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귀농 후 우리의 가장 큰 꿈이었던 내 땅과 내 집 마련. 우리는 4년차에 그 꿈을 이뤘다. / 청양=박우주
귀농 후 우리의 가장 큰 꿈이었던 내 땅과 내 집 마련. 우리는 4년차에 그 꿈을 이뤘다. / 청양=박우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귀농을 하고 우리는 10회 이상 방송출연을 했다. 거의 모든 방송사에 다 출연한 것 같다. 그때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내 땅과 내 집을 갖는 것이 꿈입니다.” 

귀농 4년차에 우리는 그 꿈을 이뤘다.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지으며 집 지을 땅을 구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우리는 원하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기준은 이랬다. 

1. 하우스를 3동 이상 지을 수 있는 1,500평 이상 농지.

    (단, 집 지을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필지가 2~3개로 나눠져야 한다.)

2. 바로 옆에 집을 지을 수 있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 

3. 관정이 있거나 지하수가 좋은 곳. 

4. 당시 살던 곳의 이장님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거기서 너무 멀지 않은 곳.

물론 돈을 많이 쓰면 아무 곳이나 사서 내가 원하는 용도로 바꿀 수 있겠지만, 우리는 큰 빚을 지기 싫었다. 그래서 1년 이상 발품을 팔았다. 첫 번째로 갔던 곳은 농어촌공사. 이곳은 농업인들에게 농지 판매나 임대를 도와주는 곳이다. 그곳에 가서 농지가 있는지 찾아 봤지만 없었다. 농지가 나오면 연락을 준다고 했고, 이후 임대 연락은 왔지만 판매 관련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도 농어촌공사에 맡기는 것보다는 부동산이나 이장님을 통해서 판매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농어촌공사는 임대농지를 구하기엔 좋을 거 같지만, 판매농지는 별로 없다.

우리보다 먼저 귀농해 땅을 구매하고 농업활동을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그분들은 사람들 소개로 땅을 구매했다고 했다. 우리 땅도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고, 많은 곳들이 나와서 둘러보게 됐다. 그런데 땅 크기도 좋고, 가격도 좋고, 마음에 들어서 사려고 미팅날짜를 잡으면 갑자기 안 판다는 사람들이 3명이나 있었다. 또 가장 가깝게 지냈던 이웃분도 땅을 팔 의사가 있으셨는데 필지를 나누고 그러는 부분이 어려우셨는지 결국 안 파신다고 했다.

한 번은 집도 지어져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붙어 있는 곳을 보러갔는데, 환경도 좋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너무 비쌌다, 집도 신축도 아니고 옛날집인데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이어서 포기했다.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말을 해놔서 몇 주에 한 번씩은 연락이 왔고, 계속 땅을 보러 다녔다. 우리가 땅을 구해야 하는 마지노선은 5년차까지였다. 귀농인 혜택이 5년차까지 인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은 돈으로 집은 지을 수 있어도, 땅은 귀농창업대출로 구매하려고 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오랜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딱 드는 땅을 구할 수 있었다. / 청양=박우주
우리는 오랜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딱 드는 땅을 구할 수 있었다. / 청양=박우주

그러던 중 이장님께서 땅이 나왔다며 주소를 알려주셨고,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고 땅의 크기는 1,700평이었다. 하우스 3동이 이미 있었고, 지하수 관 시설 정도 갖춰진 곳이었다. 이곳은 개구리농장을 하던 곳이라 농사를 짓지 않아 오히려 땅이 좋았다. 농업을 계속한 땅은 관리가 잘돼있으면 좋지만 보통은 연작피해와 비료과다로 땅이 좋지 않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고, 이런 땅이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바로 계약을 했다. 우리는 이런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소개해 주신 분들에게 적당한 소개비를 드려야한다고 해서 우리 쪽과 상대 쪽 이장님 두 분에게 소정의 감사표시도 했다.

