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삼 시사위크 논설위원
박록삼 시사위크 논설위원

대재난이 벌어졌다. 거대한 도시는 폐허가 됐다. 불이 나도 소방관은 오지 않고, 약탈과 살육이 횡행함에도 군인이나 경찰관은 나타나지 않는다. 무더기로 발생한 이재민은 짐승무리처럼 떠돌아다녀야 할 뿐 대피할 곳이 없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중앙정부도 없다. 무정부 상태다. 오로지 자력으로 뺏고 지키며 생존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대지진으로 무너진 도시,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얘기다. 인간 군상의 이기심과 욕망, 추악한 본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해야 했기에 국가와 정부의 존재는 과감히 생략됐을는지 모른다.

문제는 현실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생략할 수 없는 국가와 정부의 존재가 생략됐다는 답답함에 짓눌린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류를 시작한 상황 앞뒤로 국가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헌법적 책무를 가진 대통령은 불안과 두려움에 걱정이 쌓여가는 국민들, 바다에 의지해 삶을 꾸려온 어민들, 섬과 해양도시 지역경제 관계자들 등에게 직접 책임있게 설명하는 과정을 생략했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막지 못해 송구하다. 지금까지는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향후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안전성 기준 충족 여부를 파악해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각 중단을 요구하겠다.” 정도의 얘기를 차관급인 국무조정실 차장이 아닌 대통령이 직접 해야 했다. 대통령실은 오히려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팔소매 걷어붙이고 나섰다. 10억원 예산을 들여 ‘방사능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홍보 영상을 만들어 1,600만회가 넘는 영상 조회수를 기록하도록 애쓰기까지 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들의 요구는 전혀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다.

숨진 해병대 채 상병 유족들의 국가에 대한 원통함은 사건 이후 몇 곱절로 더 커져갔다. 사건 발생 직후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는 대통령의 명을 받들었던 해병대 수사단장은 국방부의 개입 이후 집단항명의 수괴가 됐는가 하면,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된 수사 기록은 불법적으로 군검찰이 회수해갔다. 국방의무를 이행하다 숨진 청년군인도, 27년 동안 복무하며 해병대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대령도 국가는 보호해주지 못했다. 보호는커녕 이쯤 되면 차라리 정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나을 정도인 셈이다.

어디 산 사람뿐이랴. 빼앗긴 국가를 되찾길 간절히 원했던 영령들에게도 국가의 존재는 희미하기만 하다. 정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독립군 다섯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려 한다. 홍범도 장군과 지청천 장군,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 등 일제강점기 일본과 맞선 대표적인 이들이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군인의 근본적 자세로 배워야 하고, 군대의 존재와 책임의 뿌리로서 기억하고 기려야 함은 물론이다.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데 진보 보수 혹은 여야가 따로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이범석 장군은 해방 이후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내는 등 김좌진 장군, 지청천 장군과 함께 대표적 우익 인사이기도 하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냈지만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일찍이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일부러 지우려 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갑자기 이렇듯 푸대접 받는 독립군 장군들로서는 국가의 부재이자 ‘국가 역할의 역주행’일 뿐이다.

답답함의 출발이었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불편함을 얘기하는 반응이 많다. 블랙 코미디로서 캐릭터 묘사와 상황 설명 등이 그리 친절하지 않은 탓으로 보여진다. 수직으로 치솟은 아파트가 탐욕과 살육의 공간이었다면, 쓰러져 수평으로 누운 아파트는 공존과 화해, 새로운 공동체의 보금자리를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그렇게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도 역시 국가와 정부의 역할과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부디 우리의 현실은 영화와 달라야 한다. 국가와 정부의 존재는 소중하고 그 역할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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