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학원, 시·구 ‘종합의료시설’ 추진에도 일방적 폐원 강행
재단 “규제 안 풀어주면 병원 방치될 것, 도시 미관 저해 부작용”
‘종합의료시설 지정’ 시 사업 제한… 부지 가치하락 가능성
“중구 개발지역 多, 거주인구 증가 가능성… 의료시설 존치해야”

서울백병원 폐원을 강행한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서울시와 중구청에 ‘도시계획시설사업(종합의료시설)’로 지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 제갈민 기자
서울백병원 폐원을 강행한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서울시와 중구청에 ‘도시계획시설사업(종합의료시설)’로 지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 제갈민 기자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지난해 서울백병원 등 임직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서울백병원의 폐원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이에 서울시와 서울 중구에서는 지역 의료공백 우려에 해당 부지를 ‘도시계획시설사업(종합의료시설)’로 지정하는 것을 추진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 폐원을 강행했는데, 이제 와서 “종합의료시설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비판이 적지 않다.

인제학원은 지난해 9월 1일 서울백병원 진료 종료(폐원)를 알렸다. 그러나 서울백병원 폐원 과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당시 서울백병원 교직원과 인제대학교 교수평의회, 교수노조 인제대지회, 의대교수노조 등 다수의 관계자들은 인제학원의 ‘서울백병원 폐원 의결’에 대해 “불법과 부정으로 이뤄진 결정”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인제학원은 이들의 목소리를 묵살한 채 서울백병원 폐원을 밀어붙였다. 재단 측은 “서울백병원은 2004년 73억원 손실을 기록한 후 줄곧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등 적자 만성화로 경영난을 겪었다”며 “경영정상화 노력에도 누적 적자가 1,745억원에 달한다. 서울백병원 폐원은 형제병원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인제학원의 일방적인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국회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백병원의 폐원은 수익사업을 위한 용도변경을 전제로 한 행위”라며 “적자경영 때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백병원만 보면 적자 실적을 기록 중이지만 인제학원 산하 상계·일산·부산·해운대백병원 등 부속병원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매년 수백억원의 이익을 남기고 있다.

도 의원은 이를 지적하면서 “다른 백병원 개원 시 서울백병원 도움을 받아 시작했기 때문에 공동운영체로 보는 게 합당하다”며 “서울백병원만 보면 적자지만 다른 곳을 합치면 매년 수백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다. 부속병원 손익계산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과 2022년 순이익은 각각 752억원과 603억원”이라고 말했다.

백병원 전체는 흑자를 기록한 상황에도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 한 곳의 적자를 이유로 폐원을 했고, 이제는 서울시와 중구청의 ‘서울백병원 종합의료시설 지정’ 추진을 재고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제학원 재단 측과 상계·일산·부산·해운대백병원 일부 관계자들은 서울시와 서울 중구청의 서울백병원 부지 종합의료시설 결정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 제갈민 기자
인제학원 재단 측과 상계·일산·부산·해운대백병원 일부 관계자들은 서울시와 서울 중구청의 서울백병원 부지 종합의료시설 결정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 제갈민 기자

또한 재단은 최근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도시계획시설 결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탄원 서명을 받아 중구청에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서울백병원 폐원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형제병원(상계·일산·부산·해운대백병원) 살리기를 위해 도시계획시설사업 결정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백병원에서 열린 ‘도시관리계획 결정안 주민설명회’에서도 재단 측은 이러한 주장을 피력했다.

성권제 인제학원 경영전략팀 팀장은 “서울백병원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미 폐원신고를 마쳤고 종합의료시설로 결정되더라도 대규모 적자를 감내하며 다시 운영할 수는 없다”며 “현실적으로 정부가 아닌 민간이 해당 부지에서 의료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이미 컨설팅 등을 통해 수차례 검증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와 중구청에서 의료기관 부지를 고집한다면 서울백병원은 서울 한복판의 폐건물로 방치돼 흉물이 될 것”이라며 “결국 서울시 미관과 치안, 시민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니 도시계획시설사업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서 폐원한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동대문병원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 △성바오로 병원 △제일병원 4개의 병원을 예시로 들었다. 4개 병원은 2008년부터 2021년 사이에 차례로 폐원됐다. 이 병원들이 위치하던 부지는 현재 이대 부속 동대문 병원을 제외하고 공동주택·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및 상업시설로 탈바꿈했다.

즉 인제학원의 주장은 “다른 곳은 폐원할 때 아무런 제재가 없었으면서 왜 우리만 규제를 하느냐”, “규제를 풀어주지 않을 경우 서울백병원 건물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11일 오후 서울백병원 별관 백인제홀에서 진행된 ‘도시관리계획 결정안 주민설명회’에서 인제학원 측은 서울시와 중구청의 서울백병원 종합의료시설 지정에 대해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 제갈민 기자
11일 오후 서울백병원 별관 백인제홀에서 진행된 ‘도시관리계획 결정안 주민설명회’에서 인제학원 측은 서울시와 중구청의 서울백병원 종합의료시설 지정에 대해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 제갈민 기자

이와 관련해 인제학원의 다른 관계자는 “규제를 풀어주지 않을 경우에는 해당 부지에서는 의료 관련 사업 외에는 할 수가 없어서 부지를 매입하려는 이들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서울백병원은 방치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성 팀장은 “서울백병원 부지가 의료 용도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도심의료공백 영향은 없다고 할 정도로 미미하다”며 “반경 2㎞(직선거리) 이내 서울대병원, 강북삼성병원, 적십자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이 존재하고 국립중앙의료원은 1,000병상 규모를 목표로 신축·확장을 추진 중인데, 이게 완성되면 서울 중구 지역에 의료공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구청과 함께 서울백병원 도시관리계획 결정을 검토한 ㈜동해종합기술공사 측에서는 “서울 중구는 재정비촉진지구 및 정비예정구역 확대 등 주변지역 개발로 인해 거주인구가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구 내 유일한 대학병원이자 감염병 전담 병원인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에 따라 의료기능 부재가 우려되는데, 해당 부지를 종합의료시설로 지정해 서울시 및 중구의 도심 의료 공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에는 의료공백 우려가 없을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서울백병원 부지에는 의료 관련 시설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인제학원 측이 서울백병원을 다시 운영할 생각이 없는 만큼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부지가 종합의료시설로 사업이 제한되기 때문에 매각 과정에서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고 부지 가치 하락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사업이 제한되는 만큼 매입하려는 이들이 적을 수 있어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서울시는 서울백병원 부지를 종합의료시설로 지정하되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시설 일부를 외국인 관광객에 특화된 성형외과·피부과 등으로 운영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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