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한국알콜은 지난 3일 ‘소송 등의 제기·신청’ 공시를 통해 트러스톤자산운용 측으로부터 소송이 제기됐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알콜
한국알콜은 지난 3일 ‘소송 등의 제기·신청’ 공시를 통해 트러스톤자산운용 측으로부터 소송이 제기됐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알콜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기초 유기화합물 제조사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한국알콜은 지난 3일 ‘소송 등의 제기·신청’을 공시했습니다. ‘경영권 분쟁 소송’에 해당하는 ‘이사회 의사록 열람 및 등사 허가 요청’ 소송이 제기됐다는 내용입니다. 

이사회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기구로, 주주는 이러한 이사회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습니다. 상법 제391조의3 제3항은 ‘주주는 영업시간 내에 이사회의사록의 열람 또는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죠. 다만, 회사가 무조건 이에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법 제391조의3 제4항은 회사가 이사회의사록 열람 또는 등사 청구에 대해 ‘이유를 붙여 이를 거절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주주에게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상법 제391조의3 제4항은 이어 ‘이 경우 주주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이사회의사록을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죠.

소송은 누가 제기했을까요?

소송을 제기한 건 ‘주주 행동주의’로 널리 알려진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입니다. 앞서 한국알콜 뿐 아니라 태광산업, BYC 등을 상대로도 주주행동을 전개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남기기도 했죠.

트러스톤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한국알콜 지분을 5% 이상 취득했습니다. 당시 한국알콜은 ‘코로나19 특수’로 실적이 급증한 가운데, 주주가치 저해와 오너일가 전횡 논란 등으로 뒷말을 낳으며 주주들의 불만에 직면한 상태였는데요. 이런 가운데 이뤄진 트러스톤의 지분 취득은 예사롭지 않은 앞날을 예고했습니다.

이후 한국알콜은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먼저,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트러스톤 측으로부터 추천 받은 인사를 감사위원이 될 사외이사 후보로 올려 선임했습니다. 다른 후보자에 대해서도 사전 논의를 거친 것으로 전해지고요. 이는 주주행동과 갈등을 빚는 상당수 기업과는 다른 이례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사회 문까지 열며 트러스톤을 ‘파트너’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었죠.

이어 지난 8월엔 배당 관련 발표도 이뤄졌습니다. 당시 추진 중이던 자회사 퓨릿의 상장이 마무리되면, 구주매출 대금의 20%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과 자사주를 제외하고 차등배당하겠다는 계획이었죠. 결과적으로 퓨릿은 흥행에 성공하며 지난달 상장했고, 차등배당은 26억원 규모로 이뤄지게 됐습니다. 한국알콜이 그동안 ‘짠물배당’이란 지적을 받아온 점,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실시한 배당이 10억원 수준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이 역시 큰 변화였죠.

이처럼 한국알콜과 트러스톤은 갈등보단 화합의 행보를 보였고,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내 다시 예사롭지 않게 흘러갔는데요. 트러스톤은 지난 9월 1일을 기해 한국알콜 지분 보유목적을 기존의 ‘일반투자’에서 ‘경영권 영향’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통상 경영권 분쟁의 ‘신호탄’ 중 하나로 여겨지는 변화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트러스톤은 지분 확대에도 나섰고, 현재 9.37%까지 늘린 상태입니다. 그리곤 이사회의사록 열람 및 등사 요청 소송까지 제기하고 나선 겁니다. 트러스톤은 앞서 지난 10월에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으며, 이번이 두 번째 소송 제기입니다. 훈훈했던 양측 사이의 기류가 순식간에 냉랭해진 모습이죠.

트러스톤은 왜 이사회의사록을 요청했을까요?

한국알콜이 트러스톤 측 추천 인사를 이사회에 입성시키고 주주가치 제고 차원의 배당도 실시하기로 했습니다만, 다른 측면에선 양측의 입장이 대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러스톤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기주총에서 우리가 추천한 인사를 선임하긴 했으나 이후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회사 측의 대응이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는데요. 구체적으로는 내부거래를 줄일 것과 유휴 부동산 매각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내부거래의 경우 특히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판단해 과거 이사회의사록을 확인 및 검토하는 절차에 착수했다는 겁니다.

트러스톤 측은 한국알콜의 내부거래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대응을 이어간다는 방침입니다. 지분 보유목적 변경과 지금까지 제기한 두 건의 이사회의사록 열람 및 등사 요청 소송은 그 출발점인 셈이죠. 물론 한국알콜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양측의 기류가 다시 훈훈해질 수도 있습니다만, 당분간은 긴장 상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한국알콜 ‘소송 등의 제기·신청’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31103900383
2023. 11. 03.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