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 제대로 봄바람을 불고 온 ‘서울의 봄’. / 뉴시스
극장가에 제대로 봄바람을 불고 온 ‘서울의 봄’. / 뉴시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비극적 현대사라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 이미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와 2시간 20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 여기에 그 어느 때보다 침체된 극장가 분위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상황 속 영화 ‘서울의 봄’은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비트’(1997), ‘아수라’(2016)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한국 영화 최초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치열했던 ‘그날’을 스크린에 펼쳐냈다. 

치열했던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현장.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치열했던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현장.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단점 완벽 상쇄한 메가폰의 힘, 김성수 감독의 저력 

영화가 처음 공개된 후 업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나온 평가는 ‘잘 만들었다’였다. 잘 짜인 탄탄한 스토리와 군더더기 없는 연출, 웰메이드 프로덕션 등 높은 완성도에 압도적인 호평이 쏟아졌다. 

관객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실 관람객의 평가가 반영된 CGV골든에그지수는 개봉 당일 98%로 출발해, 개봉 6주 차인 현재까지도 99%를 기록 중이고, 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비롯해, 포털사이트 네이버 관람객 평점 역시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CGV 관계자는 “1,000만이 넘는 관객 중 99%가 다 만족한다는 의미”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메가폰의 힘이다. 김성수 감독은 모두가 알지만 잘 알지 못했던 그날 서울의 밤을 생생하게 담아내면서도, 탐욕과 신념의 대결, 선과 악의 대립 등 흥미로운 구도 설정과 사건 속 인물들의 성격, 구체적인 행적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 극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결말에도 긴장감을 선사하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며, 긴 러닝타임과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단점을 완벽히 상쇄했다. 여기에 시대의 리얼리티와 군사반란 당일의 긴박감과 긴장감, 인물의 감정 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프로덕션 역시 몰입도를 배가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양경미 평론가는 “국민들의 공감대, 시대적인 상황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재밌었다는 것”이라며 “김성수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다. 특히 선악 구도를 명확하게 잡아 흡입력을 높인 게 주효했다. 그 덕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자신도 모르게 영화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압도적인 열연을 보여준 황정민(왼쪽)과 정우성.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압도적인 열연을 보여준 황정민(왼쪽)과 정우성.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전두광 삼킨 황정민, 인생연기 정우성… ‘빈틈없는 앙상블’ 

배우들의 열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흥행 이유다. 먼저 황정민은 “전두광을 삼켰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변신과 한계 없는 캐릭터 소화력으로 깊은 연기 내공을 또 한 번 입증하며 관객을 제대로 매료했다. 김성수 감독도 “반란군의 우두머리라는 단선적인 모습뿐 아니라 집요함과 허세, 불안까지 복합적인 면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반란군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태신으로 분한 정우성은 ‘역대급 인생 연기’라는 평가까지 이끌어냈다. 특유의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오가는 폭넓은 스펙트럼과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신념을 가진 군인 이태신의 모습을 묵직하게 그려내며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캐릭터를 추가했다.

여기에 참모총장 정상호로 분한 이성민부터 9사단장 노태건 역의 박해준, 헌병감 김준엽 역에 김성균, 대통령을 연기한 정동환, 국방장관 김의성, 특전사령관 역의 정만식, 총장 납치 후 육본 벙커의 사령탑이 되는 참모차장 역 유성주, 전두광의 선배 라인인 반란군 장성 역 안내상 등과 특별 출연한 정해인(오진호 소령 역), 이준혁(총장 경호원 역)까지 굵직한 연기파 배우들이 제 몫을 충실히 해내며 빈틈없는 앙상블을 완성했다.  

정우성은 개봉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배우가 정말 많이 나오면 독이 될 수 있다. 협주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부산스럽고 산만한 장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김성수 감독이 정말 집요하게,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모든 캐릭터를 관찰하며 엄청난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MZ관객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서울의 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MZ관객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서울의 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심박수 챌린지’ 등 각종 ‘밈’부터 현대사 공부까지… ‘MZ’가 반응했다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당연히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특히 12‧12 사태를 직접 겪었던 중장년층뿐 아니라, 해당 사건을 교과서로만 접했던 2030세대까지 사로잡으며 다양한 연령층의 선택을 받았다. CGV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관객의 절반 이상인 53%가 2030세대였다. 성별 분포도 여성(53.6%)과 남성(46.4%)으로 고르다.

그중에서도 소셜미디어 활용에 능숙한 2030 관객이 주 관람층이 되면서 입소문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스마트워치로 영화 관람 전후 변화한 심박수와 스트레스 지수 등을 인증하는 ‘심박수 챌린지’가 유행했고, ‘분노’ 가득한 관람평과 ‘N차 관람’을 인증하며 영화에 대한 정보와 감상을 자발적으로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와 대사를 활용한 각종 ‘밈(meme)’이 나오며 인기몰이를 했고,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이 납치돼 고통 받는 모습을 담은 영화 ‘인질’(2021) 관람을 추천하는 게시글이 호응을 얻으면서 해당 영화가 재개봉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새로운 관람 문화는 자연스레 홍보 효과로 이어지며 주차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는 원동력이 됐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MZ 세대의 특징도 장기흥행을 이어가는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800만이 넘은 후 ‘서울의 봄’을 봤다는 한 20대 관객은 “티켓값도 비싸고 OTT도 있어서 극장에 안간지 꽤 오래됐는데 ‘서울의 봄’은 주변에서 다 봐서 버티고 버티다 봤다”며 “영화를 안보면 대화가 안돼서 봤는데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단순한 ‘관람’이나 ‘놀이’에만 그치지 않고 영화를 보기 전후 해당 사건이나 현대사에 관해 공부하는 등 이른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교육과 오락의 합성어) 현상까지 생겨난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한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어디까지 허구고 실제인지 정보를 찾아봤고 더 관심이 생겨 관련 도서도 구매했다”고 이야기했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개봉 초기에는 MZ세대인 2030관객들로부터 어느 정도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일부 우려가 있었지만 오히려 영화를 본 젊은 관객들이 더 영화에 열광하고 입소문 내면서 흥행 탄력을 받았다”며 “또 100명 중 7.5명이 ‘N차’ 관람을 하면서 올해 개봉작 중 최고 관객을 동원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의 봄’의 흥행은 앞으로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극장가 비수기로 꼽히는 11월 개봉 영화더라도 ‘천만’을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서울의 봄’의 흥행과 신작 개봉으로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올해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주말에도 연휴를 앞두고 있어 앞으로 흥행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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