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보영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 BH엔터테인먼트
배우 박보영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 BH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보영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로 관객 앞에 섰다. 스크린 복귀는 ‘너의 결혼식’(2018) 이후 무려 5년만이다. 극 중 모든 것이 무너진 현실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명화로 분해 새로운 변신을 꾀한 그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작품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라 좋고 만족스럽다”며 밝은 미소와 함께 작품을 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돼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영화 ‘잉투기’ ‘가려진 시간’ 등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014년 연재 이후 호평을 얻은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을 새롭게 각색했다.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는 생존을 위해 외부인들을 배척하는 영탁(이병헌 분)과 그를 따르는 주민들 사이에서 모두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는 인물이다. ‘모두’가 아닌 ‘나만’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중심을 지키는 명화는 인간의 또 다른 단면을 담아내며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데뷔 후 처음으로 재난 드라마 장르에 도전한 박보영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지켜가고자 노력하는 명화를 한층 성숙한 면모로 소화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눈빛과 표정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단단한 연기 내공을 새삼 깨닫게 한다. 

박보영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오랜만에 관객을 만나는 소감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함께 한 시간을 돌아봤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끝까지 소신을 잃지 않으려는 명화로 분한 박보영. / 롯데엔터테인먼트
끝까지 소신을 잃지 않으려는 명화로 분한 박보영. / 롯데엔터테인먼트

-명화는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그의 선택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재난 상황이 발생하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이 변화를 겪잖나. 영화에서 명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념을 갖고 가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래서 더 잘 그리고 싶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없었다. 다만 나라면 명화처럼 용기를 내진 못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 되게 의심스러운데’ 하며 파헤치는 것까지는 해도 사람들 앞에서 총대를 메고 뭔가 할 순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명화라면 책임감과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지 납득이 가서 최대한 그렇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엄태화 감독이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나. 

“명화라는 캐릭터에 대해 선명한 그림을 갖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에게는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 내게는 엄청 섬세하고 디테일한 디렉션을 줬다.(웃음) 감독님은 정말 섬세한 분이다. 디렉션을 줄 때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명화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떠냐’며 권유하는 편이었다. 좋았다.” 

-명화를 표현하는데 가장 어려운 지점은.  

“나는 명화보다 더 밝은 사람이고 목소리 톤 자체가 높기도 한데, 촬영하고 모니터를 보면 나의 평소 습관이나 콧소리, 애교 섞인 말투가 조금씩 나올 때가 있더라. 민성이 화장실에 숨을 때 ‘빨리 들어와’라고 해야 하는데 ‘들어왕’이라고 들려서 그런 게 너무 아쉬웠다. 단호하게 ‘ㅇ’이 없는 ‘들어와!!!’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웃음) 나중에 후시 녹음할 때 감독님한테 ‘나는 이게 너무 크게 들린다’고 했는데, 감독님은 잘 안 들린다고 하더라. 그 부분을 스스로도 인지하려고 노력했고 감독님도 많이 잡아줘서 그래도 잘해 나갈 수 있었다.”

-이병헌, 김선영(금애 역)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함께했다. 어땠나.

“잘하는 선배들과 같이 작품 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하니 무력감 같은 게 느껴졌다. 너무 잘하니까. 나는 정답을 찾는 게 어렵고 힘든데, 선배들은 정답이 많은 것 같은 거다. 이것도 정답이고 저것도 정답인 것 같고. 나는 왜 잘하지 못할까, 부족할까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병헌 선배가 아니다, 난 아직 병아리고 갈 길이 멀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극복하겠지 하고. 선배들도 여전히 작품을 마주하면 긴장하고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위안이 되더라. 선배들도 이렇게 고민하는데 내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박보영. / BH엔터테인먼트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박보영. / BH엔터테인먼트

-엔딩을 명화가 장식하기도 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어떤 고민을 했나.  

“시나리오를 봤을 때 엄청 크게 다가온 장면이 명화의 엔딩신이라 너무 잘하고 싶었다. 마지막 촬영 날 그 신을 찍었는데 긴장도 많이 하고 테이크도 많이 가고 감독님과 상의도 정말 많이 했다. 편집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이었어요’라는 대사가 아예 없는 버전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줄 것인가, 오롯이 관객들에게 맡길 것인가 끝까지 고민하셨던 것 같다. 정말 고민도 많이 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정답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관객이 판단해 주겠지.(웃음)”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다.  

“많은 분이 기대하는 얼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인지도 알고. 하지만 그걸 깨고 싶은 것은 배우로서 내 욕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에도 알게 모르게 도전은 많이 했다.(웃음)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그 연장선상이긴 한데, 180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 거부감이 생길 것도 같아서 내가 가진 얼굴과 표정에서 변주를 주고 스며드는 작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이런 작품 저런 모습을 건드려 봐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명화도 낯선 얼굴이 있긴 하지만 아예 보지 못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겁이 나서 선택하지 못하는 나와 그래도 이 직업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도전해 봐야 하지않겠나 하는 자아가 자꾸 충돌하긴 한다. 깨지고 박살 나서 슬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크다. 박살 난 경험도 많고. 결과물이 박살 난 적도 많고 현장에서 스스로 연기에 대해 박살 난 적도 많다. 그런데 그게 다 밑거름이 되고 성장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이 강점이고 약점인지 알게 되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했던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박보영이 한층 성숙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 BH엔터테인먼트
박보영이 도전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 BH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사랑스러운 매력과 귀여운 이미지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하나.

“예전에는 그래서 더 과감하게 시도하고 평소 나의 표정이나 제스처, 말투를 쓰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은 감사한 줄 알자는 마음이 생겼다. 강점이라는 게 하나라도 있는 것 자체가 어디인가. 그리고 동안이라고 하지만 이제 서른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내 눈에는 보인다. 조금씩 성숙해져가는 과정이. 내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고 보면 행복한 일이잖나. 지금은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경험도 많아지고 내 얼굴에서도 세월이 묻어나기 시작하면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선택지가 훨씬 더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더 어렸다면 명화를 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거든.”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게 다른 게 영화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엔딩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망적이라고 판단한 분들도 있더라. 엔딩도 그렇고 그려가는 과정 안에서도 어떤 선택에 대해 누군가는 이해하고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재밌는 지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단순히 재난물, 오락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셨으면 좋겠다. 그런 걸 상상하고 마주하면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 있다.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면 정말 재밌게 잘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시나리오를 덮으면서 느낀 감정과 경험을 꼭 해보셨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성공한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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