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국회 국방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와 야당 국방위원들이 5일 오후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진지를 찾아 관계자로부터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뉴시스
김병주 국회 국방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와 야당 국방위원들이 5일 오후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진지를 찾아 관계자로부터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을 침범했던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인근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됐을 때 극구 부인했던 군 당국은 뒤늦게 침범 사실을 시인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5일 “서울에 진입한 적(북한) 소형 무인기 1대로 추정되는 항적이 비행금지구역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며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해당 북한 무인기의 구체적인 항적은 군사 보안상 공개할 수 없지만, “스치고 지나간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비행금지구역인 P-73은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 인근 3.7㎞ 구역으로, 용산구와 서초·동작·중구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앞서 4성 장군 출신의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합참이 공개한 무인기 식별경로를 분석해 은평구, 종로, 동대문구, 광진구, 남산 일대까지 왔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무인기가 비행금지구역 안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에 합참은 지난달 29일 무인기가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당시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사실이 아닌 근거 없는 이야기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고,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고 했다. 김 의원의 분석을 ‘이적행위’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결론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난처해졌다. 군 관계자는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에서 북한 소형 무인기의 항적을 초 단위로 정밀 분석해 확인한 결과,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던 항적 몇 개가 북한 무인기의 항적으로 드러나면서 결론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야당 의원의 주장을 무작정 부인한 셈이 됐다.

◇ 무인기 경로 은폐∙축소 의혹 제기

군 수뇌부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무인기 1대의 비행금지구역 진입 사실을 보고했음에도 언론을 통해 공개될 때까지 어떤 브리핑도 없었다. 이를 두고 책임회피를 위한 은폐 시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은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승겸 합참의장 등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시점이 바로 어제이고, 그 후 이 일정에 대한 김은혜 홍보수석의 브리핑이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며 “지금까지도 국민들께 아무런 보고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제대로 된 대책 없이 연일 대북 강경발언만 남발한 것은 군의 이러한 실패의 실체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실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국방부와 합참이 과거 비행금지구역 침범 사실을 부인했을 때는 공개적으로 브리핑했지만, 5일 이를 번복할 때는 비공개 브리핑으로 진행해 또다른 은폐 의혹을 샀다. 기자들의 공개 브리핑 요청에도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작전∙보안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서 좀 더 상세하게, 소상하게 설명을 드리려고 그런(비공개브리핑)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무인기의 비행금지구역 침범 가능성을 제기했던 김병주 의원은 군과 경호처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작전에서, 군에서는 가장 안 좋은 것은 거짓말”이라며 “작전을 하는데 적이 오른쪽으로 오는데 ‘왼쪽으로 온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후속 작전이 다 실패한다. 군에서는 댐에 구멍을 내는 것과 똑같이 본다”고 질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임석해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임석해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대통령 공식 사과와 장관 책임론

북한 무인기의 우리 영공 침범에 이어 비행금지구역 진입까지 알려지면서 정당한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적 행위’ 취급을 받은 국회와 안전을 위협당한 국민에게 공식 사과와 책임자 문책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군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의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근거 없는 주장으로 취급했지만, 정밀분석 전까지 비행금지구역이 뚫린 지도 몰랐던 군 당국의 작전실패와 허위보고야 말로 이적행위라는 주장이다. 그는 “전쟁 중이었다면 최고수준의 형벌이 내려졌을 사안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빠르고 정확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모름지기 군통수권자라면 유례없는 안보 참사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책임자의 무능과 기망을 문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갑석 의원 또한 “야당의 합리적 지적을 ‘이적 행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부라면, 국민의 신뢰를 얼마나 얻을지 모르겠다”며 “이제는 누군가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으며, 국회와 국민에게 허위 보고를 한 것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라”고 했다.

군 형법 38조에는 군사와 관련해서 거짓으로 명령, 통보를 하거나 보고를 한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최고 사형까지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렇게 명령, 통보, 보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거짓 명령, 통보, 보고를 한 경우에는 형을 가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측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실과 관련해서 국민에게 허위 보고를 했다며 국정조사에 준하는 청문회가 필요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 본회의에서 긴급현안질문을 추진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직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책임론도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인사 실패의 후폭풍이 거세게 부는 것 같다”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책임을 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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