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건대입구=이영실 기자  “고(故) 강수연은 영화 ‘정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과 배우 김현주‧류경수가 참석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김현주 분)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다. 

영화 ‘부산행’과 ‘반도’,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까지 매 작품 독특하고 탄탄한 세계관을 선보인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2세기 미래, A.I. 전투용병의 뇌복제 실험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전 세계 시청자 저격에 나선다. 

이날 연상호 감독은 “하나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던 윤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며 “영웅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정이라는 인물이 자기를 둘러싼 모든 이데올로기, 아이콘으로서 여러 상황에서 완벽하게 해방되는 이야기를 상상했고, 이를 SF적 상상력으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정이’는 A.I. 전투용병 정이의 탄생 과정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지금껏 본 적 없는 한국형 SF 장르의 새로운 문을 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SF 장르와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한국적인 이름 ‘정이’를 제목으로 택해 이목을 끈다.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영화의 전체 내용이 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이’로 정해졌다”면서 “또 새로울 수 있는 SF장르에 한국인에 익숙한 이름이 제목으로 이뤄진 것도 재밌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연상호 감독은 “정이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인물인데, 그러다 사고를 당한다”며 “서현은 그런 어머니에게 늘 죄책감을 갖고 있다.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리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은 인물”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도 누군가의 자식이자 아버지로서 나의 부모에 대해 다시 리셋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이 영화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어떻게 보면 한국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짚었다. 

‘정이’는 지난해 5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은  고 강수연이 ‘정이’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연 감독은 “처음 이 이야기를 쓸 때는 영화화 해야겠다는 생각을 꼭 하진 않았다”며 “그러다 만약 영화로 만든다면 서현이라는 캐릭터를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했는데 갑자기 강수연 선배가 생각났다. 그때부터 ‘정이’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부터 넷플릭스와 강수연 선배를 주인공으로 이런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눴다”며 “어떻게 보면 강수연 선배가 이 영화를 기획하게 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 

고 강수연은 ‘정이’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크로노이드 연구소 팀장 서현으로 분한다. 서현은 정이의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팀장인 동시에 정이의 딸이기도 한 인물이다. 고 강수연은 과거와 현재, 공과 사의 감정이 오가는 캐릭터를 치밀하게 직조해 내며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줄 전망이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는 고 강수연의 모습이 담긴 탄생기 영상이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영상 속 강수연은 “가장 한국적인 SF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연상호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정이’를 택한 이유와 함께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고 강수연과 호흡을 맞춘 김현주, 류경수는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현주는 “처음 선배님이 하신다고 했을 때 말이 되나 싶었다”며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그분의 눈을 보고 연기할 수 있을까 겁도 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처음 만난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현장에서는 선배, 어른도 아닌 그냥 동료였다.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셨다. 현장 밖에서도 많이 챙겨주셨다. 선배가 계시지 않았다면 연상호 감독, 류경수를 얻지 못했을 거다. 정말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류경수도 “강수연 선배와 90% 이상 함께 연기했다. 연구소에서 상훈은 ‘회장바라기’인데, 내가 선배를 존경하는 마음이 많이 투영됐던 것 같다”며 “선배같은 어른이 되고 싶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강수연 선배와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고 강수연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을 내비쳤다. 

김현주는 연합군 측 최정예 리더 출신이자 뇌복제 실험의 대상이 되는 정이를 연기한다. 정이는 수많은 작전에서 승리를 이끈 시대의 아이콘이자 작전을 나가기 전 가족을 안심시키려 웃어 보이는 평범한 인간, 불의의 사고로 캡슐 안에서 식물인간으로 늙어가는 인물이자 무수히 복제되어 있는 자아를 지닌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캐릭터다. 

김현주는 캐릭터의 미묘하고 복잡한 차이를 섬세하게 표현한 것은 물론, 고강도 액션까지 완벽 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과거에 해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연기라 고민이 많았다”면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을 털어놨다. 이어 “실험 대상일 때 AI와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 AI를 구분 지어 연기해야 했다”며 “부자연스러운데 자연스러워야 해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현장에서 감독과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만들어 갔다”고 덧붙였다. 

액션에 대해서는 “내가 이런 액션을 또 해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고, ‘지옥’ 때 함께 했던 무술팀이라서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것에 맞게 잘 디자인해 주셨다. 또 절도 있고 힘이 넘쳐야 하는 액션이기 때문에 체력적인 면, 근력적인 부분을 키워야 해서 운동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연상호 감독은 “(김현주가) 기본적으로 액션을 워낙 잘한다”고 칭찬했다. 또 “액션도 액션이지만 순간적으로 감정을 뽑아내는 것을 아주 잘 하는 것을 ‘지옥’에서 확인했기 때문에 ‘정이’도 제안을 했다”며 “그리고 영화를 기획하면서 생각한 그림체와 아주 잘 맞는 배우였다”고 캐스팅 이유를 전했다. 

류경수는 전투 A.I.를 만드는 거대한 회사 크로노이드 연구소의 연구소장 상훈 역을 맡았다. 상훈은 전투용병 ‘정이’ 개발에 성공해 회장에게 신임을 얻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또 자신과 관련된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 인물로 후반부로 달려가며 큰 폭의 감정 변화를 겪게 된다. 류경수는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으로, 관성을 깨는 강렬한 연기와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연상호 감독은 류경수에 대해 “자신이 맡은 배역이 극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설계를 잘하고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류경수가 전체적인 콘셉트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할지에 대해 이미 계획이 있었다”며 “류경수가 잘 설계해서 해줬다는 생각이 든다”고 류경수의 활약에 만족감을 표했다. 

류경수는 캐릭터에 대해 “MBTI가 ENFP인 인물로 생각했다”며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는데 장난스럽고 과감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아침 일찍 출근하면 텐션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아침마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들으면서 템포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며  상훈을 표현하기 위해 한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음을 전했다. 

끝으로 연상호 감독은 “어렸을 때 SF 소설을 처음 접하고 소년 연상호가 가진 느낌을 ‘정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며 “배우들의 앙상블도 기대해달라.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오는 20일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