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나오고 있다. / 뉴시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나오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국민의힘이 연일 사법부의 판단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법원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판결에 불만을 드러낸 반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의 특별 사면을 옹호하고 나서면서다. 정치권이 나서서 사법부의 판단에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새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지난 10일 정 의원의 고(故) 노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징역 6개월의 판결을 내렸다. 정 의원은 지난 2017년 9월 페이스북에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은 권양숙 여사와 아들이 박연차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벌어진 일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재판부는 이를 합당한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또한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인물이 아니기에 ‘공적 관심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 의원은 판결 후 기자들과 만나 “의외의 판단”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검찰이 벌금 500만원 약식기소한 건을 정식재판으로 돌린 뒤 검찰의 구형보다 더 높은 형량이 나온 데 따른 반응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과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사실상 이러한 판결이 '정치적'이라는 데에 국민의힘 내부의 목소리가 모였다.

국민의힘의 ‘정치적 판결’ 주장은 해당 판사의 과거 글이 조명되면서 더욱 불이 붙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박 판사는 고등학생 시절 고(故) 노 전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해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글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비정상적 판결은 이러한 판사의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정치적 이념에 치중해 상식적 판결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으나, 국민의힘은 비판의 목소리를 거두지 않았다. 여기다 대통령 선거 6일 후인 지난 2022년 3월 15일, 박 판사가 페이스북에 “이틀 정도 울분을 터트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공직자의 윤리 기준을 따져 물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도 사실관계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 당내서도 사법부 무력화 비판

‘정치적 판결’을 주장하며 해당 판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국민의힘의 시선은 그 너머를 보고 있다. 이를 고리로 김명수 대법원 체제의 사법부를 겨냥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한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이 두드러지다 보니 이러한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앞세웠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일 논평에서 “그동안 김명수 대법원을 위시한 법원은 선택적 고무줄 재판과 코드 인사, 대법관 인사개입 논란 등으로 불신을 자초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선 여당이 사법부를 길들이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까지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퇴임이 약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를 사법부 쇄신의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강사빈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16일 논평에서 “이번 논란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송두리째 뽑은 것은 물론 사법부 쇄신의 필요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말했다.

결은 다르다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광복절 특사로 사면한 것도 여당을 향한 비판을 자초한 꼴이 됐다. 야권에서는 사법부의 무력화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물론 국민의힘은 김 전 구청장이 ‘공익 제보자’인 데다 대통령의 적법한 사면권 활용이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안에서도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같은 모습 자체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정치권이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우리의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를 때 사회적으로 최종적 결정을 내주는 기관이 사법부”라며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는데 그걸 존중하지 않는다는 건 법치를 강조하는 보수 정당의 태도, 윤석열 정부의 태도와 부합하느냐. 솔직히 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