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과 긴 대기, 예약전쟁이 펼쳐지는 소아청소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과선언을 하고 대국민 작별인사를 건넨 소아청소년과의사회.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미래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지원율.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대란의 씁쓸한 풍경들이다. 이를 바라보는 일선 의료인의 마음과 생각은 어떨까. <시사위크>가 현직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이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기도 한 A씨와 진솔한 인터뷰를 가졌다. 다만, 인터뷰 내용은 익명으로 공개하며 철저히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둔다. <편집자주>

현직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A씨는 최근의 ‘소청과 대란’에 대해 여러 난제들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결과라고 진단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현직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A씨는 최근의 ‘소청과 대란’에 대해 여러 난제들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결과라고 진단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 최근 ‘소아청소년과 대란’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관련 소식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선, 현직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로서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어떤지.

소청과 의사들끼리는 우리가 지금 집단우울증을 겪고 있지 않나 그런 얘기들을 한다. 누가 소청과에 지원한다고 하면 ‘거기를 왜 가?’ 소리가 나오고, 소청과 의사라고 하면 ‘그럼 돈은 많이 못 벌겠네’ 소리를 듣는다. 나 자신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고, 과연 몇 년 뒤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많이 안타깝고 답답하다.

-소청과 대란의 원인이 크게 어디에 있다고 보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상 여러 문제들이 누적되고, 거기에 소청과의 특성과 시대변화가 더해지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의료수가 문제부터 전공의 없이 정상운영이 어려운 대형 대학병원 구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와 의료현장의 괴리, 부적절하게 새어나가는 건강보험 재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기형적인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특히 소청과는 그 특성상 기형적인 의료시스템에 따른 문제가 더욱 크고, 진료업무 강도가 높은 것을 비롯해 고충 또한 상당하다. 여기에 저출생이라는 사회문제와 힘들고 돈 안 되는 일을 기피하는 세태까지 작용해 총체적 난국이 된 거다.

-소청과의 수익이 다른 과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 없이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것 같다. 다만, ‘오픈런’까지 벌어질 정도로 환자들이 붐비는데도 수입 문제가 그렇게 큰지 물음표가 붙기도 한다.

다른 과, 특히 소위 ‘돈버는 과’와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소청과의 수익이 낮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려면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해야 하는데 소청과는 그러기가 어렵다. 성인의 경우 여러 가지 검사나 시술도 많은 편이지만, 아이들은 일반적인 질환에 대한 진료와 처치가 대부분이다.

대학병원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수익이 적은 것을 넘어 손해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전공의 시절, 위독한 미숙아를 최선을 다해 처치해 살리고 난 뒤 교수님께서 치킨을 사주시며 하신 말씀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오늘 우리가 한 생명을 살렸지만, 우리가 번 돈은 치킨 값도 안 된다. 모든 의료진들이 고생했지만 병원은 손해를 봤다”고 하셨다. 위급한 상황 속에 아기를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했지만, 거기에 사용한 약이나 의료기구에 대한 수가가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돼있다 보니 아이들을 살릴수록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소청과가 붐비는 지금의 대란 현상은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크게 부각되고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본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바이러스가 지나간 뒤 다른 많은 바이러스들이 기승을 부리다보니 아이들이 많이 아팠다. 소청과의 환자 수와 그에 따른 수익은 그해 바이러스 유행 양상에 따른 영향이 큰데, 올해는 환자가 유독 많은 해다. 7·8월에도 독감환자가 나오고 수족구도 여러 타입이 돌고 있다.

다만, 몰릴 때는 몰려도 시간대나 시기에 따라 한가할 때도 많다. 우리도 많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차이가 크다. 향후 바이러스 유행이 덜해지면 상황은 또 크게 달라질 거다. 또한 개원의는 자영업이기 때문에 잘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편차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A씨는 의료수가가 낮으면 의료발전을 저해할 수 있고, 높으면 의료접근성이 저해될 수 있는 만큼 둘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A씨는 의료수가가 낮으면 의료발전을 저해할 수 있고, 높으면 의료접근성이 저해될 수 있는 만큼 둘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소청과의 수익을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료수가 인상이다. 하지만 수가 인상은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등 쉽지 않은 문제다. 때문에 오랜 세월 의료계의 해묵은 과제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렇다. 수익이 어느 정도 이상은 돼야한다는 것에 대해선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올릴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란 정말 어려울 거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의사가 꼭 돈을 많이 벌어야하나 생각도 있다.

또 수가가 낮은 건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수가가 높아지면 그에 따른 문제도 발생할 거다. 아이들은 질환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자주 와야 하는데 수가가 인상되면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소청과 의사의 수익이 낮고 위상도 떨어지면 훌륭한 인재들이 소청과를 외면하게 될 거다.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면 전체적인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료부문에서 전 세계 최고는 미국이다. 새로운 치료와 약 개발을 주도하는데, 그 기반엔 높은 수가가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미국 의료엔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두운 면도 분명 존재한다.

결국 보편적인 의료접근성 측면에선 수가가 낮아야 하고 의료발전 측면에선 어느 정도 수준의 수가 보장이 필요한데 둘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과 확보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도 심각한 현상으로 지목된다.

-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정말 큰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소청과 개원의 문제는 어느 정도 시장 논리를 따라가는 거라고 본다. 하지만 전공의가 급격히 줄어드는 건 시장 논리를 따라가면 안 되는 전반적인 의료의 질, 그리고 중증·응급 소아의료 시스템의 문제로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동안 전공의로 굴러가던 기형적인 시스템이었는데, 전공의가 사라지니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진 건 소청과 수익과 무관치 않다. 소청과 수익이 적다보니 소청과 전문의 일자리, 즉 페이닥터 채용도 크게 줄어들었다. 내가 전공의에 지원했던 때만 해도 소청과는 경쟁률이 있어서 시험을 잘 보고 성적도 좋아야 했다. 그랬던 이유는 일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고, 소청과 나름의 매력도 있는데 취직이 어느 정도 보장돼있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소청과 전문의 일자리가 없으니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주변의 소청과 의사 친구들은 지금 전부 미용을 하고 있다. 수입을 떠나 취직조차 보장돼있지 않은데 누가 소청과에 지원하겠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최소한 대학병원만이라도 수가를 올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병원이 소청과 전문의를 고용해 공백을 메워야 한다. 지금도 간혹 소청과 의사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대학병원 이야기들을 보면 무섭다.

- 우리 사회의 심각한 현안 중 하나인 초저출생현상도 소청과 위기 요인으로 꼽히는데 소청과가 붐비는 걸 보면 크게 드러나진 않는다. 현직 소청과 개원의로서는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확실히 줄었다. 이 동네도 아이들이 많은 편이라고 하는 곳인데, 환자 현황을 분석해보면 돌 미만의 영아 비중이 아주 적다. 다른 소아과 원장들과도 돌이 지나지 않은 정말 어린 아기들을 본 적이 오래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렇다보니 나 또한 3년, 5년 뒤에도 계속 이 일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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