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인간 역시 이 같은 진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숨이 다한 인간은 이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은 어떨까.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물건들이지만, 우리는 그 끝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아주 잠깐, 너무나 쉽게 사용한 물건들 중 상당수가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머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인간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물건들, 그것들의 끝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장례식장은 일회용품 사용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 중 하나다. / 사진=뉴시스, 그래픽=권정두 기자
장례식장은 일회용품 사용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 중 하나다. / 사진=뉴시스,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장례식은 한 사람의 마지막 행사이자 삶의 마침표다. 가족은 물론, 생전 인연을 맺었던 많은 이들이 찾아 작별인사를 건네고, 애도하며, 위로를 나누곤 한다.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영원한 이별이 이뤄지는 장례식장은 늘 슬픔과 눈물로 가득 찬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공간이다.

그런데 그 슬픔 뒤에 가려진 씁쓸한 현실이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인 장례식이 남기는 수많은 일회용 쓰레기의 아이러니다.

◇ 장례식장 상차림, 시대흐름 발맞춘 변화 본격화

육개장을 대표로 하는 조문객 음식상은 우리의 가장 익숙한 장례식장 풍경이자 장례문화 중 하나다. 그리고 그 한상은 대부분 일회용품으로 차려지곤 한다. 수저와 컵도 일회용품이고, 상을 닦지 않기 위해 얇은 비닐까지 깔린다.

이렇게 사용된 일회용품은 대부분 분리배출되지도 않는다. 병이나 캔, 페트병 정도는 분리배출되나, 음식물이 묻은 일회용 접시 등은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 세척 후 분리배출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는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이 제한되는 카페나 비닐통부 제공이 금지된 마트 등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일회용품 사용 제한이 확대 및 강화되는 시대흐름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심지어 상조회 차원에서 각종 일회용품을 지원해주기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실태는 장례식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 시점을 예상할 수 없다. 따라서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장례를 치르는 경황없는 와중에 조문객 식사 대접을 위해 일일이 식기를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과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장례식장에서 발생하는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를 마냥 간과하긴 어렵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사망자 수는 37만2,800여명이다. 사망자 1명당 50명씩만 잡아도 조문객수가 1,864만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00명씩 잡으면 3,728만명, 150명씩 잡으면 5,592만명에 달한다. 2019년 7월 ‘일회용품 안 쓰는 장례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개최한 자훤순환사회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장례식장에서만 연간 2억1,600만개의 일회용 접시가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국내 연간 전체 사용량의 20%에 육박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를 감안하면 향후 연간 사망자 수와 조문객 수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장례식장에서의 일회용품 사용은 정말 부득이한 걸까. 오늘날 우리의 장례문화, 그리고 인프라를 고려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과거엔 주변 친척 및 이웃의 도움을 받아 가정 등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장례식을 언제 치르게 될지 예상하고 준비할 수 없더라도, 장례식장은 언제든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장례식장에 조문객용 식기가 구비돼있고, 세척을 위한 공간이나 설비가 마련돼 있다면 일회용품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외부에서 식기를 공급하고 수거해 세척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다행인 점은 이 같은 실태에 뚜렷한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의 제도 강화에 발맞춰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경남 김해시는 지난해 2월부터 민간 장례식장을 대상으로 다회용기 사용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올해 3월 1곳이 추가로 참여하며 총 5곳이 동참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해시는 장례식장에서 사용할 스테인리스 식기를 구입하고, 세척장을 마련했다. 각 장례식장에 식기를 제공하고, 사용 후 수거 및 세척한 뒤 다시 제공한다.

세종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 중인 은하수공원 장례식장도 지난 2월부터 일회용품이 아닌 일반 식기를 도입했다. 세척은 초음파 식기세척기를 통해 자체적으로 하며, 조문객이 너무 많아 불가피한 경우에만 일회용품을 사용 중이다.

서울시 산하 공공 종합병원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은 지난달부터 전국 최초로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빈소엔 일반 식당에서 사용되는 그릇과 접시, 수저, 그리고 다회용컵이 제공되며, 상에 얇은 비닐도 깔리지 않는다. 사용한 후에는 음식물 쓰레기만 따로 버리고 식기 등은 통에 모아두면 된다. 이는 외부업체가 수거해 세척을 거친 뒤 다시 장례식장에 제공한다.

이밖에도 대구, 인천, 광주, 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일회용품 없는 장례식장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삶을 마친 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수백년간 썩지 않을 쓰레기를 남기는 것.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로 남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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