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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법안 해법탐구 프로젝트
[국회 계류 쟁점법안- '범죄의사면허취소'③] 반대 측 “과잉금지 원칙과 직업수행 자유 침해”
2021. 04. 28 by 서예진 기자 syj.0210@sisaweek.com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 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해당 법안이 ‘과잉 금지 원칙’ 위반과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해당 법안이 ‘과잉 금지 원칙’ 위반과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2000년 의료인 면허 취소 요건이 개정된 이후,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다지만 결국 사라졌다. 법안이 개정되지 못하고 사라진 것은 의료계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료인의 면허 취소는 ‘과잉 금지 원칙’ 위반과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의협 “변호사와 의사, 역할의 차이 존재”

지난 2월 교통사고는 물론 강도·살인·성폭력 같은 강력범죄로 금고 이상 형이 선고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안(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다만 의료행위 도중에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때는 면허 취소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 의료계가 의료법 개정안을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대해 “정의 구현을 역할로 하고 있는 법 전문가인 변호사의 위법행위와 의료전문가인 의사의 의료와 무관한 위법행위가 같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사와 의사는 그 역할과 전문성의 차이가 명확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의협이 지난달 낸 성명서를 살펴보면 “타 직종에서 적용되는 결격사유를 의료인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징벌적 규제”라고 돼 있다. 의협은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가 변호사의 결격사유가 의사의 그것과 비교할 때 광범위해 직업 간 평등을 해친다는 헌법소원(변호사법 제5조 제2호 관련)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판례를 거론하고 있다. 

당시 헌재는 “의사 등과 달리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여 직무의 공공성이 강조되고 그 독점적 지위가 법률사무 전반에 미치므로 변호사 결격사유가 되는 범죄의 종류를 직무 관련 범죄로 제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 명시한 바 있다. 의협의 주장대로면 현재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의료법은 헌재의 판결과 배치되는 셈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속출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독감 백신 접종 잠정 유보에 대한 권고를 주장하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살인, 성범죄 등 중대범죄에 대한 면허 취소를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속출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대한의사협회

◇ “중범죄 면허취소 반대하지 않아”

또한 이들은 의료행위와 무관한 형사제재를 결격사유로 규정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하고,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해영 의협 법제이사(변호사)는 “전문 자격증이나 면허 같은 것을 보면 직업의 선택, 수행의 자유와 관련해서 직업에 지장이 없다면 제한을 하지 않는 게 일반의 형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협은 면허관리원 설립 추진, 자율징계 등 자율적인 면허관리를 위한 노력을 거론하면서 “모든 범죄로 하여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스스로 엄격하게 면허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들은 중대범죄에 대한 면허 취소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살인이나 성폭력을 저지른 의사를 어떤 의사가 동료로 인정하겠느냐”며 “의료계 내부에서도 살인이나 성폭력 범죄 등을 저지른 일부의 의사 때문에 전체 의사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평범하고 선량한 보통 의사가 직무와 무관한 사고나 법에 대한 무지 때문에 졸지에 면허를 잃고 나락에 떨어지는 피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법을 잘 지키면서 사는 대다수의 선량한 의사들은 살인범이나 성폭행범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살인이나 성폭행을 하고 싶어서 이 법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