그렇게 10월에 땅을 구매했고, 이제 집을 지어야 했다. 업체를 쓴다면 빚을 내야 하지만 직영으로 내가 직접 참여해서 집을 짓는다면 빚 없이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12월 농사가 끝나고 3월까지 집 짓는 방법을 공부했다. 직접 집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기도 했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유명한 ‘지성아빠의나눔세상’이라는 곳이 귀농귀촌 관련 정보들이 참 많아서 추천한다.

나는 집을 지어본적도 없고 공부만 했지 실전경험이 없기 때문에 직영으로 짓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틀을 잡아 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다행히 4H라는 청년농부 단체에서 부모님과 집을 짓고 있는 형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일당을 주는 형태로 함께 집을 짓기로 했다. 와이프는 빈집에서 살 때 너무 힘들어 했고, 따뜻하고 깨끗한 집만 있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조력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짓기를 마칠 수 있었다. / 청양=박우주
우리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조력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짓기를 마칠 수 있었다. / 청양=박우주

집을 짓기 전에 해야 할 것 중엔 ‘용도변경’이 있었다. 집은 대지에만 지을 수 있다. 우리가 구매한 땅은 농림지역 안에 있는 ‘전(밭)’이었다. 그런데 농업인 혜택 중에 농업경영체등록증이 있는 농업을 하는 무주택 농부는 집을 지을 수 없는 농림지역이여도 30평까지 주택을 지을 수 있게 허가를 내주는 것이 있다. 농부라서 가능한 혜택이다. 우리는 이 혜택을 알고 땅을 구매했기 때문에 군청으로부터 용도변경 허가를 받았고, 또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할 지하수 수질검사도 의뢰해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집짓기에 들어갈 차례. 설계사무소를 찾아가서 설계관련 소통을 해야 하는데, 설계비는 다른 곳보다 비싸게 냈다. 청양군은 작기 지역이라 담합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다른 지역보다 비싼 건 확실했다. 이건 깎을 수도 없는 시스템이라 그대로 진행해야 했다.

농업인주택이면 표준설계도라는 설계도가 무료로 제공된다. 물론 그래도 설계 사무소는 이용해야한다. 표준설계도의 장점은 복잡한 설계 과정 없이 진행하면 돼서 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동안 생각했던 집 설계가 있었고, 돈을 더 내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설계대로 진행하고 싶어서 사용하지 않았다.

토목설계라는 것도 있어서 위치를 잡아주는 일을 하는 곳에서 설계가 들어왔고, 굴삭기를 불러 작업을 했다. 굴삭기 기사님이 하루 8시간정도 일을 해주시는 게 50만원이다. 그걸 며칠을 썼다. 집을 짓기도 전에 집을 지을 땅 구매와 설계 등 환경을 조성하는 데만 5,000만원 이상 들었다.

주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목조주택, 경량철골주택, 콘크리트주택, 모듈러주택 크게 이렇게 4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경량철골주택(판넬주택)으로 결정했다. 이유는 우리 예산에 맞줘 직영으로 지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30평으로 정한 이유는 위에 말했듯이 30평 이상은 허가가 안 나서다. 

우리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단열과 층고(천장높이)다. 시골 빈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단열이 안 되는 점과 손만 뻗으면 닿는 천장이 싫었다. 또 설계를 튼튼하게 하고, 자재들은 좋은 걸로 구매했다. 집을 지을 때 들어가는 자재와 물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직접 인터넷과 전화로 가격을 비교한 뒤 구매했다. 

나는 살면서 건축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함께 해줬던 조력자 형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2021년에 건축자재 가격이 거의 2배 가까이 올랐는데, 그전에 집짓기를 80%이상 완료한 덕분에 집짓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몇 가지만 일이 틀어졌어도 나는 집을 못 지었을 것이다. 운이 좋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미리미리 준비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생각한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blog.naver.com/foreveru2u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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