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배기량 기준 과세, ‘대배기량=고급 차’ 인식
엔진 다운사이징·전동화에 억대 수입차 세금이 국산차보다 낮아
차량 운행 않고 보유만 해도 배기량별 세금 부과… ‘차=재산’ 인식
배기량·차량 가격 비례관계 현저히 약화… 차량 가격요소 도입 필요

자동차세를 아끼는 방법을 알아보자.
자동차세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또 다시 커지고 있다. / 시사위크DB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자동차를 소유한 이들은 매년 1월 ‘자동차세 납부 고지서’를 받아든다. 자동차세란 자동차를 소유한 국민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재산세(지방세)로, 정부에서 배기량에 따른 과세 기준을 1990년 도입했고 현재까지 큰 틀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어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20대 대선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이러한 자동차세 과세 기준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해 운전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먼저 우리나라의 자동차세는 1921년쯤 처음 도입된 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1990년 차량의 배기량에 따라 차등 부과하기 시작했다. 배기량이란 ‘자동차 엔진 실린더 내부의 체적(부피)을 산출한 양’으로, 차량의 엔진 크기 및 성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배기량이 큰 차량은 상대적으로 고성능을 낼 수 있다. 동시에 배기량이 큰 차들은 대기환경 오염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도 상존했다.

즉, 배기량이 큰 차는 ‘고급 차’ ‘비싼 차’라는 것이 당시 사회에서는 통용됐고,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정부는 재산세와 환경과세 성격을 모두 만족하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1990년부터 자동차세를 과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량이 재산은 맞지만, 해가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졌던 탓에 소비자들의 불만은 커졌다. 이에 정부는 2001년 자동차의 재산 가치 유지 기간을 2년으로 보고 3년째부터 자동차세를 5%씩, 최대 50%까지 감면하는 제도를 도입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행 자동차세는 엔진 배기량에 세액을 곱해 납부액을 산출한다. 비영업용(자가용 등) 차량 중 경차에 해당하는 배기량 1,000㏄ 이하 차량은 ㏄당 80원, 1,600㏄ 이하는 ㏄당 140원, 1,600㏄ 초과는 ㏄당 200원이다. 배기량이 클수록 많은 세금을 물리는 구조다.

그런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동차업계에서는 엔진 크기를 줄이면서 성능을 증폭시키는 다운사이징 기술을 적용하고 나섰다. 이때부터 ‘배기량=재산수준’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세라티가 오는 28일 브랜드 최초 하이브리드 모델 ‘기블리 하이브리드’를 국내에 출시한다. / 마세라티 글로벌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마세라티의 엔트리급 고성능 럭셔리 세단 기블리 하이브리드 모델은 2.0ℓ급의 가솔린 터보차저 엔진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해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자동차세가 저렴한 편이다. / 마세라티 글로벌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대표적인 차량은 마세라티 기블리 모델로, 기블리 가솔린 하이브리드 모델은 1,995㏄임에도 터보차저 기술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해 330마력, 45.9㎏·m 최대토크, 최대속도 255㎞/h, 제로백(0~100㎞/h 도달 시간) 5.7초 등의 성능을 보인다. 이 차량의 국내 판매 가격은 1억1,450만원부터 시작이다.

마세라티 기블리 하이브리드 모델에 부과되는 자동차세는 39만9,000원에 교육세 11만9,700원을 합쳐 51만8,700원이다. 국산 차량들 중에서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내는 차량은 2.0ℓ급 엔진을 탑재한 기아 K5와 현대자동차 쏘나타 등이 있다.

오히려 2.5ℓ급 엔진을 탑재한 현대차 그랜저나 기아 스팅어 등은 배기량이 2,497㏄로, 연간 자동차세는 총 64만9,220원으로, 마세라티 기블리 하이브리드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낸다.

전동화가 속도를 내고 있는 현재 출시되는 고성능 전기차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크다.

정부는 저공해 순수전기자동차에 대해 매년 일정부분 구매보조금을 국고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세금까지 감면해주고 있다. 전기차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배기량이 의미가 없다. 수소전지 및 수소연료 차량도 동일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전기차나 수소차에 대해서는 차량 가격이나 사이즈에 무관하게 10만원의 자동차세만 부과한다.

억대를 호가하는 전기차 아우디 e-트론(GT 포함)이나 BMW iX, 메르세데스-벤츠 EQS 등 모든 전기차가 해당된다. 또 3,000만원대나 4,000만원대 수준의 전기차도 이러한 고급 전기차와 동일한 세금을 내는 점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배기량에 따른 자동차세 과세에 대해 한때 일부 소비자는 헌법재판소에 배기량 기준의 자동차세 부과는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이에 2012년 헌법재판소는 자동차세 배기량 기준 부과는 합헌으로 결정했다. 자동차세는 재산뿐 아니라 도로 이용 및 교통 혼잡, 대기오염 유발에 대한 사회경제적 평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헌재 판결의 맹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부분은 차량 소유자가 해당 차량을 운행하지 않고 등록한 뒤 소유만 하고 있다할지라도 배기량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차량 자체를 운행 여부와 관계 없이 ‘재산’으로 인식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메르세데스-벤츠 EQS와 BMW iX 등 최근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개된 일부 전기차는 보닛을 일반인들이 개방할 수 없다. 사진은 벤츠 EQS(왼쪽)과 BMW iX. /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BMW그룹 코리아
메르세데스-벤츠 EQS(왼쪽)와 BMW iX 등 억대를 호가하는 고급 전기차는 국내에서 많은 세금 감면 혜택을 누리고 있다. /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BMW그룹 코리아

이러한 문제점은 한국지방세연구원(KILF)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지난 2020년 8월, 한국지방세연구원 오경수 연구위원과 김민정 연구원은 ‘친환경자동차 소유분 자동차세의 합리적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세의 과세기준은 일반적으로 배기량이 클수록 높은 자동차 가격을 갖는 비례관계를 가지므로 배기량별 차등과세는 재산가치에 따른 누진세율과 유사성을 지닌다”면서도 “최근 수입차의 급증 등 자동차 종류가 매우 다양화되면서 동일한 배기량에서도 차량에 따른 가격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비례적 관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됐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는 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안지연 연구원이 ‘시장변화에 따른 합리적인 자동차세 가격요소 도입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당시 수입차(2019년) 가격은 국산차에 비해 1.82배 높으나, 배기량은 1.06배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해외에서는 이러한 점을 반영해 차량 가격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곳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각 주마다 자동차에 과세하는 세목과 기준이 다양하다. 캘리포니아와 아이오와, 미시간, 미네소타, 루이지애나 등 여러 주에서는 차량 가격과 가치를 과세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기본 46달러에 추가적으로 차량의 가치(Vehicle Value)에 따라 25∼175달러를 차등해 과세하며, 2020년부터는 캘리포니아주의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라 매년 조정하고 있다. 또 미네소타주는 기본금액 10달러에 차량 기준가격의 1.25%를 추가로 과세하며, 차량 기본가격은 등록연도에는 100%이고 등록연도 이후에는 매년 10%씩 경감해 11년 이후부터는 과세 총액을 25달러로 고정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신규 차량부터 가치에 따른 초과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정책을 제안했다. 초과누진세율을 신규차량에만 적용할 경우, 조세부담이 가장 크게 늘어나는 구간은 배기량이 1,600㏄를 초과하고 가격도 6,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최상위 소득구간에 위치하는 이들에게 조세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

대신 이 경우 조세부담이 커질 수 있어 연비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른 자동차세 감면 등을 복합적으로 적용해 부담을 줄여줄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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