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 박사
외국인을 유치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달러 수익을 올리는 관광은 흔히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불렸다. 변변한 생산기반이나 발전전략이 없는 형편에서 이만한 장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거나 조상님들의 은덕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도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수 있다.
한국도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하는 1970~80년대 어간에 관광으로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서울 경복궁과 비원, 경주 불국사나 부산 해운대 등이 나름대로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로 꼽혔다. 지금의 K-팝, K-뷰티 등의 열풍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렵고 힘든 시절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종자돈을 마련해준 한줄기 빛이 된 건 사실이다.
북한이 요즘 관광 이슈로 부산하다. 러시아와 중국 관광객들이 방북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서방 단체관광객의 방북이 5년 만에 재개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오는 4월 초에는 평양 시내를 달리는 국제마라톤에 참여할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는 뉴스도 있어 관심을 높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관광산업 띄우기를 하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그동안 이런저런 언급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의 경우 제법 구체적이고 눈에 잡히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해 말 동해안 지역인 강원도(분단으로 북한에도 강원도가 행정구역으로 존재) 원산의 명사십리 지역에 건설한 갈마해안관광지구를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아름다운 우리 조국의 바닷가 정서가 깃든 갈마해안관광지구가 우리 인민과 세계 여러 나라의 벗들이 즐겨 찾는 조선의 명승, 세계적인 명소로서의 매력적인 명성을 떨치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은 나라의 관광산업을 획기적인 발전공정에 올려놓는데서 의미가 큰 중요한 첫걸음으로 된다”고 강조한 점을 봐도 그가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이 후계자로 삼을 기세로 내세우고 있는 딸 주애를 동행했다는 건 그만큼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30년 넘게 연구·관찰해온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북녘 땅이 상당히 매력적인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천혜의 명소를 더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 지역을 통해 백두산을 몇 차례 올라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여기만 잘 개발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면 북한이 먹고사는 데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측 백두산이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특히 방북 관광이 어려운 한국인들이 몰려있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생겼다. 솔직히 북한 쪽에서 접근하는 백두산 루트는 중국 측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북한의 관광은 걸음마 수준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낙후돼 있는 게 현실이다. 평가하기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는 얘기다.
북한 관광을 이런 상황에 머물게 만든 건 무엇보다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정치 체제다. 국제사회가 우려의 목소리와 경고를 끊임없이 울려온 인권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김정은 체제 들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면서 호전적이고 도발적이며 불안정한 곳이란 인식이 널리 퍼졌다.
관광객에 대한 신변 보장이 과연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발길을 쉽게 내딛기 어려운 결정적 요인이다. 미국인 대학생이 평양 관광길에서 변고를 당해 결국 목숨을 잃는 사태에 이르면서 국제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15년 말 관광 차 방북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평양 양각도호텔에 묵던 중 정치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됐고,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징역형)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복도의 김정은 찬양 선전물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북한은 1년 5개월간 웜비어를 억류하다가 혼수상태로 송환했지만 엿새 만에 숨졌다. 광범위한 뇌손상이 드러나 북한 당국에 의한 고문 등 강압적 행동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지만 북한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누가 범인인지 잘 알고 있다.
이에 앞서 2008년 7월에는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우리 국민 박왕자 씨가 해안가 산책 중 북한군 초병에 의해 사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은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등의 요구에 오히려 책임이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강변했고, 국민 안전을 위한 한국 정부의 관광 중단 조치에 대해 “우리에 대한 도전(명승지개발지도국 성명)”이라고 위협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했다.
관광자원 개발이나 국제 관광협력 사업에서 필수적인 해외 투자 유치의 경우에도 북한은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상태다. 북한은 9억4,200만달러(1조3,600억원)의 관광대가를 받는 조건으로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지만 거듭된 합의 위반과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사업 중단 사태로 결국 파국을 맞게 했다. 이 과정에서 금강산 지역 내 현대아산의 해상호텔인 해금강호텔 등의 자산을 멋대로 처분했고, 아난티골프장 등 한국기업의 자산을 일방적으로 몰수해버렸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북한 관광길에 자국 국민을 단체로 보내고, 어떤 기업이 시설투자를 할 수 있겠는가.
마침 북한을 관광하고 최근 돌아온 영국의 한 유튜버의 말이 눈길을 끈다. 28세인 마이크 오케네디는 “모든 관광객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맥주 공장과 학교, 약국 등 철저히 정해진 일정대로만 여행할 수 있었다”며 “몇 번인가는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미리 알려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방문한 지역이 북한의 개방구로 알려진 나선지역인데도 이 지경이니 평양이나 내륙지역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정은 위원장은 “관광안내 봉사와 관광시설 운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라”며 간부들을 닦달하고 있다. 관광객이 마음 놓고 찾고 자연과 유적과 특산 음식을 즐기려면 우선 핵과 미사일 도발자로 알려진 자신의 노선 전환과 폐쇄적 체제의 개혁·개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한 채 부하들에게 ‘정신승리’만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푸틴의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전투 병력을 대규모로 파견하고 4,000여명의 병사가 죽거나 다치는 희생을 치르는 상황은 국제사회가 김정은 체제의 무모함을 엿보는 계기가 됐다. 또 금융전산망을 해킹해 천문학적 규모의 코인을 털어가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상황에도 세계는 주목하며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김정은 위원장 혼자 웃는 얼굴로 호객행위를 한다고 해서 선뜻 방북길에 나설 관광객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아주 독특하고 해괴한 체험이나 목숨을 건 어드벤처를 꿈꾸는 관광객이 아니라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