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화천기계 주가가 최근 급등한 가운데, 화천그룹 권영열 회장 일가가 지분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 화천기계
화천기계 주가가 최근 급등한 가운데, 화천그룹 권영열 회장 일가가 지분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 화천기계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중견 공작기계 기업이자 코스피상장사인 화천기계는 지난 26일 ‘최대주주 변경’을 공시했습니다. 기존 최대주주가 지분을 모두 처분하면서 최대주주가 바뀐 건데요. 최대주주란, 말 그대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 중인 주주를 의미합니다.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지만, 대체로 해당 기업의 경영권과 밀접하기 때문에 최대주주의 변경이나 보유주식 변동 등은 중요한 사안으로 여겨지곤 하죠.

화천기계의 최대주주가 실질적으로 바뀐 걸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화천기계의 기존 최대주주는 창업주 고(故) 권승관 명예회장의 장남인 권영열 회장이었습니다. 다만, 그가 보유 중인 지분은 2.31%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건 화천기공 때문입니다. 화천기공은 화천기계 지분 39.95%를 보유 중인데요. 권영열 회장은 바로 이 화천기공의 최대주주입니다. 23.38%의 지분을 직접 보유 중이고,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은 48.78%죠.

그런데 권영열 회장은 지난 19~20일 보유 중이던 화천기계 지분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동생인 권영두·권영호 부회장도 보유 중이던 화천기계 지분 1.43%와 0.25%를 모두 처분했죠. 

이로써 화천기계 최대주주는 화천기공으로 변경됐습니다. 물론 실질적으로 변화가 있는 건 아닙니다. 권영열 회장이 화천기공을 통해 여전히 확고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죠. 즉, 이번 화천기계 최대주주 변경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변화입니다. 그보단 최대주주 변경을 가져온 권영열 회장 일가의 화천기계 지분 처분 자체가 더 눈길을 끄는데요. ‘기막힌 타이밍’으로 인해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고 있고, 주가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권영열 회장의 지분 처분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18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화천기계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했습니다. 이유는 현저한 시황변동이었죠. 지난달 초 3,300원 안팎이던 화천기계 주가가 지난 15일 6,000원을 돌파한 데 이어 18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하자 조회공시를 요구한 겁니다. 이에 대해 화천기계 측은 중요한 공시 사안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권영열 회장과 두 동생의 지분 처분은 이처럼 주가가 눈에 띄게 오른 시점에 이뤄졌는데요. 이 자체도 주가와 주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사안이긴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가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주가를 들썩이게 만든 요인에 있습니다. 화천기계는 대표적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테마주’로 꼽힙니다. 총선을 앞두고 조국 대표가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고, 그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크게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키면서 화천기계의 주가도 치솟은 겁니다.

화천기계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듯 조회공시 요구 답변에서 “최근 당사 주식이 특정 정치인의 테마주로 거론되고 있으나 과거 및 현재 당사의 사업 내용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는데요. 

정작 권영열 회장 일가는 ‘테마주 현상’으로 주가가 폭등한 시점에 지분을 처분해 쏠쏠한 사익을 챙긴 모습입니다. 물론 이것이 불법 또는 탈법 행위는 아닙니다만, 중견기업을 이끄는 경영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인지 물음표가 붙습니다.

파장도 상당합니다. 권영열 회장 일가의 지분 처분과 이에 따른 최대주주 변경이 공시된 직후인 27일, 화천기계 주가는 전일 대비 23.69% 하락했습니다. 장중 한때 하한가에 근접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화천기계는 왜 ‘조국 테마주’가 됐을까요?

화천기계가 ‘조국 테마주’로 분류되는 이유를 따져보면 정말 ‘황당무계’합니다. 화천기계에서 2010년부터 2022년까지 감사로 근무한 인물이 조국 대표와 미국 법클리 법대 동문이라는 게 그 이유인데요. 단순히 동문이라는 이유도 그렇지만, 현직도 아닌 떠난 지 2년이 지난 전직 감사가 이유라는 게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국 대표 역시 최근 자신의 테마주들이 크게 들썩이자 “‘조국 테마주’는 조국 대표 및 가족 누구와도 관련이 없음을 알려 드린다”며 투자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화천기계는 과거에도 ‘조국 테마주’ 현상으로 들썩인 바 있습니다. 조국 대표가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고, 여러 의혹 제기로 파문에 휩싸이면서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탄 건데요. 결과적으로 당시 조국 대표가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나면서 당시 화천기계 주가는 하한가를 기록하는 등 폭락했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정치인 테마주’ 잔혹사, 각별한 주의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보입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화천기계 ‘최대주주 변경’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40326801401
2024. 03. 26.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화천기계 ‘조회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40319800796
2024. 03. 19.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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