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삼 시사위크 논설위원
박록삼 시사위크 논설위원

지난 14일 오전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암사자 한 마리가 우리 밖으로 탈출했다. 무시무시한 맹수의 탈출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200~300m 근처에는 민가와 캠핑장이 있다. 긴급 신고 이후 주민들과 캠핑객들은 재난안전문자를 받고 대피했다. 경찰과 소방관, 지역 엽사 160명이 동원됐다.

암사자의 이름은 스무 살 이상으로 추정되는 ‘사순이’. 야생에서 17~18년 사는 사자는 사육 상태에서 30년 가까이 산다. 이를 감안해도 사순이는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인 셈이다. 게다가 나면서부터 사람 손에 길들여진 탓인지 사람에 대해 야생의 본성보다는 애교를 더 많이 드러냈다 한다. 그래서였을까. 사순이는 멀리 달아나지도 않았고, 흉폭하지도 않았다. 고작 1시간 남짓 만에 우리 근처 20~30m 풀밭에서 얌전히 웅크려 있는 채로 발견됐다.

몇 달 전 봄날 세 살짜리 얼룩말 ‘세로’가 어린이대공원을 박차고 나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아프리카 초원이야 아예 구경한 적도 없으니 그 대자연이 그리울 일도 없었겠다. 청소년기 즈음인 세로 입장에서는 그저 차례로 세상을 떠난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무척 컸을 테다. 세로는 서울 광진구 주택가와 차도를 뛰어다니다 마취총 일곱 발을 맞고서 어린이대공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동물을 가두고 키우는 방식에 대한 논란이 다시 거세질 조짐이다.

동물원은 언제 처음 생겼을까. 지혜의 왕으로 통하는 3000년 전 솔로몬왕은 소, 말, 양 틈바구니에서 가젤, 숫사슴 등 야생동물을 키웠고, 2000년 전 주나라 무왕은 ‘지식원’을 지어 호랑이, 코뿔소, 새, 뱀, 거북이 등을 키웠으니 현대식 동물원의 원조쯤 되는 셈이다. 이후에는 왕족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과시할 수단으로 야생동물을 붙잡아 기르고 전시하곤 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서구권이나 아랍 등에서 호랑이, 사자, 곰을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등 비슷한 경향으로 남아 있다.

요즘 동물원은 단순한 유희와 오락거리로서 기능만큼이나 멸종 위기를 겪는 야생동물의 종 보존에 대한 과제의식이 크다. 실제로 종의 보존 및 다양한 동물 생태계에 대한 연구 목적은 동물원의 중요한 역할이다. 동물원의 순기능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야생동물 멸종 위기 원인의 상당 부분은 인간이 제공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개발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훼손했다.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종의 절멸 위기를 겪는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동물원을 만들었지만, 그 공간을 통해 또다시 그들의 야생성과 본능마저 앗아갔다는 사실은 역설적일 수밖에 없다. 좀더 고등한 생명체인 인간이 다른 생명체의 권리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1906년 9월 뉴욕 브롱크스동물원에는 콩고 피그미족 ‘오타 벵가’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전시됐다. 당시 동물원 측은 인간이 영장류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을 실증하기 위한 기획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149㎝의 오타 벵가는 그후 동물원에서 풀려났지만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야만적인 일이었지만, 사순이와 오타 벵가가 다른 부분이 무엇일지 궁금할 따름이다. 만약 어느 SF영화처럼 초고등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정복하고 지배한다면, 그 이후 현생 인간이 사순이 혹은 오타 벵가와 비슷한 신세가 되는 것이 합당한지 여전히 의문이다.

다시 사순이 얘기. 사순이는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우려한 당국의 방침에 따라 발견 직후 수풀 사이에서 사살됐다. 사순이와 세로의 공통점은 그들과 같은 종이 나고 자랐던 자연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순이는 그 상태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고, 세로는 다시 우리를 뛰쳐나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한 우리 안에서 자연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정도다. 오타 벵가의 삶은 그 중간 어디쯤이 되겠다. 교감하고 소통하는 생명체라는 점에서 사순이와 세로, 오타 벵가, 현생 인류는 크게 다르지 않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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