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세가지 사안 모두 ‘보증금 미반환‘ 이슈 발생… 임대인 사기 의도 입증 어려워
전문가들 “‘돈 빌리고 안 갚는 행위‘ 강력 제재해야… ‘무갭투자‘ 모니터링·안전장치 필요 ”

전문가들은 보증금 미반환이 공통 이슈인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의 사기 의도를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 뉴시스
전문가들은 보증금 미반환이 공통 이슈인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의 사기 의도를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여야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예방을 위한 특별법을 이달 25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최근 합의했다.

하지만 여야는 특별법에 포함시킬 피해 지원 대상, 지원 규모 등을 두고 아직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여당은 명백히 전세사기 의도가 드러난 사례에 한해 지원해야 한다는 반면 야당은 전세사기 외에도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큰 깡통전세 등도 피해 지원 범위에 넣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 모두 보증금을 못받게 된다는 점에서 동일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정치권이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로 굳이 나눠 분류하는 이유와 정부가 이들 사례를 한 번에 규제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의 경우 임차인의 보증금을 노리고 임대인‧중개사‧시행사가 공모하는 등 명백한 사기 의도가 파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깡통전세‧역전세’는 전세가격 하락에 따라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진 상황이긴 하나 고의성(사기 의도)이 없는 사안으로 구분했다.

다만 전문가들 역시 전세계약과 관련해 사기 의도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지금이라도 정부가 임대인 처벌 강화, 계약과정 중 안전장치 마련 등 전세제도와 관련해 대대적인 개선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 구분 기준은?

먼저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를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세사기’는 임대인(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임차인을 속인 뒤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임차인이 보증금 회수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워진 경우를 뜻한다.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집을 올려 임차인을 받은 뒤 전세보증금을 가지고 또 다른 집을 계속 짓고 새로운 임차인과 계속 전세계약을 맺고 보증금 수백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이 전세사기에 해당하는 사례 중 하나다.

‘깡통전세는’ 전세가격보다 매매가격이 낮아져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지 못하게 된 주택이나 보증금 미반환 가능성이 높은 주택을 일컫는다. 아울러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채무불이행) 주택이 경매 넘겨졌으나 선순위저당권 및 유찰로 인해 낙찰가격이 보증금에 못 미치는 주택도 ‘깡통전세’에 속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통상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 80% 이상인 주택을 ‘깡통전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선순위저당권이 없다고 가정할 때 전세가율 80%인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면 낙찰가격이 시세의 8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깡통전세’에 속하더라도 바로 ‘전세사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상적인 임대인의 경우 대출을 받거나 신규 세입자를 들여 보증금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역전세’는 2년 전 임대차계약 때 보다 전세가격이 급락한 시기에 계약이 만료되면서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2021년 3억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던 주택의 전세가격이 올해 1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면 신규 세입자는 전세가격이 1억5,000만원 이하일 경우에만 이 집에 전세로 들어오려 할 것이다. 따라서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 3억원을 돌려주려면 신규세입자가 들어온다 해도 나머지 1억5,000만원을 대출 등을 통해 추가로 마련해야만 한다. 

전세가격 급등기였던 지난 2021년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들의 계약만료 시기가 올해로 예정돼 있은 상태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역전세’가 핫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사기는 임차인이 확정적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게 된다. ‘깡통전세‧역전세’는 임대인이 어떻게 대응을 하냐에 따라 임차인들의 상황이 달라진다. 책임의식을 가진 임대인은 어떻게든 자금을 융통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테고 그렇지 못한 임대인은 잠적하거나 신규 임차인이 올때까지 보증금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16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관 입구에서 농성 중이다. / 뉴시스
지난 16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관 입구에서 농성 중이다. / 뉴시스

