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며 “이런 건 건들지 않고 왜 수능만 언급하는지, 교육정책에 대한 철학은 있는 것인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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