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임대인 대출 지원 시 후순위로 밀리는 신규 임차인 등 부작용 우려
정부, 대출 규제 완화 시 임대인 상환능력 및 전세대출 규모 축소 등 고려 필요

한국은행 등 전문기관들이 올 하반기부터 역전세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뉴시스
한국은행 등 전문기관들이 올 하반기부터 역전세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작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전세사기 이슈가 해결되기도 전에 올해 하반기부터 역전세 대란이 터질 것이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때문에 올해에는 전세보증금 반환을 둘러싸고 임대인과 임차인간 분쟁이 그 어느 때보다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는 한시적으로 보증금 반환 목적에 한해 임대인을 상대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완화 등 대출 한도를 풀어주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가 역전세난 방지를 위해 대출 규제 완화 카드를 검토 중인 것을 두고 전문가‧시민단체 사이에서 각각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쪽은 “부동산 경기 악화라는 돌발 변수로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 줄 수 없게된 만큼 급한 불인 보증금 반환을 위해서라도 대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한쪽은 “보증금 반환 의무가 있는 임대인이 이를 어기고 보증금을 다른 곳에 투자했는데 이를 대출 규제로 구원해주겠다는 것은 가계부채 증가 및 도덕적 해이 등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반대했다.

◇ 곳곳에서 올 하반기 역전세 대란 경고… 추경호 부총리, 대출 규제 완화 시사

최근 부동산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격을 기반으로 집계한 결과,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향후 1년간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보증금 총액은 무려 3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구체적으로 올해 하반기 전세계약 만료 예정인 보증금 총액은 149조800억원, 내년 상반기 계약이 끝나는 보증금 총액은 153조900억원으로 각각 예상됐다.

이와 함께 22일 한국은행은 ‘2023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올해말까지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보증금 총액은 총 288조8,000억원일 것으로 추산했다.

이처럼 곳곳에서 역전세 경고음이 울리자 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은 이달 초부터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에 한해 대출 규제를 푸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1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KBS 시사프로그램 ‘일요진단’에 출연해 “전세가격 하락에 따른 전세보증금 차액 반환에 한해 대출 규제를 조금 완화하는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면서 대출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다만 추경호 부총리는 “임대인이 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에 선순위대출금이 잡혀 신규 임차인이 보증금 미반환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이런 부분은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겠다”며 대출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도 살펴보기로 했다.  

정부가 역전세 대응을 위해 보증금 반환 목적을 위한 대출을 규제 완화하기로 기정 사실화하면서 전문가, 시민단체 등에서는 긍정적인 반응과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DSR 등 대출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 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DSR 등 대출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 뉴시스

김인만 소장 “‘착한 임대인’만 선별해 보증금 차액만 지원해야”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역전세 대란의 핵심 원인은 그간 전세자금대출을 너무 많이 해줬다는 것”이라며 “무분별한 전세자금대출로 전세가격에 거품이 껴서 역전세가 일어났는데 이를 정부가 다시 대출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굳이 DSR 완화 등 대출 규제 한도를 풀어 지원하려 한다면 빚을 얻어서라도 보증금을 반환하려 하는 이른바 ‘착한 임대인’만 선별해 정책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즉 ‘착한 임대인’ 선별 후 2년 전 전세계약서랑 현 시세를 확인해 전세보증금 차액만 1~2년에 걸쳐 한시적으로 대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빌라·오피스텔 역전세는 답이 없는 상황”이라며 “기본적으로 전세가율이 너무 높아 대출을 해주면 금융기관 등에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빌라 등은 10억원짜리 전세가 현재 9억원인 상황인데 이를 경매에 넘기면 5억원에 낙찰된다. 따라서 대출을 지원하면 금융기관은 부실을 떠안게 되고 오히려 악성 임대인만 도와주는 꼴이 된다”고 우려했다.
 

송승현 대표 “대출 규제 완화와 함께 전세자금대출 축소 작업 병행 필요”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역시 “대출로 전세가격을 올려 그 부작용으로 역전세가 발생했는데 이를 대출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조금 위험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또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추진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은 임대인의 상환능력”이라며 “요근래 몇 년간 집값이 급등하자 영끌 등을 통해 부실한 임대사업자도 부동산 시장에 많이 유입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차주(임대인)의 상환능력을 파악하겠지만 긴급히 지원하다 보면 검증이 부실해 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며 “여기에 역전세로 대출을 받은 주택에 신규 임차인이 들어가는 것도 불안 요소가 크므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전세라는 사인간 금융에 자꾸 정책적으로 개입하면 문제점‧부작용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통해 개입하려 한다면 이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줄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연도별 전국 주택 전세거래 총액 추이 / 자료:국토부 실거래가, 그래픽:직방
연도별 전국 주택 전세거래 총액 추이 / 자료:국토부 실거래가, 그래픽:직방

우병탁 팀장 “신규 임차인 후순위로 밀리는 부작용 보완책 마련해야”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 부동산 팀장은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가 한꺼번에 역전세가 쏟아지는 사태는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임대인이 받은 대출금이 보증금에 근저당(선순위대출)으로 설정됨에 따라 신규 임차인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정부가 꼼꼼히 보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도덕적 해이 등 비판이 제기될 수 있으나 임대인은 대출을 받으면서 이자·원금 상환 부담도 함께 가져가게 된다”며 “결국 임대인은 대출로 보증금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긴 하나 이는 매물 정리 시기를 늦출 뿐이며 매물 정리에 대한 압박은 계속 받게 된다”고 분석했다.

우병탁 팀장은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선 정부 입장에서 DSR 등 대출 규제 완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대출 규제가 풀린다고 해서 한국은행 등이 추산한 역전세 발생 가능 임대인 100만명이 모두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각 금융기관들이 소득수준·상환능력 등을 따져 대출 지원에 나설 텐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임대인들은 집을 팔던 자체적으로 보증금 반환에 나서야 한다”며 “가계부채 총량은 늘겠지만 시장 내 펀더멘탈(핵심지표)이 튼튼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여연대 “임대인, 주택 매각해 역전세 해결해야… 대출 지원 부작용만 발생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임대인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주택을 매각한 자금으로 보증금 돌려줘야 한다”며 “DSR 등 대출 규제 완화는 신규 세입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으로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문제삼았다.

뒤이어 “대출을 해주면 임대인은 당장 급한 상황은 넘길 수는 있는데 대출까지 한 상황에서 과연 보증금을 기존 보다 낮출 수 있겠는가”라며 “결국 부풀려진 가격으로 신규 임차인을 받게 되는데 대출이 선순위에 잡혀있기에 후순위인 신규 임차인은 최악의 경우 보증금을 날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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