◇ 박진백 연구원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 본질은 빌린 돈을 안 갚는 것”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전세사기’의 성립 조건 자체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받았지만 계약 종료 후에도 이를 돌려줄 마음‧의지가 없다는 것이 뒷받침돼야 한다. 즉 계약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전제”라며 “이에 반해 ‘깡통전세’는 집을 매도해도 보증금을 못받는 경우고 ‘역전세’는 기존 시세대로 신규 임차인을 받아야 하는데 시세가 떨어졌기에 보증금을 다 못 돌려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집합개념으로 볼 때 ‘깡통전세‧역전세’가 전세사기를 품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깡통전세‧역전세’를 묶어 큰 집합으로 보고 ‘전세사기’는 부분집합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박진백 부연구위원은 “전세제도는 임대인이 보유 중인 주택의 시세를 정한 뒤 임차인에게 정해진 기간 동안 주거를 제공하고 이에 따른 대가로 임차인으로부터 무이자 대출을 받는 것”이라며 “그런데 임대인이 계약규정을 무시한 채 시세(전세가격)가 떨어졌다고 계약만료일에 보증금을 못돌려주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보증금은 ‘깡통전세‧역전세’ 등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임대인이 정해진 시기에 임차인에게 갚아야만 하는 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는 돈을 빌리고 상환하는 행위로 국한해서 보면 된다”며 “기업이 은행 돈을 제대로 안 갚았을 때 정부는 해당 기업을 부도처리하고 사안이 중대하다면 경영자를 감옥에 넣는다.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사안도 이와 동일하게 처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 김인만 소장 “우선매수권, ‘깡통전세·역전세’ 피해 세입자에게도 확대 부여해야”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전세사기 의도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 것 맞다”며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다 똑같이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것이지만 ‘깡통전세·역전세’는 임대인 입장에서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것이고 ‘전세사기’는 사기꾼이 처음부터 보증금을 가로채려고 작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때문에 어느 선까지 지원하느냐를 두고 여야 간 고민이 깊을 것”이라며 “세입자에게 경매시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것은 ‘전세사기’뿐 아니라 ‘깡통전세·역전세’에 따른 경매 때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야당이 주장하는 (보증금의) 최우선변제금 확대 조정,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직접 경매 받아 (보증금을) 변제하는 것은 더 많은 예산 투입으로 국가 부담이 늘고 선순위채권자인 은행 등이 손해를 보기에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전세제도 전반에 걸쳐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예를 들면 전세계약 과정에서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개입해 임차인으로부터 계약금(통상 보증금 대비 10%)을 받은 뒤 HUG가 임대인 정보를 모두 확인해 이상이 없을 때에만 임대인에게 계약금을 전달토록 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위법 행위를 저지른 임대인의 처벌 수준을 강화해 보증금 미반환시 각종 사법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17일 국회 국토위가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제정을 논의 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 뉴시스
17일 국회 국토위가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제정을 논의 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 뉴시스

◇ 김진유 학회장 “자기자본 無 ‘무갭투자’ 활용 다주택 임대인 처벌·규제 강화 필요”

김진유 한국주택학회장 겸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세사기와 단순사고(깡통전세·역전세)를 구분해 전세사기에 한해 피해 지원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국민 주거안정 목표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며 “이번 기회에 사기 외에도 전세 관련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뒤이어 “‘깡통전세·역전세’ 발생시 임대인 고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한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보증금을 최대한 돌려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진유 학회장은 ‘무갭투자‘를 통해 자기 돈 한 푼 투자 없이 다주택을 보유하면서 보증금 반환을 하지 않은 임대인에게는 정부가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70% 전세보증금에 30% 자기 돈을 투자해 주거지 외 1~2채의 집을 추가 보유하면서 임대사업으로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임대인은 정상투자자로 봐야 한다”며 “단 매매가격 2억원 짜리 주택의 전세가격을 2억원으로 책정하는 이른바 ‘무갭투자’ 수법으로 자기자본 없이 수십·수백여채의 집을 전세로 내놓은 임대인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무갭투자’ 활용 다주택 임대인들은 집값이 급등하면 시세차익을 얻었다며 좋아한다. 반면 집값·전세가격 급락으로 ‘깡통전세·역전세’가 발생하면 ‘모르쇠 자세’로 일관하며 보증금 반환과 관련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면서 “정부는 ‘무갭투자’를 통한 다주택 임대인들을 집중 모니터링해 위법행위가 적발될 시에는 사기죄와 동일 선상에 놓고 처벌·규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법안 심사를 재개했지만 여야간 의견 차이로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여야는 오는 22일 오전 8시 소위 회의를 다시 열고 특별법 심사를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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