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방탄국회 등 정치적 이슈에 따른 여야 대립이 법안 처리 지연
개인정보보호법과의 충돌 및 국토위 산하 일부 의원들 반대도 영향끼쳐
최인호 간사실 “2월 중순경 소위 열고 법안 처리 위해 여당과 협의 예정”

여야 의원이 다수 발의한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이 현재까지 국회 계류 중이다. / 뉴시스
여야 의원이 다수 발의한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이 현재까지 국회 계류 중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지난해부터 시작된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집값이 크게 하락하면서 ‘역전세난’, ‘깡통전세’ 등에 따른 전세사기가 날로 급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각종 전세사기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 피해자에 속한 20‧30청년층, 신혼부부, 서민층 등의 세입자 보호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작년 9월 전세사기 보호 대책을 발표하면서 악성임대인 명단을 전면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는 요원하기만 하다. 국회에 발의된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이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국회서 잠자고 있는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 일부는 회기 만료로 폐기

전세사기가 사회적 주요 이슈로 등장하자 20‧21대 국회 회기 동안 여야 의원들은 앞다퉈 악성임대인 명단을 공개하는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다수 발의했다.

그러나 악성임대인 명단을 공개하는 법안 대부분은 현재 국회에서 잠든 상태다. 이 중 일부 법안은 회기 만료로 폐기되기까지 했다.

실제 20대 국회 회기 중이었던 지난 2016년 9월 김현아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2017년 7월 제윤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후 21대 국회에서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2021년 9월 대표발의),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2021년 5월 대표 발의),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2022년 12월 발의),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2022년 12월 발의)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수 의원들이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을 발의했으나 아직까지 처리된 법안은 한 건도 없다.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이 이처럼 국회를 표류함에 따라 정부가 전세사기 방지를 위해 시행하려는 대책들도 혼선이 일 것으로 보인다.

당장 1일부터 국토부가 배포하기 시작한 ‘자가진단 안심전세 앱’의 경우 당초 정부가 약속한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가 어려워지게 됐다.

때문에 곧 다가오는 이사철인 봄에 계약만료가 되는 세입자들은 여전히 전세사기 불안감을 떠안은 채 이사 준비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 현황을 설명 중이다. / 뉴시스
지난해 12월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 현황을 설명 중이다. / 뉴시스

◇ 일부 의원 반대 등 장애물 다수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 처리가 난항을 겪는 이유는 개인정보보호법 등과의 충돌, 여야간 대립 등 정치적 상황, 관련 소위 의원들의 반대 등 여러 요인이 복합 작용됐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국토위원회는 다른 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통상 먼저 발의‧제출된 법안을 우선 처리하는 선입선출 방식을 따르고 있다”며 “다만 이 과정에서 양당 간사간 협의를 통해 시의성‧중요성 등을 따져 법안 처리 순서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소위’)에 법안이 올라와야 산하 의원들이 전문적으로 법안을 검토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찬‧반 의견 등을 제시할 수 있는데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은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라며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 상정이 늦춰진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지난해 여야간 대립으로 인해 계류된 법안이 많아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소위에서 논의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여기에 국토위 산하 일부 의원들의 반대가 있었는데 이 중에는 여당 의원도 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토위 뿐만 아니라 각 위원회의 경우 산하 의원들의 반대가 있으면 대부분 법안 처리를 위한 논의가 원만히 이뤄지기 힘들다”면서 “단 국토부‧HUG 등 정부기관 및 부처는 모두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에 찬성했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김상훈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HUG와 관련된 대위변제를 이행하지 않는 집주인 명단을 공개하는 것으로 정부 재정상 세금 체납 원리를 근거로 하고 있어 다른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과 달리 개인정보보호법과는 무관하다”면서 “작년의 경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간 ‘당 대 당’ 대립 차원에서 소위가 열리지 않았던 점이 법안 처리에 큰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달 중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법안이 처리될 수 있을 지도 관심이다.

국토위 야당 간사인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국토위 간사를 맡게 돼 이전 법안 처리 여부에 대해선 자세히 확인하기 어렵다”며 “작년 12월은 안전운임제 이슈로 인해 여야간 소위 일정 논의가 되지 않았고 올해 1월에는 소위를 열려 했으나 여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상대로 방탄국회 프레임을 걸면서 ‘당 대 당’ 대립으로까지 번지면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이달 임시국회 일정에 따라 소위를 열고 여당 간사와 협의해 계류 중인 악성임대임 명단 공개 법안 등을 처리할 계획”이라며 “오는 14일과 17일 열리는 소위를 통해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여당과 적극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뿐만 아니라 전세보증금 미반환 임대사업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임대사업자 등록시 취득세 면제, 종부세 합산 배제 등의 혜택이 부여된다”면서도 “그러나 위법 행위를 저지른 임대사업자를 등록말소한 사례는 극히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대사업자가 전세보증금을 미반환할 경우 현행 시행령 요건상 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되거나 법원의 중재사항을 미이행하는 경우 2가지 사례에 한해서만 자동 등록말소가 된다”며 “따라서 현재 이 두 가지 사례에 해당되지 않는 임대사업자는 위법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등록말소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회재 의원은 앞서 작년 12월 초 이같은 허점을 개선하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등 이른바 ‘전세사기 방지 2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 국토부, 단계적으로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추진

국토부 관계자는 “금일 출시한 ‘자가진단 안심전세앱’에는 악성임대인 명단이 포함됐다”면서도 “단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개인정보보호법상 임대인(집주인)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토부는 1단계로 임차인이 공인중개사를 통해 임대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당시 임차인이 요구할 경우 임대인 동의 아래 현장에서 악성임대인 명단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며 “이는 내일(2일)부터 즉시 시행된다”고 알렸다.

뒤이어 “2단계는 임차인이 집주인에게 정보 공유를 요청해 앱에서 직접 명단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후 3단계는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전면 공개를 추진하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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