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지난달 경북을 불태운 산불이 잡히고 있다. 소방관, 봉사자들 노력도 있었지만 ‘소방헬기’의 고군분투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번 산불 현장에선 국산 소방헬기들의 활약상도 눈에 띄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개발한 ‘수리온(KUH) 헬기’는 이번 경북 지역 산청, 의성 등 산불 진화를 위해 수리온 군·관용 헬기는 총 270여회, 최대 43대가 산불 화재 진압 현장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이 같은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국산 소방헬기가 갈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헬기가 외산 장비이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부품 교체, 정비 등 이점을 고려, 수리온 헬기를 필두로 한 소방헬기의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강력한 성능의 ‘수리온’, 산불 조기 진화 능력에선 ‘카모프’ 앞서
수리온 헬기의 성능이 외산 장비와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 환경에 특화돼 산불 진압에 있어선 수리온 헬기가 갖는 장점이 훨씬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대표적 산불 진화 헬기인 러시아 카모프의 ‘KA-32’ 모델과 비교해 수리온 헬기는 우수한 재원을 가진다.
먼저 ‘담수 능력’에서는 KA-32가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KA-32의 물탱크는 최대 3톤을 실을 수 있다. 탑승 인원 및 소화 장비 등 무게를 포함할 시 실질적 담수량은 2.5톤이다. 수리온 헬기의 경우 현재 2톤의 물을 싣고 화재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현재 산불 진화에 있어 수리온 헬기가 KA-32보다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AI는 신규 모델의 담수량을 2.7톤까지 확장하기 위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 작업이 마무리 될 경우 수리온 헬기의 담수 능력은 KA-32와 엇비슷한 수준까지 향상된다.
하지만 ‘기동 능력’에 있어서는 수리온 헬기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우수하다. KA-32는 물을 최대로 실고 이동할 시 80노트, 시속 148km에 불과하다. 반면 수리온 헬기는 130노트(시속 241km)로 비행 가능하다. 산불 현장에 수리온 헬기가 두 배 가까이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셈이다.
담수 능력도 중요하지만 소방헬기의 기동 능력은 산불 확산 조기 진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부산에 불이 나 서울 소방헬기가 지원을 가는 상황을 가정 해보자. KA-32 헬기가 이동할 경우 2시간 12분 뒤에 산불 현장에 도착하게 된다. 반면 수리온 헬기는 이보다 42분 빠른 1시간 30분 만에 현장 도착이 가능하다.
이때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의 평균 확산 속도는 시속 8.2k㎡다. KA-32는 수리온 헬기보다 약 5.74k㎡ 더 많은 산림이 불탄 후에야 현장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축구장 8개와 맞먹는 넓이다. 따라서 골든타임이 중요한 초기 산불 진화에 있어서 KAI의 수리온 헬기가 KA-32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헬기 정비·관리 측면에서도 수리온 헬기가 유리하다. KA-32와 같은 외산 헬기는 수리 부품 및 장비가 국내 제품에 비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KA-32를 30대 운용할 경우, 연간 운용 유지비가 285억원이 필요하다. 반면 국내서 부품 공급과 기술 정비가 가능한 수리온 헬기 운용 유지비는 연간 176억원으로 저렴하다. KA-32와 5대5 비율로 운용해도 비용이 231억원 수준이다.
◇ 소방헬기, 90%가 외국산… 러시아·유럽이 강세
우수한 수리온 헬기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방헬기의 경우 대부분 외산 장비를 사용 중이다. 소방청에서 발표한 ‘전국 119항공대 헬기보유 현황’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19항공대 헬기는 총 31대다. 이 중 이탈리아에서 생산한 헬기가 총 13대로 가장 많았다. 모델은 각각 ‘아구스타웨이스트랜드’의 △AW139(11대) △AW169(1대) △AW189(1대)였다.
이탈리아에 이어선 프랑스 헬기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에어버스헬리콥터스’의 △EC-225(3대)와 ‘아에로스파시알’의 △AS-365N2(6대)가 총 9대다. 이외 △러시아 카모프(KA-32T, 2대) △일본 가와사키(BK-117C, 2대) △미국 시코르스키(S-92, 1대)로 집계됐다. 한국의 수리온 헬기는 △KUHC-1(3대) △KUH-1EM(1대)로 총 4대였다.
산림청에서 운용하는 산불 진화용 산림헬기 역시 외산 장비 편중이 심한 수준이다. 산림청이 발표한 ‘기관별 항공기 보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운용 중인 산림헬기는 총 50대다. 이 중 수리온 헬기 모델인 ‘KUH-1’의 운용 대수는 3대뿐이었다. 운용 지역도 서울(2대)과 제주(1대) 2곳에 불과했다.
