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 8일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을 통해 유상증자 관련 입장을 재차 밝혔습니다. /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 8일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을 통해 유상증자 관련 입장을 재차 밝혔습니다. / 한국지역난방공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코스피 상장사인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 8일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을 공시했습니다. 이 같은 공시는 상장사, 그리고 공시제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을 보여주는 대목인데요. 경영과 관련된 소문이나 보도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돼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때문에 자본시장법과 이에 기반한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은 한국거래소가 풍문이나 보도 또는 주가의 현저한 변동 등에 대해 상장사에 조회공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또한 조회공시 요구가 없더라도 상장사 차원에서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할 경우 자율공시도 가능합니다. 지역난방공사의 이번 공시는 후자에 해당하죠.

지역난방공사는 공시를 통해 어떤 해명에 나선 걸까요?

공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지역난방공사가 해당 공시를 통해 밝힌 핵심 내용은 “유상증자 관련사항은 미확정이며, 구체적인 사항이 결정되는 시점 또는 6개월 이내에 재공시 하겠다”는 겁니다. 유상증자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구체적인 차원에서는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눈길을 끄는 건, 이 같은 해명의 발단이 된 보도가 나온 지 어느덧 7년이나 지났다는 건데요. 지역난방공사가 해명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서울경제의 2016년 6월 3일 보도입니다. 당시 서울경제는 ‘지역난방公. 1,700억 유상증자’라는 제목의 단독보도를 냈고, 지역난방공사는 같은 날 이와 관련된 첫 해명 공시에 나선 바 있습니다. 최초로 밝힌 해명 내용은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자산매각 등의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유상증자와 관련해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것이었죠.

서울경제의 당시 보내용은 얼마 뒤 열린 ‘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통해 ‘에너지 분야 기능조정 방안’으로 공식 발표됐습니다. 이에 지역난방공사도 이와 관련해 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공시해나갔습니다. 유상증자에 대해선 같은 입장을 유지했지만, 출자회사 지분매각 방안은 곧장 구체적으로 추진되면서 진행 상황을 그때그때 공시했죠. 

그렇게 출자회사 지분매각 방안이 최종 확정 및 실행에 옮겨진 뒤에는 유상증자 사안만 남았습니다. 이때부터 지역난방공사는 6개월 주기로 같은 내용의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 재공시를 이어오고 있죠. 2018년 5월 14일부터 이번까지 11번째 똑같은 내용의 재공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5년에 걸친 11건의 공시의 해명 내용이 토씨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유상증자 관련 내용만 놓고 보면 7년에 걸쳐 같은 해명을 내놓고 있는 겁니다.

같은 내용의 해명 공시를 반복하면 안 되나요?

사실과 다르다면 모를까, 오랜 기간 같은 내용의 해명 공시가 이뤄지고 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유상증자와 관련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지역난방공사의 해명 공시는 분명 사실이죠. 

지역난방공사 측은 해당 해명 공시와 관련해 “유상증자에 대해서는 현재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자본확충의 필요성에 따라 유상증자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제14조에 따라서 해당 내용에 대한 공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는 해명 공시의 끝이 있을 수 있을지 인데요. 지역난방공사 해명 공시의 발단이 된 ‘에너지 분야 기능조정 방안’은 박근혜 정부 차원에서 추진됐습니다. 해당 방안이 발표된 ‘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주재한 것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죠.

다만, ‘에너지 분야 기능조정 방안’에 담긴 사안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 발표된 여러 방안 중에는 반발과 논란에 부딪힌 사안들도 있었습니다. 지역난방공사의 유상증자 추진도 그 중 하나로, ‘민영화 수순’이란 거센 반발에 직면했죠. 그러다 이듬해 박근혜 정부가 불명예스럽게 막을 내리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에너지 분야 기능조정 방안’은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해 재차 정권이 교체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지만, ‘에너지 분야 기능조정 방안’ 계승 움직임은 아직 딱히 없습니다. 물론 지역난방공사는 부채비율이 더 높아지고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러 상황들이 달라졌고, 더 시급한 현안도 많습니다. ‘에너지 분야 기능조정 방안’, 그리고 여기에 담겼던 지역난방공사 유상증자 추진 계획이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렇다고 이를 철회하는 것도 애매합니다. ‘에너지 분야 기능조정 방안’을 마련한 박근혜 정부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죠. 유상증자 계획 역시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것이 아닌 검토 단계였던 데다, 지역난방공사의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가능성까지 완전히 닫아버리는 건 어려워 보입니다.

경영과 관련해 중요한 사안은 정확한 판단 못지않게 신속한 의사결정 또한 중요합니다. 이러한 점에 비춰보면 지역난방공사의 ‘앵무새 공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지역난방공사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30508800376
2023. 5. 8.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단독]지역난방公. 1,700억 유상증자
https://www.sedaily.com/NewsView/1KXFNF7EUG
2016. 6. 2.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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