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할인분양 등 건설사 자구책 우선… 검증된 건설사 대상 만기연장 검토 필요”

지방 미분양 등의 여파로 올해 종합건설사의 폐업건수가 75% 증가했다. / 뉴시스
지방 미분양 등의 여파로 올해 종합건설사의 폐업건수가 75% 증가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올해 종합건설사 폐업건수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1년 전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난데다 지난 2006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간 사업성이 좋은 지역으로 꼽혀왔던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의 종합건설사 폐업건수도 지난해보다 증가한 상황이다. 특히 미분양 문제가 심각한 대구 지역은 종합건설사 폐업건수가 1년 만에 무려 5배 가량 증가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 고물가·고금리, 러-우크라 전쟁에 이은 이-팔 전쟁 발발, 부동산PF 자금 경색 등으로 인해 올 연말 이후에는 종합건설사의 폐업건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건설업계에서는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보다는 건설사들의 자구책 마련이 우선 실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올해 종합건설사 폐업건수 17년만에 최대치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 29일까지 종합건설사의 폐업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총 453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259건에 비해 74.9% 증가한 수치며 지난 2006년 491건 이후 역대 최대치이기도 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그간 타지역 대비 사업성이 좋은 지역에 속한 서울‧경기‧인천에서도 종합건설사의 폐업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1년 간 종합건설사 폐업건수는 52건에서 76건으로 46.2% 늘었고, 같은기간 경기는 46건에서 102건으로 무려 121.7% 급증했다. 인천은 15건에서 21건으로 40% 증가했다.

미분양이 심각한 대구는 지난해 종합건설사 폐업건수가 3건에 불과했으나 올해에는 16건을 기록하면서 1년 새 5배나 늘어났다. 대구와 마찬가지로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북은 13건에서 22건으로 69.2% 증가했다.

이외에도 부산(18건→30건), 대전(7건→13건), 세종(2건→3건), 제주(4건→9건) 등 대부분 지역에서 종합건설사 폐업건수가 1년만에 늘어난 반면 광주(31건→19건), 울산(9건→3건) 등 일부 지역의 폐업건수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 경기 침체로 올해 분양실적 목표치 미달

이처럼 종합건설사 폐업건수가 증가한 주요 원인은 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 감소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부동산R114’가 발표한 ‘2023년 민영아파트 분양 계획물량 및 실적 추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 민영아파트(민간분양+민간임대) 분양실적은 총 11만3,103가구로 연간 공급목표치 25만8,003가구의 44% 수준에 그쳤다.

‘부동산R114’는 남은 4분기 동안 약 8만여가구가 분양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 경우 올해 연간 총 공급량은 20만가구를 밑돌게 된다. 따라서 올해에는 지난 2013년 20만281가구 이후 10년 만에 민영아파트 공급 최저치를 기록할 수도 있다.

백새롬 부동산R114 리서치팀 책임연구원은 “청약 훈풍에 힘입어 수도권 중심으로 올 연말까지 막바지 물량이 몰릴 수 있으나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은 단지에 따라 선별청약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어 계획 물량을 차질 없이 공급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분양 감소와 함께 지방 미분양, 부동산PF 자금 경색, 러-우크라 및 이-팔 전쟁 등 여러 악재가 터지면서 실제 회생절차에 돌입한 건설사들도 늘고 있다.

지난 9월 초 서울회생법원은 시공능력평가 75위인 대우산업개발을 상대로 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또 서울회생법원은 인천지역 기반 중소건설사 국원건설과 대우산업개발, 동흥개발 등을 대상으로 회생 절차에 나섰다. 이 중 국원건설은 이달 초 최종 부도처리됐다.

이들 외에도 삼호건설, 굿모닝토건, 대우조선해양건설, 에이치엔아이엔씨, 대창기업, 신일건설 등 전국 각지 중소‧중견건설사들이 현재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9월말 정부가 부동산PF 대책 등이 담긴 주택공급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 뉴시스
지난 9월말 정부가 부동산PF 대책 등이 담긴 주택공급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 뉴시스

◇ 중소건설사 “정부 대책 필요”… 전문가 “자구책부터 실행해야”

중소‧중견건설사들은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인해 폐업건수가 늘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중견건설사 A사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자기자본이 약한 중소‧중견건설사들은 그간 자금조달 창구로 부동산PF를 주로 이용해 왔다”며 “하지만 기존 3~5%대 수준이었던 PF대출금리가 최근에는 7%대 이상까지 치솟았고 만기연장시에는 고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또 신규 대출을 하려면 대형건설사 수준의 신용도 등이 요구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 침체로 미분양마저 늘고 있어 기존에 벌렸던 사업의 수익성도 낮아지고 있다”며 “특히 중소‧중견건설사의 사업이 몰린 지방은 미분양 문제가 여전히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중견건설사 B사 관계자는 “시장에서 시평 상위권에 속한 대형건설사들의 회사채 금리는 3~5% 수준에 불과한 반면 만기연장에 나선 중소‧중견건설사의 경우 많게는 10% 이상의 고금리를 요구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말했다.

이어 “지방에서 중소‧중견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는 대형건설사 브랜드에 밀려 미분양될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일부 지역에선 선별적으로 대형건설사 브랜드에만 청약이 몰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여기에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크게 오른 공사비, 고물가에 따른 인건비 등 각종 비용 증가, 이-팔 전쟁으로 인해 언제 오를지 모르는 유가 등 중소‧중견건설사 입장에서는 악재만 가득한 상황”이라며 “정부는 일시적이나마 중소‧중견건설사를 위한 유동성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은 어렵다며 건설사들의 할인 분양 등 자구책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미분양이 관건”이라며 “지방 미분양이 심각해 중소건설사의 현금흐름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이는 곧 폐업까지 이르게 된다”고 밝혔다.

또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하나하나 개입하기도 어렵다. 방만한 경영 때문인지, 분양성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조건 시공부터 했는지 등 옥석을 가려서 지원해야 하는데 쉽지만 않다”며 “건설사들의 자구책이 선행되야 한다.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기 용인 지역에서는 원래 가격 대비 30~40% 할인 분양한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고준석 대표는 “은행에서 건실한 건설사를 상대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게 중요하다”며 “신규 추가 대출은 어렵더라도 검증된 건실한 건설사에 한해 만기 연장을 유예해줘 자금 유동성에 숨통을 틔워주는 방안을 금융당국이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뒤이어 “최근 금융권이 고금리 예·적금 출시 등 수신경쟁에 몰입하다보니 기준금리가 3.5%로 고정됐음에도 대출금리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곧 중소건설사들의 이자부담으로까지 이어지는 만큼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과도한 수신경쟁을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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