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영화 ‘도그데이즈’로 돌아왔다. / CJ ENM
배우 윤여정이 영화 ‘도그데이즈’로 돌아왔다.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글로벌 프로젝트 ‘파친코’를 통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윤여정이 영화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로 설 극장가에 출격한다. 솔직하고 거침없지만 울림 있는 말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자신과 똑닮은 캐릭터로 분해 또 한 번 관객을 매료할 전망이다. 

오는 7일 개봉하는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와 MZ 라이더, 싱글 남녀와 초보 부모까지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이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해운대’ ‘국제시장’ ‘하모니’ ‘공조’ 시리즈, ‘그것만이 내 세상’ ‘영웅’ 등을 제작한 JK필름의 신작으로, 신예 김덕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극 중 윤여정은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를 연기했다. 민서는 날카로운 충고를 참지 않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하나뿐인 가족인 반려견 ‘완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인물이다.

윤여정은 특유의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매력으로 전형성에서 탈피한 현대적인 노년 캐릭터를 완성해 호평을 얻고 있다. 웃음과 감동, 울림을 모두 선사하며 클래스가 다른 존재감을 보여준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윤여정은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등 ‘도그데이즈’에 관한 것은 물론, 배우로 걸어온 지난 길을 돌아보며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품을 택한 이유는. 

“(김덕민) 감독 때문에 하기로 했다. 감독과 전작을 같이 했다. 조감독과 배우로 만났었는데 그도 나도 ‘노바디’였다. 그래서 전우애 같은 게 쌓였다. 김덕민 감독이 조감독을 오래 했다. 19년인가. 세상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마음속으로 그가 입봉하면 내가 할 게 있다면 하리라 결심했고 그 결심을 지키려고 이 작품을 하게 됐다.”

-성공한 건축가 역할이었다. 

“민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산다. 생각해 보면 먹고사는 게 다 똑같지 않나. 직업과 일상은 아무 상관이 없다. 성공한 건축과의 삶 같은 건 잘 모르겠고 그저 인물의 일상에 집중하면서 연기했다.” 

캐릭터와 높은 일치율을 보여준 윤여정. / CJ ENM
캐릭터와 높은 일치율을 보여준 윤여정. / CJ ENM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접근하는 방법이 그때그때 다르다. 걸음걸이부터 연구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나는 캐릭터를 봤을 때 ‘내가 이 사람이라면?’이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또 대본을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이다. 어떤 배우는 암기력이 좋아 금방 하는데 나는 미련할 정도로 보고 또 본다. 그게 나의 노력일 수는 있겠다. 대사는 많이 보고 외워야 한다. 머리 좋은 건 상관없다. 대사를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러면서 그 인물이 되는 것 같다. 열 번쯤 보면 외워지지 않겠어?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꾸준히 연습하는 것은 아무도 못당한다. 조성진(피아니스트)은 지금도 하루에 3~4시간씩 연습한다고 하더라. (조성진에게) ‘너는 그 긴 악보를 어떻게 외우냐, 아무리 젊어도’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매번 다른 대사를 외우시잖아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럼 내가 이긴거야?’ 했다.(웃음)”

-민서와 윤여정의 일치율이 상당히 높았다. 말투를 본인에 맞게 수정하거나 애드리브를 더하기도 했나. 

“이번에는 (일치율이) 좀 심했지?(웃음) 내가 많이 나올 거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배역 이름이 ‘윤여정’이었다. 나는 대본은 안 바꾼다. 구세대 배우이기 때문에 훈련을 그렇게 받았다. 김수현 선생님 드라마에서 토씨 하나 바꾸면 큰일난다. 작가가 피땀 흘려서 쓴 글인데 나 편하자고 내 입에 맞춰서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잘 바꾸지 않는다. (‘도그데이즈’는) 그냥 그렇게 쓰여 있었다. 애드리브도 할 줄 모르고 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냥 그대로 했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관계를 그린 영화였다. 비슷한 경험이 있나.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기르지 않았다. 그 아이를 잃어버리고 온 식구가 길에서 보는 반려견마다 ‘쟤인가’ 했다. 그래서 다시는 안하기로 했다. 자식을 하나 키우는 거거든. 이제는 자식을 키울 나이가 아니다. 친구들은 다 반려견이 있다. 나보고도 입양하라고 하는데 그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그냥 외롭게 살다 갈란다.(웃음)”

남다른 시너지를 완성한 윤여정(왼쪽)과 탕준상. / CJ ENM
남다른 시너지를 완성한 윤여정(왼쪽)과 탕준상. / CJ ENM

-영화 ‘미나리’ 아카데미 수상 후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노배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세상이 변하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조금씩 변해가는 게 고마운 일인 거다. 내가 아카데미 상을 받아서 우리 영화나 ‘소풍’(나문희‧김영옥 주연작) 같은 영화가 나온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장수 시대가 됐잖나. 그러다 보니 노인을 하는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겠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상이라는 것은 참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라는 사람이 문을 두드렸고 어떻게 그 시기에 운이라는 게 딱 맞아떨어져서 내가 불가사의하게도 그 상을 받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것은 어렸을 때 영화 데뷔작 ‘화녀’로 청룡영화제 주연상을 받았는데 그때 ‘세상은 내 것이구나, 내가 연기를 정말 잘하는구나’ 했다.(웃음) 아카데미상은 상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을 아는 나이에 받았기 때문에 더 감사했다. 기쁜 일이지만 사고 같은 거였다. 감사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명예롭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래야 일상을 살 수 있었다는 거다. 그것에 매달려 있으면 앞으로 진행을 못할 것 같다. 기쁜 사고라고 생각하고 내 일상을 살 수 있었다.”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매력으로 세대불문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여정. / CJ ENM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매력으로 세대불문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여정. / CJ ENM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을 향해 조언을 하자면.  

“나는 조언을 못하는 사람이다. 조언은 공자님 같은 분이 하는 거지, 난 잘 모른다. 다만 과거 유명한 CF에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을 했다. 어떤 명창분이 나온 광고였는데, 그 말처럼 내 것을 하다 보면 세계적인 사람이 될 거다. 그것을 향해서만 가면 어떻게 되겠나.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나? 안 된다. 내 것을 하면 된다. 인생은 버티는 거더라. 나의 과거를 들어서 알고 그렇겠지만 각광받고 그런 게 2~3년 밖에 안됐다. 그 안에는 너무 힘들게 살았다. 버텨서 살아남은 거다. 버텼을 뿐이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나는 쭉 솔직했다. 하지만 정직과 솔직은 다르다. 솔직함으로써 남에게 무례할 수 있다. 경계선을 잘 타야 하는데… 솔직히 자랑은 아니다. 상대에게 무례할 수 있다는 건 정직과는 다른 문제다. 인생이 그렇게 복잡하다. 내가 유머 감각이 있다면 너무 어렵고 힘들게 살아서 모든 걸 웃자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처럼 너무 힘들고 더럽게 살아서 나오는 농담들이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농담이 아니고 즐겁자고 하는 거다. 인생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아서 나오는 농담.” 

-‘더럽게 살았다’는 표현이 귀에 꽂힌다.

“삶이 더럽지 않나?(웃음) 상사한테 혼나고 그러면 얼마나 더럽나. 위생적으로 더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위생적으로는 깨끗한 여자다. 더러운 거 싫어한다. 하하.”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그렇다. 타고난 연기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빼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한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천직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연기를 하게 됐고 생각해 보니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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