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A씨가 2일 끝내 숨진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 뉴시스
지난 1일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A씨가 2일 끝내 숨진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했던 건설노조 간부가 끝내 사망했다. 정부와 날선 대립각을 세워온 노동계는 이에 격분하며 더욱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며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유서 통해 ‘윤석열 정부’ 지목… 노정갈등 ‘전면전’ 불가피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A씨가 분신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지난 1일. ‘근로자의 날’과 ‘세계 노동자의 날’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노동계의 대규모 집회가 열린 날이자, A씨를 비롯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3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날이었다.

A씨는 이날 오전 9시 35분경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성 물질을 끼얹은 뒤 불을 붙여 분신했다. 현장에 있던 소화기로 진화가 이뤄졌지만 그는 전신에 큰 화상을 입었고 중태에 빠져 서울에 있는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튿날인 지난 2일 오후 1시경 끝내 사망했다.

이처럼 A씨가 분신이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에 이르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노동계와 대립각을 세우며 특히 건설노조에 대해 압박의 수위를 높여왔던 정부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게 됐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첫해인 지난해부터 ‘노동개혁’을 앞세우며 노동계와 갈등을 빚어왔다. 정부의 이러한 행보엔 노동계에 대한 강경 대응이 지지율 상승효과로 이어진 점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건설노조는 특히 파업을 벌인 화물연대, 그리고 노조 회계문제와 함께 정부의 핵심 타깃이 됐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물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범정부 차원에서 건설노조에 대한 제재를 가했고, 경찰과 검찰 등 수사당국 차원의 움직임도 신속하게 이어졌다. 이에 언론을 통해서도 건설노조 관련 문제들이 연일 전해졌다. 심지어 지난 2월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건폭’이란 언급까지 하기도 했다. 이는 건설노조를 조폭에 빗대 표현한 것이었다.

숨진 A씨는 이러한 범정부 차원의 건설노조 압박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인물 중 하나다. 지난해부터 건설노조 강원본부 3지대장을 맡아온 그는 최근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바 있다. 건설사에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현장 간부의 급여 등을 요구한 업무방해 및 공갈 혐의였다.

A씨는 유서를 통해 정부 및 수사당국이 극단적 선택의 이유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당초 메모 형태로 발견된 유서에서는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란다. 자존심이 허락 되지가 않는다”라고 밝혔고, 이후 추가로 발견된 유서에서는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 독재정치의 제물이 돼 지지율을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또 죄 없이 구속돼야 한다”며 야당 대표들을 향해 “간곡히 부탁드린다. 무고하게 구속된 분들을 제발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정부 측에서는 노동계와 날선 대립각을 세우던 앞서와 달리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놓으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이런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상습 체불 근절대책’ 발표한 뒤 곧장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건설현장 등 노동시장에서 공정과 노사 상생의 관행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설노조는 A씨가 사망하기 직전인 11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4일 용산에서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는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A씨 사망 이후 성명을 통해 “노조혐오와 노조탄압이 동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동지가 지키고자 했던 노조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전 조합원이 받아 안고 윤석열 정권 심판으로 반드시 끝을 보겠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사죄와 원희룡 장관의 사퇴, 그리고 건설노조를 비롯한 노조에 대한 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3일 각 지역본부 차원에서 일제히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한국노총 역시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끝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면서 “사망한 건설노조 조합원의 명복을 빌며, 윤석열 정부에 건설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토끼몰이식 강압수사 및 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또한 “건설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형 재개발·재건축비리, 수억원대의 부정청탁과 불법재하도급 등 토착비리엔 눈감으면서도, 저항력이 약한 노동자들에 대해선 강압수사와 탄압으로 일관 한 경찰과 검찰, 정부가 이번 사건의 공동 가해자”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노정관계를 넘어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순탄치 않았던 여야관계에 또 하나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3일 오전 A씨가 남긴 유서를 함께 열람하고 이를 각당 대표들에게 전달했다. 이에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윤석열 정권의 노조탄압이 결국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정권의 폭력적 탄압에 대한 마지막 수단으로 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한 데 대해 한없는 분노를 느낀다”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청드린다. 정부는 참혹한 국정실패를 노동자 때리기로 눈가림하려는 얄팍한 속임수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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