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코스피 상장사인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8일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관한 의견표명서’를 공시했습니다. 이는 앞서 지난 6일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차파트너스) 측이 공시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에 따른 건데요. 상장사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족수 확보를 위해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지만, 이렇게 주주의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입니다.

차파트너스는 어떤 내용의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고 나섰을까요?

차파트너스는 행동주의 펀드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앞서 사조오양과 남양유업 등에 대해 행동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이어 지난달에는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로부터 주주권리를 위임받으며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에 참전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박철완 전 상무는 오너일가 2세 차남인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장남입니다. 개인 기준으로는 금호석유화학 최대주주기도 하죠. 그런 그는 2021년부터 삼촌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측과 대립각을 세우며 소위 ‘조카의 난’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분쟁에서 줄곧 패배했고 오히려 해임되기까지 했는데요. 이번에 차파트너스와 손을 잡으면서 그는 대규모 미소각 자사주와 독립성이 결여된 이사회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차파트너스 측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를 통해 금호석유화학이 지닌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는데요. 금호석유화학의 주가가 지난 1월말 기준으로 지난 3년간 고점 대비 약 60% 하락했고 총 주주수익률(TSR)도 해외 동종 업계 및 국내 선도 화학기업대비 최하위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18.4%에 달하는 장기 보유 자사주와 이것이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될 우려를 꼽았습니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 결의로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하고, 자사주를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전량 소각하는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제시했죠.

또한 금호석유화학 일반 주주의 지분율이 80% 이상임에도 이들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사가 1명도 없다며 “현 이사회는 특정경제범죄법에 따라 취업이 제한된 지배주주를 회사의 사내이사로 추천, 대표이사로 선임해 54개월 간 불법취업상태를 유지하게 했고, 배임행위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지배주주의 자녀를 사내이사로 추천했다. 이와 같은 현 이사회 구성으로는 대규모 미소각 자사주가 지배주주 일가의 우호지분 확보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꼬집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분리선출 대상인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자를 추천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금호석유화학은 어떤 입장일까요?

박철완 전 상무와 손잡은 차파트너스의 날선 지적과 주주제안에 금호석유화학도 강경한 입장을 내놓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금호석유화학은 의견표명서에서 먼저 “권유자(차파트너스) 측에서 제안한 정관변경안,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자 선임 등의 주주제안 및 당사에 대한 잘못된 사실 주장과 이에 대한 의결권대리행사 권유에 반대한다”며 “권유자의 주주제안이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과 이사회 구성의 방향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어 차파트너스의 지적을 조목조목 반박했는데요. 주가 관련 문제에 대해선 국내 주요 경쟁사들의 주가 흐름을 함께 제시하면서 “당사의 TSR 성과는 국내외 경쟁사와 비교해 양호한 수준”이라며 “당사의 최근 5년 및 3년 TSR은 각각 79.7%, 4.3%로, 경쟁사 평균 68.2%, -7.3%를 상회하고 있다. 특히, 2022년부터 석유화학 업계의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당사의 총주주수익률은 업계 내에서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차파트너스 측의 평가와 큰 차이가 발생한 이유로는 ‘기준 시점’을 꼽았습니다. 차파트너스가 기준으로 삼은 시점은  박철완 전 상무의 주주제안으로 주가가 단기 급등한 때였다면서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죠.

자사주 관련 지적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잘 이해하고 있다”며 “이러한 우려를 덜기 위해 자사주의 50%를 3년에 걸쳐 소각하는 계획을 수립해 발표했고, 올해부터 즉각 실행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업계 전반의 불황과 어두운 전망 등을 고려했을 때 재무적 유동성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도 언급하면서 “현재까지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자사주를 처분하지 않았고, 향후에도 경영권 방어 등 주주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형태로 처분하지 않을 것을 거듭 약속 드린다”고 밝혔죠.

이사회 구성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입니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현 이사진은 2021년 3월 이사회에 진입했고, 권유자가 문제 삼고 있는 박찬구 이사는 2021년 5월 이사회에서 사임했으므로 현재 이사회 구성원들은 박찬구 이사의 선임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박찬구 회장의 자녀인 박준경 이사에 대해서도 “기소된 사실조차 없는 사법적, 행정적 이슈가 없는 이사로 선임 당시 국내 및 해외의 여러 의결권 자문 기관의 찬성 권고를 받았다”고 밝히며 “현재 이사회 구성원은 박철완 주주의 주주제안에 따른 위임장 경쟁, 반대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주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아 선임된, 전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라고 강조했습니다.

차파트너스의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자 추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으며 박철완 전 상무를 겨냥하기도 했습니다.

금호석유화학은 우선 차파트너스 측이 추천한 후보자가 갖춘 회계 전문성은 이미 현 이사회도 충분히 갖추고 있고, 오히려 석유화학 산업 관련 경력이 없다는 점에 물음표를 붙였습니다.

또한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이 사실상 박철완 전 상무의 주주제안으로 판단된다며 “그는 2021년 위임장 경쟁 이후 꾸준히 이사회의 의사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현재 이사회 및 경영진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어왔고, 이러한 시도는 모두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거나 법원에 의해 기각·각하되는 등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사회는 박철완 주주의 이해가 당사의 전체 주주의 이해와는 다르다고 판단하며, 이런 점에서 박철완 주주 측으로부터 추천받은 후보자의 참여가 이사회의 건설적인 토론과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할 것을 우려한다”는 뜻을 밝혔죠.

이 같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및 의견 표명 이후에도 양측은 거듭 입장을 발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요. 이러한 갈등은 정기주총 전까지 계속될 전망입니다. 또한 치열한 공방전의 결과는 주총 표대결을 통해 판가름 날 텐데요. 오는 22일 개최될 정기주총에서 누가 웃게 될지 주목됩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차파트너스자산운용, 금호석유화학 관련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40307000915
2024. 03. 07.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금호석유화학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관한 의견표명서’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40308000580
2024. 03. 08.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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