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은 군 차원의 적극적인 추진과 민간병원의 협조로 최근 소아청소년과 확보에 성공했다. / 봉화=권정두 기자
경북 봉화군은 군 차원의 적극적인 추진과 민간병원의 협조로 최근 소아청소년과 확보에 성공했다. / 봉화=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경상북도와 강원도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자 태백산맥의 중심인 산골. 영화 ‘워낭소리’의 배경이 된 경북지역 대표 오지. 바로 경북 봉화군이다. 봉화군은 올해 들어 인구수 3만명이 무너졌고, 군청과 시장이 자리 잡은 읍내는 반경이 1km도 채 안 된다. 지방소멸, 인구소멸의 최전선에 있는 지역 중 한 곳이다.

이런 봉화군에도 여전히 아이들이 있다. 지난 5월 기준 봉화군의 소아청소년과 핵심 수요인구(만 0세~9세)는 1,044명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곳엔 의원급 소속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다. 아이들이 흔히 찾는 작은 규모의 ‘소아과’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봉화군에선 아이가 아파 소아청소년과를 가기 위해 인근의 영주시나 안동시, 태백시, 울진군 등까지 가야했다.

그런데 최근 봉화군내 유일한 병원급 의료기관인 봉화해성병원에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열었다. 봉화군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 및 추진에 봉화해성병원의 협조가 더해지면서 이룬 성과다. 

지난해 취임한 박현국 봉화군수는 군내 소아청소년과 신설을 역점사업으로 내걸었으며, 군의회의 지지 속에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첫해인 올해는 시설 및 장비 구축에 2억원, 인건비 2억5,000만원을 예산으로 지원하고 내년부터는 인건비만 5억원을 지원한다.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 때문에 봉화해성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운영에 따른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점을 감수하고 지역주민들을 위해 운영을 맡았다.

봉화해성병원은 봉화군의 재정 지원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 봉화=권정두 기자
봉화해성병원은 봉화군의 재정 지원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 봉화=권정두 기자

지난 8월 방문한 봉화해성병원은 ‘시골병원’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전반적인 내‧외관과 시설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병원을 찾은 이들도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다. 병원 한 쪽에 마련된 소아청소년과 앞은 대체로 한산했고, 여느 도시의 소아청소년과처럼 긴 대기 줄이 없었지만 드문드문 발길이 이어졌다.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안에는 영유아 환자를 대비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장난감들도 놓여있었다.

아이가 기침을 해 병원을 찾은 한 지역주민은 “예전엔 가벼운 증상이어도 영주시까지 다녀와야 해서 힘들었는데, 이렇게 소아청소년과가 생겨서 정말 편해졌다”고 말했다.

봉화군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산골 오지 지역인 정선군도 군차원의 적극적인 의지로 소아청소년과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다.

정선군은 2016년 전국 최초로 군립병원을 설립했으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소아청소년과를 운영 중이다. / 정선=권정두 기자
정선군은 2016년 전국 최초로 군립병원을 설립했으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소아청소년과를 운영 중이다. / 정선=권정두 기자

과거 탄광산업이 호황을 이룰 때 번성하다 이후 쇠락의 길을 걸은 정선군은 비단 소아청소년과 뿐 아니라 의료 인프라 전반이 열악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던 정선군은 2016년 민간병원이었던 한국병원을 인수해 정선군립병원을 개원했다. 전국 최초의 군립병원이다. 초기엔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다 2020년부터는 정선군이 재단을 설립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정선군립병원에 소아청소년과가 개원한 것은 2016년 설립 직후다. 이는 정선군 차원에서 적잖은 예산을 들여 의료기관을 확보해둔 가운데, 중앙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가능했다. 보건복지부의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되면서 소아청소년과를 개원할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은 지방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와 지역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2014년부터 시작됐으며, 소아청소년과 개설을 위해 필요한 초기 자금과 운영 자금을 지원한다.

정선군립병원엔 아이와 부모를 위한 놀이방, 수유실 등의 시설도 마련돼있다. / 정선=권정두 기자
정선군립병원엔 아이와 부모를 위한 놀이방, 수유실 등의 시설도 마련돼있다. / 정선=권정두 기자

지난 8월 여름휴가철이 끝날 무렵에 찾은 강원도 정선군의 정선군립병원 소아청소년과 역시 붐비는 것은 아니어도 환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정선군립병원 관계자는 “오늘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지만, 시기에 따라서는 붐빌 때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병원을 찾는 소아청소년과 환자 중 관광객 비중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날도 가족여행을 왔다가 심한 장염 증상으로 탈수현상까지 온 아이와 열이 난 아이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서울에 거주한다는 환자 아이의 엄마는 “예전에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갑자기 아이가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 지역에 소아청소년과가 없어 당황스러웠다”며 “이번엔 이 병원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한숨을 돌렸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문을 연 전남 진도군 진도전남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주중 야간진료와 토요일 격주 진료도 실시 중이다. / 전라남도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문을 연 전남 진도군 진도전남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주중 야간진료와 토요일 격주 진료도 실시 중이다. / 전라남도

인구수 3만명이 무너진 전남 진도군도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최근 소아청소년과 의료 공백이 해소됐다. 지난해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6월 지역 내 진도전남병원에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열었다. 이어 9월부터는 내부 인테리어 등을 마치고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까지 시작했다.

진도군은 그동안 보건소 차원에서 소아청소년과 공중보건의가 배치된 적은 있으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 의한 진료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엔 목포시나 해남군 등으로 가야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 불편을 덜게 됐다. 특히 진도전남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주중 2회 야간진료와 토요일 격주 오전진료 등도 실시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한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프라 확보는 다른 지역에서도 요긴한 역할을 하고 있다. 충북 보은군은 2018년 초 지원 대상에 선정돼 그해 7월부터 군내 보은한양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 중이다. 경남 합천군 또한 2020년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군내 삼성합천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고 있다.

보은군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거주 중인 한 30대 남성은 “첫째가 어릴 땐 군내 소아청소년과가 없어 아이가 아프면 고속도로를 타고 청주까지 갔다. 감기 같은 질환은 그나마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아도 괜찮았지만, 일반적이지 않고 아이들에게서만 잘 나타나는 질환의 경우엔 멀리까지 가야 했다”며 “이제는 보다 전문적인 소아 진료가 필요할 때에도 멀리 가지 않아도 돼 정말 좋다”고 말했다.

충북 보은군 역시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프라를 확보했다. / 보은=권정두 기자
충북 보은군 역시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프라를 확보했다. / 보은=권정두 기자

이러한 일련의 대책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의료기관을 기반으로 재정 지원을 통해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는 구조를 띈다. 지역 내 병원급 의료기관이 존재하지만 소아청소년과가 자생하기 어려운 지역 여건을 반영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57억원이다. 일각에선 이러한 소아청소년과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전히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이 많고, 저출생‧고령화 및 지방소멸이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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