반면 러시아 카모프사의 ‘KA-32’모델은 29대가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산림헬기의 58%가 러시아제인 셈이다. 미국산 헬기도 14대를 차지했다. 각각 ‘에릭슨 에어크레인’에서 제작한 ‘S-64(7대)’와 ‘벨 헬리콥터’에서 제작한 ‘BELL-206(7대)’다. 119항공대 헬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프랑스 아에로스 파시알의 ‘AS-350’ 모델도 4대가 운용 중이다.
결과적으로 전체 소방청 운용 119헬기의 87%, 산림청 산림헬기의 94%가 외산 헬기라 볼 수 있다. 군용헬기로썬 우수한 평가를 받은 수리온 헬기가 국내 소방 및 산림헬기에선 부진한 성적표를 보인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로 수리온 헬기는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방산 기업 ‘EDGE그룹’에서 기술 이전이 검토되는 등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KAI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예전에 해외 헬기 업체들이 관용 헬기 시장을 장악하면서 수리온 헬기가 차지할 자리가 너무 적었다”며 “그래도 최근엔 수리온 헬기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가 향상돼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 수리온 두고 ‘임차헬기’… 부품 부족·고령화에 위험성↑
이 같은 소방헬기의 국산화 속도 저하가 곧 국내 산불 진화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외산 헬기의 경우 부품 수급 및 정비 지원이 국산 제품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림청에서 운용하는 KA-32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너 전쟁으로 인해 필요한 수리부속·예비품 보급이 불가한 상황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KA-32 헬기 주기정비가 도래할 경우 수리부속/예비품이 없어 그라운드 시키고 필요 부품을 동류전환 시키는 ‘돌려막기식 운영’ 중”이라며 “이러한 운용으로 당분간 유지가 가능하지만 2~3년 내 대부분 KA-32 그라운드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운용되는 ‘임차헬기’의 안전성 문제도 지적된다. 임차헬기는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임무 수행을 위해 민간으로부터 임대해 운영하는 헬기다. 주로 외국 기업과 연간 계약을 맺고 임대해 운용된다. 비용 측면에선 임대를 하는 방식이 저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령화된 기종을 임대하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추락 및 사고의 위험성도 크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 임차헬기는 총 77대다. 이때 평균 임차헬기의 기령은 35년이다. 일반적으로 군용헬기가 20~30년이면 퇴역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셈이다. 실제로 경북에서 처음 운용됐던 소방헬기 ‘불사조(KA-32T모델)’의 경우 지난 2023년 28년 만에 퇴역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래된 임차헬기는 산불 현장 투입 시 큰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대구시 북구 서변동에서 산불 진화에 투입됐던 헬기가 추락, 조종사 1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산림청에 따르면 해당 헬기는 기령이 무려 44년이나 된 노후 헬기였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기체 노후화가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26일 의성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추락한 헬기도 30년이 넘은 임차헬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고로 조종사 1명이 사망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산림청은 신형 수리온 헬기 도입 대신 임차헬기 도입을 오히려 늘렸다. 산림청은 지난해 산불 기간 중 사용하기 위한 헬기 대형기 5대와 중형기 2대를 해외 업체에서 임차했다. 이를 위해 배정된 예산은 무려 368억원이다. KA-32의 부품 부족으로 인한 불가동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연간 176억원이면 30대의 수리온 헬기 운용이 가능함을 고려하면 상당히 아쉬운 조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임차헬기가 위험한 이유가 임대업체들이 운영비를 많이 남겨야 되기 때문에 오래된 헬기를 도입하고 저임금 고령 조종사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예산은 예산대로 많이 들어가고 조종사들의 안전과 산불 진화 효율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내 관용 소방 및 산림헬기 도입 방식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의 경우 관용 헬기 도입을 총괄하는 기관이 따로 없다. 때문에 지자체와 소방청, 산림청 등 각 기관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헬기 모델을 따로 발주해 운용 중이다. 이로 인해 헬기의 일원화가 이뤄지지 않아 부품 수급, 정비 관리 체계도 중구난방인 상황이다.
KAI 관계자는 “수리온 헬기와 같은 우수한 국산 헬기가 만들어진만큼 관용 헬기 시장의 도입 체계도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며 “중앙 기관에서 통합 구매 및 관리를 하는 것이 더욱 안전한 소방·산림헬기 운용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