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지현 디지털성범죄 특별위원장과 선거 전 마지막 지지 유세를 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지현 디지털성범죄 특별위원장과 선거 전 마지막 지지 유세를 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석패한 이후 2030 지지자들이 '이재명 팬덤'으로 결집한 가운데, 이들을 향한 도를 넘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우려가 일고 있다.

◇ ‘이대남’ 집중에 ‘이대녀’ 결집

이 상임고문의 팬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대선 약 3일전부터다. 20대 대선 막바지에 파란색 이모티콘, 친칠라 그림, 그리고 “쏘리재명” “오해해서 미안해” 등의 슬로건과 함께 급부상했다.

처음 이재명 팬덤이 등장했을 때 정치권에서는 ‘이대남’에 비해 주목받지 못해온 ‘이대녀’의 반란으로 해석했다. 그동안 20대 여성은 20대 남성에 비해 예상 투표율은 높지만 인구수가 적고 결집력이 약하다는 것, 그리고 이들을 결집시킬만한 키워드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거대정당의 외면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결집은 이대남을 겨냥해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슬로건을 꺼내든 국민의힘을 상대할 후보를 검토하던 과정에서, 이 상임고문의 공약과 지금까지 각종 의혹과 루머에 대한 해명을 보고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 활동가를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표심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선거 후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 기준 20대 남성 지지율은 윤석열 58.7% 대 이재명 36.3%였지만, 20대 여성에서는 이재명 58.0% 대 윤석열 33.8%로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냈다. 또 30대 남성은 윤석열 52.8% 대 이재명 42.6%였지만, 30대 여성에서는 이재명 49.7% 대 윤석열 43.8%로 드러났다.

대선 전까지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됐던 이대녀 결집 현상은 대선이 끝나고 2주가 흐른 현 시점에서는 이재명 팬덤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에 정치 팬덤 현상이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기는 ‘팬덤’이라는 단어가 없었음에도 상당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는 문화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팬덤으로 지칭하기 모자랄 정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노빠’ ‘문파’ 등의 이름으로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인 부인 김건희 씨도 ‘건사모’ 카페가 생겼다.

정치인의 팬덤문화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어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와서 아이돌식 팬덤 문화가 생기면서 아이돌 팬덤의 전유몰로 여겨진 응원봉까지 등장하자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는 더 커졌다.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홍대 마지막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쏘리재명'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시사위크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홍대 마지막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시사위크

◇ 비판 아닌 성희롱‧비난 난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치팬덤에 대한 건전한 비판보다는 이들을 향한 지나친 비난이 스포츠화 되고 있다. 23일 <시사위크>와 만난 김모 씨는 이번 대선 후 이 후보의 석패에 아쉬워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가입하고, SNS 계정도 만든 지지자라고 밝히며 젊은 여성 팬덤을 향한 선 넘는 비판에 대해 언급했다.

김씨는 “과거 문재인 대통령의 팬덤에 여성이 많고, 다른 지지자들의 양상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창녀’에 빗댄 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며 “지금 2030 여성의 이재명 지지자들이 스스로를 ‘개딸’이라고 부르고 이 상임고문을 ‘아빠’로 칭하게 된 배경을 전혀 모르면서 듣도 보도 못한 성적인 욕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상임고문이 2006년 4월 22일에 블로그에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라는 글과 함께 딸이 갖고 싶었다고 올린 것을 본 2030 지지자들이 TV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아버지가 성격이 드센 딸을 ‘개딸’로 부른 것을 차용해 딸이 되어주겠다고 나선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이 상임고문과 지지자들이 SNS로 활발히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여성은 개혁의 딸(개딸) 남성은 양심의 아들(양아들)이라고 칭하는 등 이 상임고문의 지지자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이 상임고문과 아빠와 아가로 칭하며 ‘힘내라’ ‘잘자라’ ‘사랑한다’며 주고받은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업소녀냐’ ‘성매매 할 때 돈 뜯으려고 쓰는 말이다’ ‘역겹다’ ‘조선족이다’는 욕을 듣고 있다”며 “대부분의 지지자들이 저와 같은 20대 여성이고, 대선 직전 또는 패배 후 뒤늦게 유입돼 이 상임고문의 다음 역할을 기다리고 있는 일반인이다. 이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비난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연령대는 어릴 때부터 팬덤 문화에 익숙하고, 가장 익숙한 방식을 적용했을 뿐이다. 다만 이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은 충분히 받아들여 ‘굿즈’를 만들거나 과도한 아이돌화를 지양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중”이라며 “젊은 여성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자마자 조선족‧작전세력 등으로 몰거나 ‘창녀’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저 우리가 결집하는 게 싫은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30 여성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더불어민주당의 입당으로 증명됐다. 서울시당은 10일과 11일 양일 온라인 입당자만 1만1,000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여성이 80%이고 2030 여성이 절반 이상이라고 밝혔다. 22일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의 온라인 미팅은 300석이 2분 만에 신청 마감됐다.

하지만 아직 대선이 끝난지 보름여 밖에 안된만큼 이들의 정착 가능성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은 대체적으로 갑자기 늘어난 2030 여성의 정치적 관심이 차기 정부의 여성정책, 민주당의 향후 행보에 따라서 얼마든지 돌아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이 상임고문을 보고 집결한 이들인 만큼 이 상임고문의 칩거가 길어지거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않으면 지금의 관심이 언제 식을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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